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뚱뚱한 노처녀가 왕자님과 사랑에 빠질 확율은?
정말로 궁금하다. 가진 것 없고 뚱뚱하고 못생긴 노처녀가 잘생긴 왕자님과 사랑에 빠질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 1/100? 1/1000? 진짜 연애가 어렵다면 계약 연애는 어떨까? 뚱뚱하고 못생긴 노처녀가 잘생긴 왕자님과 만나 계약 연애할 확률, 그것도 5천만원이라는 거금을 받고 연애할 확률은?
냉정히 말하자면, 삼순이 역시 신데렐라 계열에 속하는 캐릭터다. 로맨스 소설 속의 ‘계약 연애’란 곧 ‘진짜 연애’와 같다는 것쯤은 익히 알려진 바, 삼순이가 백마 탄 왕자님과 사랑에 빠질 확률은, 현실에서라면 잘 봐줘야 1%겠지만 드라마 속 세계에서라면 거의 100%에 가깝기 때문이다. 또한 성질 못된 남자와 그를 무시하는 여자 캐릭터의 등장도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자존심을 긁어 놓는 여자에게 불타 오르는 왕자님. 로맨스 소설을 한 두 번 읽어본 독자에게는 아마도 익숙한 반응이리라.
삼순이의 인기비결은 그녀가 뚱뚱해서만은 아니다
<내 이름은 김삼순>에 남다른 점이 있다면, 삼순이가 여느 신데렐라들보다 훨씬 뚱뚱하고 못생겼다는 건데, 아마도 이 부분이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주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럴 법도 한 것이, 예쁜 여자에게만 주어졌던 ‘왕자님과의 파티 초대권’이 거의 처음으로 뚱뚱한 여자에게도 주어진 셈 아닌가. 고운 심성, 명석한 두뇌, 뛰어난 재주, 지혜, 기타 등등을 선보일 절호의 찬스! 열광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그러나 삼순이의 인기비결을 그녀의 뚱뚱한 몸매로 결론 짓는 것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털털한 성격과 친근한 외모도 그녀를 응원할 충분한 이유가 되겠지만, 우리가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무얼까. 삼순이를 보게 하는, 삼순이를 응원하게 하는 진짜 이유는?
우선 ‘신데렐라 드라마는 뻔하다’라는 그 뻔한 편견부터 짚고 넘어가보자. 재벌 2세가 등장하여 여성 시청자의 환상을 부추기는 유형을 ‘신데렐라형’이라 할 때, 그런 드라마가 유독 ‘뻔해’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결국엔 돈 많은 남자를 사랑하게 되서? 그렇다면 <발리에서 생긴 일>의 여주인공이 결국엔 돈 많은 남자 정재민을 사랑하게 된 결말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또한 재벌 2세의 구애에도 아랑곳 없이 한 남자만을 사랑했던 <슬픈 연가>의 여주인공, 과연 특별하고 새로운 캐릭터였다고 할 수 있을까?
신데렐라 드라마에 돈 밝히는 여자는 없다
역설적이게도 신데렐라 드라마에 돈 밝히는 여자란 등장하지 않는다. 삼순이도 계약금 5천만원을 반드시 갚겠다 했고, <파리의 연인> 김정은도 회장님이 던져주신 돈을 당당히 거절한 바 있다. 그녀들이 돈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신데렐라 드라마에서는 전혀 새로운 설정이 아니다. (오히려 돈을 선택하는 쪽이 새롭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신데렐라 드라마를 비롯한 대부분의 멜로 드라마의 진짜 뻔한 점은, 언제나 사랑 받는 여자가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가난한 남자든, 부잣집 남자든, 하여간 남자 쪽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자만이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여자 쪽에서 먼저 고백했다거나, 더 많이 좋아한다거나, 조금이라도 더 적극적인 경우, 아쉽지만 그 사랑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사탕 발림 드라마의 세계에서도 이 부분만큼은 현실과 마찬가지로 냉정하기 그지 없다.
바로 이 점이 여성 시청자들이 삼순이에게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었으면 하는 기대, 그와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는 환상. 삼순이가 우리에게 불어넣는 환상은 ‘신데렐라’의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간절한 바람에서 나왔다. 그러니 한번이라도 약자의 입장에 처해봤던 사람이라면 삼순이가 어떻게든 힘을 내어 이겨주기를 바라게 되지 않겠는가. 지독한 첫사랑, 부잣집 왕자님, 뚱뚱한 노처녀. 누가 봐도 삼순이에게 불리한 게임이지만, 우리는 바란다. 그녀가 힘을 내주었으면 하고, 사랑을 이루었으면 한다.
일반적인 드라마였다면 주인공은 가녀린 희진의 몫이었을 테고, 삼순이는 모자란 여자쯤으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허나 반갑게도 이 드라마는 삼순이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못난 여자를 가리킬 때 흔히 쓰는 말 ‘삼순이’. 그 삼순이가 종국에는 ‘안녕하세요. 내 이름은 김삼순입니다!’ 당당히 외칠 수 있는 그 날을 즐겁게 기다리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