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챈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태양은 없다>(1999)에는 이전에 만들어진 여러 작품들이 녹아들어 있다. 우선 스타일면에서 그것은 <언지프>(1998)에 많이 기댄다. 패션디자이너 아이작 미즈라히의 창작과정을 다룬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비드라마적인 플롯과 불연속적인 편집을 배워왔다. 컨셉면에서는 단연 <미드나잇 카우보이>다. 욕망이 넘치는 대도시의 밤거리, 실패만을 거듭하는 가진 것 없는 청춘들, 그리고 약간의 동성애코드를 내장한 버디무비. 작가는 물론 감독과 제작자까지 이 영화의 열렬한 팬이었던 까닭에 실제로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이 빼어난 고전을 다함께 복습(!)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위대한 영화는 시공을 뛰어넘는다. 무려 3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이건만 지금 봐도 모던한 느낌이 여전한 <미드나잇 카우보이>가 바로 그렇다. 왜소한 체구에 다리까지 저는 비굴한 펨푸 리조, 몸뚱아리 하나만 믿고 남창이 되려 뉴욕으로 스며든 시골뜨기 청년 조 벅. 절름발이 리조가 꿈꾸던 ‘플로리다 판타지’와 커다란 트랜지스터를 들고 뉴욕의 밤거리를 쏘다니던 조 벅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거기에다 존 배리가 작곡한 그 애절한 하모니카 연주며 너무 경쾌해 오히려 슬픈 주제가 <모두들 이야기하네>까지 겹쳐들면…. 과연 작품상과 감독상이 아깝지 않다.
이 영화로 오스카를 수상한 왈도 솔트는 조숙한 신동이었다. 14살 때 스탠퍼드대학에서 입학허가서를 받아낸 그가 대학원 과정까지 끝내고 강단에 서기 시작한 것이 약관 20살 때. 그러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는 그다지 신명이 나지 않았던지 솔트는 곧 대학을 떠나 MGM과 전속계약을 맺는다. 그의 크레딧이 내걸린 첫 작품은 <진부한 천사>. 전쟁터로 떠나기 직전의 병사가 사랑에 빠져든다는 통속적인 멜로드라마이다. <필라델피아 스토리>는 여러 모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상류사회의 결혼풍속도를 선정적인 저널리즘과 연관해 보여준 이 작품을 통해서 그동안 잠시 브로드웨이로 퇴각해 있던 캐서린 헵번이 할리우드로 금의환향했고, 왈도 솔트 역시 역량있는 신예작가로 인정받는다(이 작품은 1956년에 <상류사회>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전쟁 영화(<윙클씨 전쟁에 가다>)와 서부극(<레이첼과 이방인>)을 거쳐 프리츠 랑의 고전 <M>(1931)의 성공적인 리메이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들을 섭렵한 솔트의 필모그래피는 그러나 1951년에 이르러 중단된다. 매카시즘 광풍의 진원지였던 반미활동위원회에서의 증언을 거부함으로써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다. 덕분에 평균 2.5년마다 한편씩 시나리오를 써내던 솔트는 이후 11년 동안이나 작품활동을 펼치지 못한다. 그의 컴백작품은 <대장 불리바>. 16세기의 우크라이나 지방을 배경으로 코사크족 사나이들의 전쟁과 사랑을 호방하게 다룬 작품인데 초등학교 시절 명보극장에서 입을 헤 벌리고 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플라이트 프롬 아시아>는 일본에서 촬영한 미 공군들의 이야기. 율 브린너, 조지 차키리스, 리처드 해리스 등 당대의 스타들이 펼쳐보이는 스케일 큰 액션물이다.
그러나 흥행사로 이름을 날리던 왈도 솔트가 진정한 작가의 반열에 들어선 것은 아무래도 50대 중반에 쓴 <미드나잇 카우보이> 이후로 보아야 할 것 같다. 다양한 장르 영화들을 넘나들던 그도 이제 화려한 방랑(?)을 멈추고 진지한 사회파 감독들과 함께 인간 내면의 상처들을 깊숙이 파고들기 시작한다. <사랑의 시련>에서는 부패한 사회 속에 내동댕이쳐진 한 순수한 영혼이 파괴되어가는 과정을 다뤘고, <부서진 세월>에서는 1930년대의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추한 인간들의 일그러진 욕망들을 보여줬으며, <귀향>에서는 베트남전쟁이 남긴 지울 수 없는 상처와 그것의 고통스러운 치유과정을 담담히 들려준다. 조숙한 신동이 진중한 노인으로 늙어가는 일은 드물다. 솔트는 바로 그 드문 일을 해냈다. 선댄스영화제에는 시나리오 작가로서 그가 평생 쌓아온 혁혁한 공로를 기려 ‘왈도 솔트 시나리오상’이라는 특별부문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