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널리 알려진 감독은 아니지만 앨런 루돌프는 미국 인디영화계에서 상당히 인정받는 인물이다. 70년대 <내쉬빌> 등 로버트 알트먼 영화 4편의 조감독으로 입문, <메이드 인 헤븐> <위험한 상상> <미세스 파커> 등을 만든 루돌프는 97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애프터글로>를 통해 건재함을 과시했다. <브루스 윌리스의 챔피언>은 그가 <위험한 상상>에서 같이 작업했던 브루스 윌리스를 파트너 삼아 만든 신작. 앨런 루돌프의 시나리오를 본 브루스 윌리스가 제작에도 직접 참여했고 닉 놀테, 바버라 허시, 알버트 피니 등 중량감 있는 연기자들이 대거 등장한다.

영화의 원작인 커트 보니깃 주니어의 소설은 60년대 미국 반문화운동이 70년대 풍요와 성공을 추구하는 소비주의 문화에 흡수되는 과정을 풍자한 작품. 주인공 드웨인 후버는 그 전형이 될 만한 인물이다. 그는 미국 자본주의의 첨병인 자동차 판매업을 하고 있고 TV광고를 통해 스타가 됐으며 그 때문에 주위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집중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TV광고를 통해 보이는 후버의 이미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후버가 자기 삶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서 행복은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여비서와 외도를 하는 순간 아내의 환영이 보이고, 자신만 믿고 따르는 회사 직원들이 광신도로 보이는가 하면 “드웨인 후버를 믿으라”는 TV광고가 역겹게 느껴진다. 이건 마치 60년대와 70년대의 극단적 대립이 일으키는 정신장애처럼 보인다. 삶의 가치를 돌아볼 틈 없이 자동차 경주처럼 빨리 달려야 살아남는 세상에서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60년대식 이상은 미친 사람의 헛소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좋은 의도가 화면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전달되는 편은 아니다. 세상에 분풀이하고 싶어하던 삼류작가가 “당신 주변의 모든 사람은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로봇에 불과하며, 하느님은 로봇에 둘러싸여 움직이는 당신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로 후버를 각성시키는 대목은 의도에 걸맞은 결말을 기대한 관객을 실망시킨다. “영화화가 불가능한 원작”이며 “볼 필요없는 영화”라는 <타임>의 평은 가혹하긴 해도 그릇된 판단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