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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일본 최고의 흥행작 <철도원>의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

“언제나 시대에 버림받은 사람 속에서”

<철도원> 개봉에 앞서 영화홍보차 한국에 온 후루하타 야스오(한자이름??·67) 감독은 지난 40여년간 38편의 영화를 만든 노장이다. 하지만 지난 1월20일 남산 감독협회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근처 카페에서 만난 그는 전혀 노인같지 않은 혈색으로 연달아 5번째인 인터뷰에 성실히 답했다. 70년대에 한국영화를 수입, 배급한 적도 있다는 그는 “한일 양국이 지난해 최고 흥행작인 <쉬리>와 <철도원>을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게 되서 뜻깊다”며 <철도원>에 대한 한국 관객의 반응을 궁금해했다. 또한 그는 구상중인 다음 영화에 안동 하회마을이 등장할지 모른다며 서울에서 인터뷰 일정을 마치는 대로 촬영감독과 함께 안동에 들렀다 돌아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1957년 도쿄대 문학부에 입학, 프랑스문학을 전공한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은 도에이도쿄촬영소에 입사해 영화 일을 시작했으며 66년 <비행소녀 요코>라는 영화로 데뷔했다. 그가 만든 영화는 상당수 60∼70년대 도에이도쿄촬영소의 전매특허였던 야쿠자 영화인데, 도에이영화사 전속 감독이었던 결과다. 그는 <철도원>의 주인공 다카구라 겐과 17편의 영화를 함께 작업했는데 다카구라 겐이 야쿠자 장르의 스타라는 점을 고려하면 자연스런 일이다. 일본에서 20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인 아사다 지로의 단편집에 들어 있는 동명소설이 원작인 <철도원>은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이 94년 <47인의 자객> 뒤 5년간 영화출연을 하지 않던 다카구라 겐을 스크린에 불러들인 작품. 다카구라 겐에게 몬트리올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이며 일본 전역에서 450여만명 관객을 동원한 99년 일본 최고의 흥행작이다.

-원작의 어떤 면에 끌려 영화화하겠다고 생각했나.

=처음 소설을 봤을 때 느낌이 아주 좋았다. 일 때문에 가족까지 희생하는 사람, 자기가 맡은 일을 묵묵히 다 하는 인물이 이제 60줄에 접어든 내 자신의 삶과 겹쳐졌다. 읽으면서 내내 소설 속 주인공의 인생과 내 자신의 인생이 하나인 듯한 느낌이 들었고 이걸 영화로 만들어도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판단했다. 관객 역시 영화 속 주인공과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며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내가 원작소설을 보며 느낀 정서를 관객이 내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영화를 만들게 한 것이다.

-<철도원>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생각했을 때 떠올린 이미지는 어떤 것인가.

=소설을 읽으면서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럽지만 실제 홋카이도에는 호로마이라는 역이 없다. 소설에서 허구로 만든 지명이라 재현하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실제 역이 아닌 탓에 역과 역 사이 중간지점에 세트로 역을 지어야 했다. 철도는 원래 있던 것이어서 기차가 지나갈 때면 촬영을 중단해야 했고 증기기관차는 철도박물관에 있던 걸 꺼내서 썼다.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소품들이 박물관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게다가 온통 눈으로 덮혀 있는 풍경을 찍어야 했기 때문에 촬영팀이 고생 많이 했다.

-원작과 다르게 고친 부분은 어떤 것인가.

=회상부분에서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 호로마이가 탄광촌의 운명을 다할 무렵 이곳에 일하러 왔던 사내가 아들만 남겨두고 죽는 대목은 원작에 없는 설정이다. 당연히 오토 부부가 아이를 키우려다 식당집에 맡기는 설정도 없고. 이런 이야기를 집어 넣은 이유는 패전 직후 일본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서다. 실제 광부는 패전 뒤 가장 먼저 없어진 직업이다. 사라진 직업을 통해 전후 일본사회가 얼마나 궁핍한 삶을 요구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은 서구에서 경제동물이라고 부를 정도로 각박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광부 이야기는 특히 최근 일본에 불어닥친 경제위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최근 일본에선 엄청난 정리해고가 단행됐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많다. 일의 소중함이 어느 때보다 절박해진 상황에서 영화를 기획했고 또 그 때문에 성공한 것 같다. 전후 탄광촌이 문을 닫은 것 같은 일이 요즘 일본에서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최근 경제상황에 비춰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기획할 때부터 고려했던 일인가.

=영화를 기획하면서부터 염두에 뒀던 사항이다. 최근 일본사회가 부딪치고 있는 문제에서 출발했고 그 때문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본다. 광부를 통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의 슬픔도 보여주고 전후 혼란스런 사회상도 보여주고, 오늘의 일본사회가 있기까지 묵묵히 일한 사람들의 성실한 태도도 보여주고자 했다. 그런 사람들이 직장에서 쫓겨나고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있다. 이런 문제를 같이 생각해보자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 그렇게 자기 맡은 일에 매달려 앞뒤 재지말고 살자고 얘기하는 건 아니지만.

-자기가 맡은 일에만 성실한 주인공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도 갖고 있나. 영화만 보면 그런 삶이야말로 칭송받아 마땅하다는 것처럼 보이는데.

=내가 그렇다 아니다로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그건 관객의 몫이다. 난 한 인간이 살아간 방식을 보여주는 것 뿐이다. 이 사람이 살아온 방식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판단하고 싶진 않다. “이렇게 살다간 한 사람이 있습니다”하고 보여주면 관객이 개인마다 달리 받아들여 자기만의 영화로 탄생시킬 수 있을 거라 본다.

-호로마이라는 마을과 주인공 오토는 같은 운명에 처해있는 걸로 보인다. 호로마이라는 공간이 갖는 중요성은 어떤 것인가.

=호로마이와 오토는 다르지 않다. 호로마이역이 폐쇄되니까 오토도 죽는다. 그들은 하나의 운명공동체인 것이다.

-사토는 자기일에 충실한 장인이기도 하지만 고집세고 감정표현에 익숙하지 않는 아버지이기도 하다. 대개 젊은이들에게 아버지는 부정적 이미지인데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고 포용하자는 제안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 일에 매달려 살아왔지만 더이상 쓸모없다고 사회에서 버림받는 아버지를 자식이 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원작을 쓴 사람은 30대로 아직 젊은 사람이지만 그같은 이야기를 한다. 나 역시 그런 제안을 하는 것이다.

-플래시백을 시간순으로 배치하지 않은 게 흥미롭다. 어떤 의도가 있었나.

=시나리오를 쓰면서부터 시간순으로 배치할 의도가 없었다. <철도원>은 이틀간 주인공 오토가 친구와 대화하며 진행되는 이야기인데 친구와 대화에서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기억을 파편적으로 집어넣었다. 그게 관객을 주인공의 기억에 동참시키는 쉬운 방법이기도 하고.

-66년 <지옥의 정에 내일은 없다>부터 다카구라 겐과 17편의 작품을 했는데 어떤 인연으로 이렇게 많은 작품을 함께 하게 됐나.

=두 번째 영화를 만들 때부터 다카구라 겐과 같이 했는데 딱히 어떤 인연이라고 얘기하긴 힘들다. 그저 버릇처럼 되어버린 인연이라고 할까. 오랫동안 그와 작업하지 않다가도 이번엔 해봐야 되지 않나, 싶을 때가 있다.

-<철도원>의 주인공 오토 역에 다카구라 겐을 캐스팅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사실 원작에서 오토는 등이 활처럼 굽은 백발의 할아버지다. 그런데도 다카구라 겐을 기용한 것은 그가 만들어낼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그는 지난 40년간 영화 연기만 고집해온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철도원>의 오토 역을 한다는 것은 배우 자신의 삶과 등장인물을 동일시하게 만든다. 다카구라 겐은 오토처럼 자기일에 충실한 모범적인 인물이고 그게 어떤 상승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도쿄대에서 프랑스문학을 전공했다던데 영화를 하게 된 계기는.

=프랑스문학을 전공하면서 프랑스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전후 일본에선 미국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됐고 일본영화도 제작편수가 많지 않아서 프랑스영화가 많이 들어왔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취직할 곳을 알아봤는데 당시 도에이도쿄촬영소가 월급을 가장 많이 줬다. 촬영소에 들어가 8년간 조감독 생활을 한 뒤 데뷔를 했다. 지금까지 만든 38편 영화 가운데 20편을 도에이에서 만들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고 지금도 그렇다.

-38편이나 되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동안 꾸준히 관심을 갖고 영화화한 소재나 주제가 있나. 작품목록으로 보면 야쿠자 영화를 많이 만들었는데.

=지금까지 내가 만든 영화들은 성공한 사람, 모범이 되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난 오히려 소외된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에 관심이 많다. 야쿠자 영화를 많이 만들었지만 그들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람들은 아니다. 야쿠자 영화를 많이 만들던 때는 학생운동이 한창인 시절이었다. 당시 학생운동을 하거나 학생운동을 지지하던 사람들에게 야쿠자들이 만드는 무법천지는 일종의 도피처 같은 기능을 했다. 그들은 야쿠자 영화를 보며 공권력을 조롱하고 법의 테두리를 무시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늘 그 시대에 소외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살피며 그들의 이야기를 해왔는데 <철도원> 역시 다르지 않다고 본다.

-자신이 살아온 과정이 오토의 삶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나. 혹 오토처럼 아내와 자식을 등한시한 건 아닌가.

=나 스스로는 가족에게 많이 신경썼다고 생각하는데, 당하는 상대방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웃음)

-<철도원>을 볼 한국 관객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철도원>이 지난해 일본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영화이긴 해도 이것이 일본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일본영화를 대표하는 영화 중 하나일 뿐이다. 일본인들이 <쉬리>를 보고 <쉬리>가 한국영화의 전부인 양 착각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같을 것이다. 내가 직접 보진 못했지만 우리 촬영감독이 <쉬리> 말고 다른 한국영화들을 많이 봤다. 그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매우 감명받았다고 말했는데 <쉬리>가 있는 반면 <8월의 크리스마스>도 있는 거 아닌가. 마찬가지로 일본영화는 이런 것이구나라고 단정지으며 보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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