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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칸에서 만난 비장의 영화 두편

칸영화제에 다녀왔다. 밥 먹고나면 영화를 보고, 영화를 보기 위해 밥을 먹었다. 그러니 다른 이야기를 할 도리가 없다. 영화 얘기밖에. 그중에서 두편의 영화를 소개하고 싶다. 그러나 이건 베스트라는 명목이 아니다. 발견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싫다. ‘칸에서 상영한, 하지만 큰 인기는 없었던, 그래도 올해 부산에서는 관객과 함께 꼭 다시 보고 싶은 아시아영화 두편에 관한 이야기’가 지금 하려는 말이다.

정말 감동적인 영화는 캄보디아 출신 감독 리티 판의 <불타버린 극장의 예술가들>이었다. 얼마나 좋았냐하면, 원고에 넣을 감독이 없다고 걱정하는 동료기자에게 이런 영화가 있으니 한번 보라고 알려줘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로 좋았다. 욕심 같으면 마음속에 혼자만 넣어오고 싶었다(하지만 말하기를 잘한 것 같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걸 보니 뭔가 나눠준 것 같아 흐뭇했다. 지금 이 글도 그래서 쓴다). 천박하긴 해도, 영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굳이 비유 하나를 사용하자면, <불타버린 극장의 예술가들>은 허우샤오시엔의 정서로 아핏차퐁의 공간에서 지아장커의 인물들과 찍은 영화다. 다들 설마라고 반응한다. 하지만 보고 나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어릴 적 난민으로 떠돌다가 프랑스로 들어가 영화공부를 한 그는 의아하게도 오로지 고국인 캄보디아에 대해서만 관심을 둔다. 가난에 찌들어 박쥐를 잡아먹고 사는 하층민 연극 예술가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다. 놀라운 건 고지식한 역사해석만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 사람들의 무료한 나날들이 영화의 전부지만, 그 안에는 가슴이 패는 슬픔이 있고, 안아주고 싶은 촌스러움이 있고, 따라잡기 힘든 기괴한 유머가 있고, 종과 횡으로 묶인 비상한 메타 내러티브가 있다. 오랜만에 어떤 편견도 없이 애정이 느껴지는 동시대 영화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이상한 경험으로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된 건 스즈키 세이준의 <너구리 저택의 오페라>였다. 영화제 종반에 상영한 이 영화를 볼 때쯤 나는 앉아 있으면 복통을 일으키는 수준에 이르렀고, 맨 뒤에 서서 영화를 보았다. 아마도 극장 안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여기저기서 못 봐주겠다는 듯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속속 빠져나가고 있었다. 일본의 대가라는 점을 그들 서양기자들도 모르지는 않았겠지만, 이름값만으로 앉아 있기에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표정들을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언제 하늘나라로 올라갈지 모를 이 노인장은 예전 못지않은 발칙함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너구리 공주와 인간 왕자의 러브스토리가 주이지만, 원색의 휘황찬란한 빛깔들과 거칠 것 없는 막무가내의 상황 전개 속에서, 언제 어디서나 뮤지컬로, 오페라로 변신한다. 초반의 역경(?)을 딛고 중반까지만 보고 있으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영화의 리듬에 몸을 맡기게 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때 든 생각. 우리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보며 얼마나 떠들고, 환호하고, 좋아할까! 장담하건대 이 영화가 부산에서 상영된다면 최고의 인기작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여기까지 쓰면서 나는 일부러 ‘이 영화들이 마냥 좋았다’라는 추상적인 투로만 쓰고 있다. 관객과 다시 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편지를 쓰자.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이 영화들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두 영화 보고 나서 안 재미있으면 책임은 내가 진다.

*추신: 착한 사람에게 꼭 공개적으로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다. 장태순씨 고마웠습니다. 칸 기사는 장태순씨와 함께 쓴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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