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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낸다고, 옘병, <귀엽거나 미치거나>
강명석 2005-06-30

SBS 시트콤 <귀엽거나 미치거나> 조기종영 사태를 규탄한다

SBS <귀엽거나 미치거나>는 김병욱 PD의 가장 잔인한 시트콤이다. 그는 캐릭터들이 자신이 정한 룰을 어길 때마다 하나씩 응징한다. 캐릭터들은 ‘척하면 죽는다’. 그래서 ‘품위있는 척’하는 ‘THE 옘병’ 재벌 마나님 수미는 매회 웃음거리가 되고, 남의 연애담이나 몰래 듣던 남편은 체통을 지키려 할 때마다 장모가 와서 ‘욕을 바가지로’ 하고 간다. 또 늘 똑똑한 척하며 사사건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려 했던 엘리트 경림은 짝사랑에 빠지자 ‘고딩’ 말을 듣고 혈액형과 별자리로 남자의 속마음을 알아보다 헛물만 켠다. 자신을 표현하는 데 있어 거품이 낀 사람일수록 실체가 폭로되면서 웃음거리가 되고, 대신 감정에 솔직한 여고생 신혜나 품위 따위 신경쓰지 않는 수미의 어머니는 그들의 머리 꼭대기에 오른다. 온갖 ‘척’하던 사람들이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드러낼 때의 모습은 시청자가 보기에 오히려 현실적이고 ‘귀엽’지만, 그들의 신분은 그들의 행동을 ‘미친’ 것으로 만든다. 그들이 미치면 미칠수록 ‘척’하는 캐릭터의 거품은 제거되고, 이는 그들이 주인공을 하던 트렌디드라마의 비현실성을 제거한다. 대신 그 자리엔 가정부와 연애하면서도 ‘집안일’이니 선은 보겠다는 재벌 2세 준석과 재벌 2세와 사귄다고 끝까지 잘된다는 보장도 없으니 ‘영농 후계자’와 사귈까 고민이라는 가정부 유진의 ‘현실적인 판타지’가 들어온다.

<귀엽거나 미치거나>는 과장된 캐릭터의 오버연기와 계급간의 진지한 사랑을 동시에 보여줬고, 이는 김병욱 PD가 일일 시트콤 시절 수많은 에피소드에 조금씩 묻혀 있던 노골적인 비꼼과 일상적인 사랑을 극단적으로 부각시킨 것이었다. 그래서 <귀엽거나 미치거나>는 ‘현실을 뒤트는’ 코미디와 ‘현실적인’ 스토리가 동시에 공존하며 시트콤과 드라마 사이의 미묘한 지점에 도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가능성의 제기였지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주간 시트콤이라는 제한 속에서 거품이 제거된 신혜와 유진 같은 캐릭터들은 드라마적인 러브스토리가 진행되면서 뚜렷한 감정선을 갖게 되었지만, 비웃는 데 사용된 캐릭터들은 웃음을 위한 단편적인 에피소드만을 맡으면서 두 계층의 이야기는 불안한 평행선을 이루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유진과 준석, 신혜와 승수의 사랑이 시작되면서 비로소 안정될 수 있었고, 경림이 끼어들면서 조금씩 그 세계를 통합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유진과 준석의 사랑이 성원, 수미에게 밝혀지는 순간, 이 시트콤은 전혀 다른 두 계층이 맞부딪치면서 과장된 풍자와 비참한 현실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4각관계 트렌디드라마의 왕국’ SBS는 이 작품의 조기종영을 결정했고, 대가의 새로운 가능성이 담겨 있던 ‘하드코어 풍자연애극’의 가능성은 거기서 멈춰버렸다. 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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