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톨만한 시작일지라도, 대성할 조짐을 볼 수 있는 작품들이 있다. “이 만화 꽤 오래 끌겠군” 하는 생각과 “이제 겨우 1권이 나왔을 뿐인데!” 하는 탄식을 동시에 하게 만드는 작품들. <20세기 소년>처럼. 그리고 <히스토리에>처럼. <히스토리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개인 서기관이었던 실존인물 에우메네스의 이야기를 그린다.
노예 청년 에우메네스가 고향 칼데아로 돌아가게 된다. 에우메네스의 명석한 두뇌와 대담함을 보여주는 초반의 에피소드가 끝나면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일단 플래시백. 에우메네스는 원래 칼데아의 귀족 집안 둘째아들이었다. 그런데 에우메네스는 매일 같은 꿈을 꾼다. 바르바로이의 한 여인을 장정들이 둘러싸고 차례로 공격한다. 그런데 여자의 동작이 굉장히 민첩해서 오히려 장정들을 쓰러뜨린다. 마치 춤이라도 추듯. 그런데 여인이 어느 순간 에우메네스쪽을 바라보고 동작을 멈추자 장정들이 그녀를 공격, 강간하고 난도질해 그녀를 죽여버리는 꿈이다. 꿈의 의미와 꿈속의 여인에 대해 어린 에우메네스가 궁금해하는 동안 칼데아는 한 노예에 의해 쑥대밭이 된다. 그리고 에우메네스에 관한 비밀이 만천하게 공개된다.
작가 이와아키 히토시는 <기생수>로 이미 잘 알려져 있는데, 단정한 그림체와 상반되는 잔혹동화 같은 이야기에 장기를 보인다. <히스토리에>도 마치 위인전 만화 같은 느낌을 주지만, 내용은 첫장부터 에우메네스의 험난한 여정을 암시하듯 충격적이다. 일단 전투장면이 나오면 무자비한 살육과 강간은 예사이고, 철저한 계급제와 머리 가죽을 벗기는 잔혹함 등. 시체의 눈을 그리는 솜씨도 오싹할 정도 수준이거니와 그 시체의 눈을 바라보는 무표정을 그려내는 솜씨 역시 남다르다.
실존인물 에우메네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들 중 유일한 그리스인이었고 훗날의 페르가몬 왕국 아탈루스 왕조의 선조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무(政務)담당 부장이었으며, 뒤에 안티고노스 1세와 싸워 패한 뒤 소아시아로 쫓겼다가 피살되었다. 에우메네스는 플루타르크 영웅전에도 등장하는데, “붓대를 가지고 장난하는 사람이라는 조롱을 받던 처지에서 일어나 장군이 되었으며 찬란한 전과로 군권을 장악했다”고 묘사된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히스토리에>에 묘사된 것보다 부덕한 인물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