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의 <식객>, 오세호의 <낚시> 등 한국 만화계에도 훌륭한 전문 만화, 혹은 교양 만화의 맥은 이어져오고 있다. 이러한 전문 테마의 작품들을 밑받침해줄 첫 번째 요소는 무엇일까? 풍부한 자료 조사와 생동감 있는 인터뷰, 딱딱한 내용을 재기발랄하게 비벼내는 스토리텔링, 재미와 교양을 동시에 추구하는 균형 감각. 나는 이 모든 것의 밑바탕에는 소재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훈의 <MLB 카툰>이 지닌 가장 훌륭한 덕목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만화가 최훈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것은 아무래도 <일간 스포츠>에 연재된 직장인 만화 <하대리>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반쯤 취미로 시작한 것 같은 인터넷 연재작 <MLB 카툰>(네이버 만화에 연재)이 슬그머니 그의 얼굴이 되더니, 최근엔 고려대 마이어스 교수의 <뉴욕타임스> 기고로 국제적인 명성까지 얻게 되었다. 만화가도 그의 팬들도 놀라워할 만한 일인 것은 분명하다.
<MLB 카툰>이 얻게 된 인기와 지명도의 밑바닥엔 분명히 메이저리그 야구에 대한 광범위한 관심과 사랑이 깔려 있다. 하지만 박찬호의 성공 이후 여러 차례 시도된 국내의 메이저리그 소재 만화들이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한 상황에서, 유독 최훈의 만화가 빛을 발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는 특별한 캐릭터를 동원해 독자들의 감정을 이입시키고, 그를 통해 메이저리그의 깊은 세계로 들어간다는 식의 무리한 시도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힘을 뺀 채 객관적이고 딱딱한 정보를 직접적으로 주면서도, ‘아는 사람들끼리’ 더 즐거워할 요소를 조금씩 도드라지게 부각시킨다. 그는 여러 선수나 팀을 소개하면서 방어율, 승률, 출루율 등의 객관적인 수치들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동시에 ‘노장 투수의 경로당 일전’, ‘시리즈 6차전 공식 찌질이 에이로드’, ‘다저스의 미친 소 벨트레’ 식으로 이미 MLB 경기 속에서 어느 정도 캐릭터화된 인물들을 데리고 와 재치있는 유머를 전해준다. 이 건조함과 발람함의 극단적인 병렬이 오히려 만화를 풍부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고 있다.
전문 만화의 가장 큰 적은 의외로 그 분야를 파고 있는 마니아들이다. 약간의 실수로 꼬투리를 잡힌 만화가들이 좌절감과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는 일도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하지만 ‘그냥 좋아서 그리는 만화’라는 최훈의 솔직함이 이 작품을 좀더 편안하게 해준다. 그가 최근 편 <나의 MLB 편견기>에서 스스로 잘못 알고 있었던 메이저리그 상식에 대해 솔직하게 토로하는 데서 얻는 독자들과의 공감은, 이 만화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그의 만화에서는 잘하는 선수보다는 실수하는 선수가 주인공이 될 때가 더 많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