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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리 뉴요커 동물들의 뉴욕 귀환 프로젝트, <마다가스카>
김도훈 2005-07-12

아프리카의 야생으로 떨어진 네 마리 뉴요커 동물들의 뉴욕 귀환 프로젝트.

<마다가스카>는 뉴요커(New-Yorker: 뉴욕에 사는 사람)에 대한 영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신없는 거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전형적 인물으로서의 뉴요커에 대한 영화다. 네 마리의 동물 캐릭터들, 사자 알렉스(벤 스틸러), 얼룩말 마티(크리스 록), 기린 멜먼(데이비드 시머), 하마 글로리아(제이다 핀켓 스미스)는 하릴없는 뉴욕의 예찬자들. 심지어 몇몇 대사들은 뉴욕중독증 환자들이 주연인 <섹스&시티>의 대사들(“누군가가 뉴욕을 떠나는 걸 볼 때마다 항상 놀라워. 내 말은, 대체 여기 말고 어디 가서 살 수 있냐고?”-사만사-)에서 따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뉴욕이 갑갑해지기 시작한다면?

<마다가스카>의 이야기가 그들의 탈출욕구에서 시작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심지어 우디 앨런조차도 일시적인 일탈을 꿈꾸지 않았는가. 결국 얼룩말 마티는 남극으로의 탈출을 시도하는 사이코 펭귄갱단에 감화되어 ‘야생’을 찾아 길을 떠난다. 그가 꿈꾸는 야생지역이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코네티컷주 정도. 대담하게도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급행열차를 타려던 그는 뒤쫓아온 3명의 친구들과 함께 인간에게 생포되는데, 어떻게 된 노릇인지 동물보호론자들의 여론몰이로 인해 급기야는 수송선에 갇혀 케냐의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수송되는 신세가 된다. 여기까지 꼬여온 일이 제대로 풀려나갈 리 없다. 케냐의 보호구역으로 향하던 배는 펭귄갱단의 활약으로 인해 남극으로 향하고, 주인공들을 실은 나무상자는 배에서 떨어져나와 표류하다가 마다가스카섬에 도달한다.

<라이온 킹>의 심바는 훌륭한 야생의 지도자였지만, 사람을 만나는 순간 날카로운 앞발로 일격을 날렸을 것이다. 하지만 <마다가스카>의 사자 알렉스는 환호하는 아이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사육사들로부터 정기적인 두발관리를 받을 정도로 인간화된 캐릭터다. 여기서 묘한 균열이 발생한다. 동물원 관람객과 사육사들은 주인공들을 인간처럼 대하지만, 맨해튼 거리의 사람들은 그들을 짐승으로 취급할 뿐이다. <마다가스카>의 뉴욕은 동물과 인간의 교류에 대한 한 가지 법칙을 설정하는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의 흐름을 살짝 위반하며, 센트럴파크 동물원과 맨해튼이라는 두개의 다른 차원이 동시에 존재하게 만든다. 그런데 제작진은 주인공들이 마다가스카섬에 도달하는 순간 또 다른 차원을 열어젖힌다.

배가 고파진 사자 알렉스가 갑자기 야성을 되찾는 순간, 그의 눈에 친구들은 (진짜로!) 잘 다듬어놓은 스테이크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아빠. 어째서 티거와 피글렛이 친구가 될 수 있지?” 아이들의 물음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겨왔던 부모 관객에게 <마다가스카>가 부서뜨리는 애니메이션의 평화조약은 꽤 통쾌한 맛이 있을 법하다. 물론 제작진은 결말에 이르러 우정이라는 낡은 대안으로 알렉스의 본성을 억누르고, 장기적인 대안으로 스테이크보다 맛 좋은 ‘스시’(초밥)를 제안하기는 한다. 이처럼 <마다가스카>의 마무리가 예상된 결말로 나아가는 것을 꼭 흠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슈렉>과 <샤크>보다 상영시간이 15분여나 짧고, 대중문화의 인용도 줄어든 이 작품의 주요 타깃이 그리 높은 연령대의 관객층은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되기 때문이다.

<마다가스카>의 스타일은 주목할 만하다. 캐릭터들의 외양은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들보다는 오히려 한나와 바바라(<톰과 제리>), 척 존스(<벅스 버니>) 등 고전 TV애니메이션의 계보와 일치하는 데가 있다. 현실을 더 닮아가고자 하던 3D애니메이션이 2D애니메이션의 매력으로 귀환하자, 별안간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2D애니메이션이 테크놀로지를 통해 새 생명을 얻은 셈이다. 의외로 주변 캐릭터들이 ‘귀여운 감초’ 역할에서 벗어나 있는 점도 독특하다. KGB처럼 행동하는(이름도 ‘코왈스키’ 따위다) 펭귄갱단은 <윌레스와 그로밋>의 펭귄도둑 이후로는 처음으로 펭귄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깨뜨려놓는다. 심지어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간 조연캐릭터는 마다가스카섬의 원주동물인 안경원숭이들인데, 엑스터시를 한 움큼 털어넣은 듯 행복하게 춤추는 그들의 첫 등장은 (제작진의 말마따나) 기괴스럽기(eerie) 그지없다.

귀여운 캐릭터들의 속성을 배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네 마리의 뉴요커가 정글이 약육강식의 세계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들의 눈앞에는 온갖 작고 앙증맞은 동물들이 야수들에게 잡아먹히는 장면이 쉴새없이 펼쳐진다. 이 모든 게 디즈니와 폭스의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계속해서 PG등급(13세 이하 부모동반 관람가)을 받아온 드림웍스의 귀여운 악취미는 아닐는지. <마다가스카>의 정글은 질릴 만큼 화사한 루소의 세계지만, 살짝 비틀린 약육강식의 유머감각만큼은 <슈렉>의 뒤를 확실히 잇는다.

사샤 바론 코헨=알리G=줄리앙 13세

낄낄거릴 수밖에 없는 비틀린 유머

알리G

<못말리는 알리>

<마다가스카>는 화려한 스타들의 목소리 출연으로 가득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목소리들은 대부분 조연 캐릭터들에서 나오는 편이다. 이는 주인공인 네 마리 동물들이 조연인 펭귄 갱단이나 안경원숭이의 캐릭터에 비해 비교적 평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장 독특한 캐릭터는 프랑스와 아프리카 원주민의 영어 억양을 제멋대로 섞어서 떠들어대는 안경원숭이들의 왕 줄리앙 13세. 자기애에 푹 빠진 춤꾼 줄리앙은 아동 취향의 애니메이션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캐릭터다. 이 괴상한 짐승의 목소리를 담당한 사람 역시 괴상한 경력의 소유자다. 사샤 바론 코헨은 엘리자베스 여왕도 애청자라는 영국의 TV쇼 <Da Ali G. Show>의 진행자로 서구에서는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코미디언. 항상 노란 운동복과 안경이 인상적인 분신 ‘알리G’로만 등장한다. 케임브리지 신학과를 졸업한 사샤 바론 코헨이 바보 캐릭터 알리G의 껍질을 뒤집어쓰는 이유에는, 딱딱한 기성세대의 ‘정치적 공정함’을 마음 놓고 비웃어주려는 의도도 있다(그는 <Da Ali G. Show>에 영향력 있는 정치가나 사회운동가들을 불러다놓고 멍청한 질문들을 퍼부어 그들을 바보로 만드는 걸 즐긴다).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지만 낄낄거릴 수밖에 없는 비틀린 유머가 그의 장기. 영화 출연작으로는 욕설과 속어가 난무하는 <못말리는 알리>(Ali G Indahouse)가 있으며, 마돈나의 뮤직비디오 <뮤직>(Music)에도 알리G의 캐릭터로 출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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