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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순이’ 캐릭터 전성시대 [4] - <…김삼순> 제주 촬영현장
사진 오계옥박은영 2005-06-28

<내 이름은 김삼순> 제주 촬영현장

“삼식이, 너도 딴 여자랑 눈 마주치지 마”

“나 너무 비참하다. 그래, 둘이서 알콩달콩 로맨스를 만들어가셔.” 제주 파라다이스호텔 로비에 김선아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지자, 스탭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진다. 가업인 호텔 오픈 행사에 가짜 여자친구 삼순(김선아)을 대동하고 내려온 진헌(현빈)이 호텔 로비에서 옛사랑 희진(정려원)과 그의 친구 헨리(대니얼 헤니)와 마주치는 장면을 촬영하는 중이다. 삼순은 옛사랑의 등장에 마음이 흔들리는 진헌이 야속하기만 하다. 희진이 달려와 진헌의 팔을 잡아 끌자, 삼순은 이에 질세라 진헌의 또 다른 팔을 잡아 끈다. “너도 딴 여자랑 눈 마주치지 마. 나한테만 귀기울여.” 리허설을 하던 김선아는 현빈이 자기를 너무 째려본다고 PD에게 이르질 않나, 정려원과의 신경전에서 자긴 빠지겠다고 투덜대질 않나, 진헌과 희진 사이에 어색하게 가로놓인 삼순의 처지가 자신의 일인 양 서러운 눈치다. 신세 한탄의 주어가 ‘삼순이’가 아니라 ‘나’인 것을 보면.

5부 방영을 앞둔 6월13일, 제주도에서는 이미 7부와 8부의 촬영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같은 시각 김도우 작가는 9부와 10부를 탈고 중이라고 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은 지난해 8월 기획이 시작돼, 올해 1월부터 대본을 집필하고, 4월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쪽대본이 팩스로 날아올 만큼 여유없이 촬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여느 미니시리즈에 비하면 오래 준비하고 넉넉하게 찍고 있는 편이다. 촬영 중반으로 치닫는 시점에 전체 회식을 즐길 정도로 이들은 여유가 있다.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액션’과 ‘컷’을 외치는 김윤철 PD의 현장은 일사불란하다. “인물을 자유자재로 따라잡기 위해” 절반 이상을 스테디캠으로 촬영하고 있다는 이 현장의 또 다른 특징은 좁은 방과 복도에서 움직이는 배우들을 따라 카메라와 조명과 전선을 들고 우르르 뒷걸음질치며 나오는 스탭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삼각·사각관계의 갈등이 부각되는 것이냐”는 질문이 너무 통속적이었던가보다. “서로 다른 네 남녀의 사랑에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남은 기간 이어갈 제작진의 소신이다. “함께 있어야 완성되는 초콜릿 상자”를 채워가듯 인물을 소개하고 이야기를 꾸려가는 이들의 손길은 더욱 바빠질 전망이다.

“독신여성, 그들은 가장 빛나는 시간을 누리는 사람들”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윤철 PD

국문학을 전공하고 MBC에 입사한 김윤철 PD는 1996년 일요 아침 드라마 <>으로 입봉해 일일드라마 <보고 또 보고> 등을 거치면서, “많이 부대꼈다”고 했다. “내러티브 공부만 했지 비주얼 공부는 못했다”는 허기가 있었고, 결국 뒤늦게 칼아츠로 날아가 영화연출(MFA) 과정을 마치면서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돌아왔다. 귀국 뒤 내놓은 <베스트 극장-늪>으로 몬테카를로TV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해 MBC에 경사를 안겼던 그가 첫 미니시리즈로 전작과는 도무지 닮은 점이 없어 보이는 유쾌발랄 로맨틱코미디 <내 이름은 김삼순>을 들고 나타났다. 그는 작품이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하자, 실감을 못하겠다는 듯 “정말로 그래요?”라고 되물었다. 전국이 들썩이는 인기에도, 그는 아무런 동요가 없어 보였다.

-앞으로 본격적인 삼각·사각관계가 그려질 것 같은데, 어떻게 이야기를 펼쳐나갈 구상인가.

=거칠게 말하면 그렇지만, 그보다는 주인공 넷의 사랑이 모든 이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었으면 한다. 거칠지 않고, 단순하지 않게, 섬세하고 미묘하면서도, 극적인 구도로 펼쳐 보일 생각이다. 힘든 일이긴 한데, 끝까지 정교하게 이야기를 쌓아가려고 한다.

-극의 중심으로 30대 노처녀를 내세운 건 어떤 이유에서였나.

=내가 여자를 더 좋아한다. (웃음) 남자는 좀 둔하고 거칠고, 허영이 심하다. 여자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그래서 재밌다. 독신 여성들이 흥미로운 건 그들이 세상과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자유로운 상태로 보여서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고, 자기 일이 있어서 경제력이 있고, 편견이나 선입견에서도 자유로운 그들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어떻게 이 소설을 발견했고, 미니시리즈로 기획하게 됐나.

=김사현 CP가 권해준 소설 <내 이름은 삼순이>를 읽었는데, 나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내가 좋아할 수 있고 사람들도 좋아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해보니, 로맨틱코미디라는 답이 나오더라. 본래 <러브 액츄얼리> 같은 영국식 로맨틱코미디를 좋아했고, 평범한 캐릭터가 일상적인 공간에서 그려내는 따뜻한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소설을 읽어보니,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얼리티와 판타지가 공존하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상투성에 대한 지적이 있는데,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고, 중요한 건 이야기 구조의 정교함이라고 생각했다. 계약연애, 제빵사와 사장과의 사랑, 이런 설정을 얼마나 정교하고 섬세하게 가져갈지가 관건이었다. 현빈 캐릭터가 백마 탄 왕자님이기도 하지만, 옆집에 살면 좋겠다 싶은 남자로 그려졌으면 했다. 공간도 화려한 레스토랑 홀만 보여줄 게 아니라, 지저분한 주방이나 화장실이나 식품 창고도 같이 보여주려고 했고, 그런 점에서 리얼리티쪽으로 좀더 내려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이런 컨셉을 처음부터 작가와 공유했었고, 결과가 좋았다면 작가의 역량이 뛰어나서였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 TV드라마의 대사는 일상에서 쓰지 않는 문어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김도우 작가의 전작 <눈사람>을 보면서, 구어체적인 현실감 있는 대사, 기존 드라마의 컨벤션에 물들지 않은 재기발랄한 상상력에 감탄했다.

-김선아가 김삼순 역할에 어울린다고 판단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선아와는 단막극(<베스트 극장-그녀의 화분 No1>)을 같이 한 인연이 있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다. 최근 영화에서 보여준 코믹 연기를 카피하긴 싫었고, 일상성에 기초를 둔 코미디 연기를 보여주고자 했다. 과장이나 억지는 최대한 배제하고, 상황에 반응하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선아는 정말 배우가 됐더라. 일상성과 극적인 상황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표현하고 있다.

-김선아가 예측 가능한 캐스팅이었다면, 현빈과 정려원은 이전 이미지에선 떠올리기 힘든 선택이었던 것 같다.

=최근 몇년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두 배우에 대한 선입견이 없었다. 현빈은 <아일랜드>를 보고 만나서 반했다. 젠틀하면서 예민한, 같이 가져가기 힘든 감수성을 갖고 있더라. 정려원은 가수인 것도 몰랐고, 출연한 시트콤도 제대로 못 봤는데, 베스트극장에 출연한 걸 보고, 그것만으로 선택했다. 아주 극적인 표현은 아직 힘들어하지만, 일상적이면서 섬세하고 예민한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다.

-또 다른 신데렐라 스토리라는 지적이 있다. 또 원작과 달리 삼각관계가 부각된 이유도 궁금하다.

=TV라는 매체의 판타지적 성격은 부정하지 못한다. 그게 싫다면 인디영화나 예술영화를 해야겠지. TV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매체의 본질을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소설과 설정이 다른 건 문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소설적인 것과 극적인 것에는 차이가 있다. 어울리는 극적 형식을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변형이 필요했다.

-정교한 콘티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영상이 탁월하다. 스테디캠을 자주 쓰는 것 같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지문을 읽으면서 많이 생각하고 준비하는 편이다. ‘삼순이가 걸어간다’고 하면, 어떤 속도로 어디서 어디로 어떻게 걸어갈까를 생각하고, 그러다보니 카메라 앵글이나 사이즈나 높이나 움직임이 다양해지는 것 같다. 물론 베테랑 촬영감독님(<다모>의 김경철)이 잘 찍어주시기 때문이다. 전체의 50% 정도를 스테디캠으로 찍고 있는데, 인물을 역동적으로 따라가다보니, 비주얼에 힘이 생기는 것 같다. TV에선 거의 모든 드라마가 소프오페라적 관습에 젖어서, 문어체 대사와 감상적인 연기와 도식화된 콘티를 보인다. 움직이면 풀숏, 앉으면 투숏, 이야기하면 클로즈업, 이런 식이다. 그런 관습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었다.

-<베스트극장-늪>은 남편에게 배신당한 여자의 독한 복수극이었는데, 차기작으로 씩씩한 독신녀의 발랄한 로맨틱코미디를 선택한 건 의외였다. 그래서 취향을 가늠하거나 차기작의 성격을 점치기가 힘들다.

=어느 잡지에서 읽은 구절인데, 정말 진지한 것과 정말 가벼운 것은 같은 DNA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 내 경우도 그런 것 같지만, 코미디가 더 좋고 재밌긴 하다. 내가 너무 웃는 바람에 종종 NG가 난다. 김선아가 포장마차에서 술마시고 취해서 넘어지다가 구두 굽이 의자에 끼는 장면은 내 웃음소리 때문에 믹싱할 때 애를 먹었다. 복잡하고 미묘하고, 순간순간 지나가는 것들을 담아내는, 폴 토머스 앤더슨의 영화(<매그놀리아> <부기나이트> <펀치 드렁크 러브>) 같은 이야기를 언젠가 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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