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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석의 씨네콜라주] 네번의 결혼식, 그리고 또 결혼식

나는 이것이 꿈이라는 걸 뻔히 안다. 그렇지 않다면, 저 크롬 빛깔의 파랑새가 내 눈앞에서 포로롱 춤추고 있진 않을 테니. 그리고 혹시 그것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손을 내민다. 왜냐고? 꿈이니까. 그리고 정말 꿈처럼 파랑새는 내 손 안에 들어왔다. 작은 부리로 내 손을 쪼지만 나는 놓아주지 않으련다. 그러자 파랑새는 귀여운 입을 벌리고 내게 노래부른다. “따-아- 따-아-, 따아아르릉- 따르릉-.” 먹먹한 머리 속으로 알루미늄처럼 차가운 벨 소리가 찢고 들어왔다. 아, 언제나 침대에서 전화까지는 너무 멀다. 로렌스의 사막처럼 멀기만 하다.

“여보세요?” “네, 미스터 빈 댁인가요?” “아닌데요. 저는 미스터 휴입니다.” “앤디양로부터 콜렉트콜이 왔습니다. 받으시겠습니까?” “앤디라구요? 잘 모르는 사람인데요. 그리고 저는 빈이 아니라고요.” 잘못 걸려온 전화 때문에 단잠을 깼다. 아, 이 황금 같은 일요일에 말이야. 나의 일요일 습관도 모르나? 언제나 일요일 아침이면 정오까지 느긋하게 늘어져 잠을 자다가, 잠을 자다가, 맞아 언제나 부리나케 결혼식에 달려가곤 했지. 이런 지금 몇시야?

친구의 결혼식장인 호텔에 도착하니, 벌써 예식은 끝나고 피로연이 한창이었다. 휴는 그제서야 자신이 아침도 못 먹고 달려왔다는 걸 깨닫고, 빈 접시를 들고 뷔페 줄의 꼬리를 이었다. 그때 어떤 여자가 아는 척을 한다. 아, 지난주에 다른 친구 결혼식에서 만난 아가씨다. “늦었네요. 이리 오세요.” 부르는 소리에 휴는 그녀의 자리로 걸어갔다. 테이블에는 초밥이며, 홍어회며, 뷔페의 핵심 음식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우와, 이걸 다 드세요?” “호호, 이거 먹으러 온걸요. 근데, 아침에 제 전화 받으셨죠?” “전화라뇨?” 맞아, 이 여자가 지난주에 만났을 때 내가 일요일 결혼식마다 늦는다니까, 모닝콜을 해주기로 했었지. “아침에 앤디라는 여자한테 전화 안 왔던가요?” “네, 그런데요?” “그거 제가 한 거예요.” “아니, 그쪽 성함은 조….” "네, 조은숙이에요. 그런데 왜 앤디라고 했냐고요? 그래야 콜렉트콜을 안 받을 거 아니에요. 그럼 전화요금이 안 나가죠. 자, 모닝콜 서비스료 주세요.”

은숙은 꼼꼼함이 지나쳐 쫀쫀하다고 여겨지긴 했지만, 꽤나 매력적인 아가씨였다. 성우 지망생인데 아르바이트로 목소리 연기를 한다며 자기가 출연한 작품들을 알려주었다. <다음 정차할 역은 시청, 시청> <문이 닫힙니다. 올라갑니다>처럼 꽤나 유명한 작품을 만들었던 주인공이었다.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작품은 <왜 때려, 왜 때려? 아야, 아야!>인데, 연기의 생생함을 위해 직접 망치로 이마를 때려가며 만든 작품이라며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정현의 <바꿔>도 자기 작품을 표절한 것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휴는 그녀의 현란한 말솜씨에 이끌려 그날 늦게까지 호텔 바에서 술을 마셨다. “그만 일어날까요?” 자정이 돼 휴가 가방을 집어들자, 은숙은 슬쩍 엉덩이를 들며 물었다. “네, 그러죠. 그런데 차 가지고 오셨나요?” “아니요. 저는 30년 뚜벅이인걸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은숙은 소파 위에 쓰러져 잠들고 말았다. 휴는 이 여자가 택시비가 아까워 이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속아주는 척 방을 잡고 그녀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날 밤 휴는 잠을 자지 못했다. 은숙이 밤새 에로 영화를 틀어놓고, 거기에 나오는 신음소리를 따라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이런 목소리 연습을 해보냐’는 것이었다. 휴는 그녀의 놀라운 집념에 감복해 프로포즈를 하고 말았고, 그녀는 흔쾌히 승낙, 한달 뒤로 날짜를 잡았다.

운명의 그날. 성대한 결혼식이 끝나고 둘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호텔 방에 도착했다. “은숙씨. 우리 둘이 열심히 살면 곧 집도 살 수 있을 거야.” “집이 무슨 필요가 있어? 이제 한달에 한번씩 이사다닐 텐데.” 은숙의 프로젝트는 이것. 애당초 그녀는 부모님에게 알리지도 않고 결혼식만 올린 것이었다(이미 부모님을 모시고 가짜 결혼식을 한 것이 세번). 그리고 이제는 매달 휴를 다른 회사에 취직시킨 뒤, 결혼식을 올리고 부조를 챙긴 다음 그만두게 하겠다는 것이다. 덕분에 휴는 일요일 아침마다 꿈속의 파랑새를 놓치게 되었다. 그래도 나은 건, 남의 결혼식이 아니라 자기 결혼식 때문이라는 것.

등장인물

휴: 만년 노총각. 일요일 아침마다 친구의 결혼식에 지각으로 입장하는 것이 취미. 그의 인생에 봄꽃이 피려나?

은숙: 꼼꼼하기 이를 데 없는 성우 지망생. 이 사회의 소금이 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