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의 미국은 거대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지는 할리우드식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유의 영화를 맞이할 조건을 형성하고 있었다. 예컨대, 나치즘을 피해 새로운 땅을 밟은 유럽의 급진적인 예술가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영화의 예술적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도록 하는 분위기를 자극했는가 하면 유럽 아방가르드의 고전들을 구비한 필름 라이브러리가 그런 실험영화들과 대화할 기회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그 결과, 40년대의 미국에서는, 파리와 베를린에서 20년대에 꽃을 피웠다가 소멸한 아방가르드의 전통을 재생시켰다고까지 이야기되는, 아방가르드영화의 상승 현상을 보게 되었다. 아담스 시트니의 <시각영화>는 대략 마야 데런의 <오후의 올가미>(1943)에서 중요한 원류를 찾을 수 있는 미국 아방가르드영화가 그때로부터 현재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를 기술하는 책이다.
여기서 시트니는 미국 아방가르드영화의 자취를, 마야 데런, 시드니 피터슨, 케네스 앵거로부터 마이클 스노, 이본느 라이너, 수 프리드리히에 이르는 주요 시네아스트들에 대한 개별적인 검토들을 통해 그려낸다. 이건 저자가 미국 아방가르드영화의 멤버들은 대개가 예술가의 개인주의를 앞세웠던지라 그들의 영화 제작 실천이 하나의 ‘운동’을 만들지 못했다고 생각한 탓이 클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들의 영화를 관류하는 공통의 경향을 찾지 말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시트니는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감독들에게는 낭만주의의 전통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카메라 앞에 놓인 대상의 리얼리티보다는 예술가의 상상력을 중시하고서 만들어진, 이른바 환영영화(visionary film)를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앞에 보여줬다는 것이다. 이런 주요 전제 아래서 시트니는 개별 영화감독들의 작품들을 분석하고, 선후의 작품들을 따져보면서 그들의 영화사적 위치를 추적하며, 그들의 이론을 살펴본다.
영화평론가 리처드 라우드가 <시각영화>의 저자 시트니를 두고 미국 아방가르드영화의 “이상적인 중재자”라고 이야기했듯이, 이것은 읽는 이로 하여금 미국 아방가르드영화의 상을 그려내는 데 지침을 제공하는 꼼꼼한 비평서이자 영화사서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부피의 방대함, 전반적으로 매끈하지 못한 번역문장들, 지나치게 자주 눈에 띄는 오자들과 함께 책에 실린 영화들의 다수를 볼 수 없는 상황은 가이드로서 이 책의 효용을 감소시킨다. 사실 ‘어려운’ 실험영화들에 대한 훌륭한 분석을 담고 있는 <시각영화>는 해당 영화들을 함께 보며 읽어야 할 책인데 그러지 못하는 우리는 억지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