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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어야 사는 여자, <언두>
문석 2005-06-21

여기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한쌍의 커플이 있다. 남자 유키오의 일이 다소 바쁘고 여자 모에미가 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는 점만 빼놓는다면. 그러나 영화에서 말하듯 한 사람에게 ‘사소한 문제’가 다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되고 고통이 될 수’ 있는 법. 어느 날 집에 돌아온 유키오는 애완용 거북이가 노끈으로 돌돌 묶인 것을 발견한다. 그 다음에는 책이 묶이고, 가위가 묶이고, 집안의 집기가 모두 묶인다. 모두 모에미가 한 짓이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육체까지 결박하기 시작한다.

이와이 순지의 첫 영화 <언두>에서 파국은 일찍 시작된다. 모에미의 ‘강박성 속박 증후군’은 생각 외로 완강하고 집요하다. 모에미는 모든 것을 묶음으로써 자신으로부터 떠나고 있는 무언가를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키오에 대한 기다림이나 사랑까지도. 하지만 아무리 굵은 동아줄이나 쇠사슬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묶을 수는 없다. 모에미의 매듭이 단단하고 촘촘해질수록 둘 사이의 관계는 오히려 점점 느슨하고 헐거워질 뿐이다.

한데 모에미의 집착이 심해질수록 슬픈 느낌이 우러나는 건 이상한 일이다. 언뜻 보기에 심리 스릴러의 외양을 띠는 <언두>는 사랑의 진실과 본질에 천착한다. 하는 짓이 다소 엽기적일지언정 모에미의 결박에 대한 강박증은 죽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에 매달리는 <러브레터> 속 히로코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생각해보라, 여자의 “더 세게 묶어줘”라는 말이 슬프게 들리는 느낌을. 이와이 순지 특유의 현란한 스타일도 이 기묘한 사랑 이야기에 감성의 리듬을 부여한다. 초반의 따뜻한 색채와 안정적인 분위기가 후반에서 질릴 듯한 하얀색과 아찔한 앵글로 바뀌면서 절박한 모에미의 심경이 드러나며, 단락단락 삽입된 장면들의 인상적인 미장센 또한 주인공들의 심상을 조형적으로 표현한다. 무엇보다 <언두>는 <러브레터>나 <4월 이야기> <하나와 앨리스>에 깃든 ‘이와이 월드’의 반대편에 또 다른 어둠의 세계가 존재함을 일러준다. <언두>는 ‘다크 사이드 오브 이와이 월드’의 입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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