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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적인 삶을 꿈꾸며 살다간 여성, <엘리자베스>
이명인 1999-03-23

제작을 맡은 앨리슨 오웬은 ‘헨리 8세, 크롬웰 등 여러 역사적 인물을 검토해 보았지만 엘리자베스 1세만큼 현대적 감각에 맞는 인물이 없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는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요, 상상력으로 역사의 틈을 메운 문학작품이 아니다. 단지 역사를 불러세워 회고하는 것은 어떤 관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자신 엘리자베스에 대해 문외한이었다고 고백하는 인도출신 감독 세카르 카푸르의 관점은 어떤 것이며, 그는 엘리자베스라는 한 권력자를 어떻게 서술하려는 것일까?

<엘리자베스>에서 무엇보다도 도전적인 관점은, 확인된 바 없이 소문으로만 남았다는 엘리자베스의 사랑이며 그녀의 상징과도 같이 알려진 처녀성일 것이다. 어두운 분위기로 일관하며 음모스릴러의 진면목을 보여주던 영화가 가장 밝게 스포트라이트를 두는 부분은 자연의 대지에 맘껏 취해 있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이다. 이 생기발랄한 처녀에게 사랑이 그냥 지나쳐 갔다는 사실을 감독은 아마 믿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영화는 사랑의 상대인 로버트 더들리를 통해서만 엘리자베스의 아름다움을 맘껏 발산한다.

영화의 말미, 반대파를 숙청하고 난 엘리자베스는 성모 마리아상을 바라본다. ‘국민들은 이 시대의 성모를 원한다’는 월싱엄의 말에 엘리자베스는 순결한 백색의 마리아 형상 앞에서 잉글랜드의 성모로 다시 태어날 것을 결심한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를 자르고 얼굴은 흰색 칠로 가린 백색의 엘리자베스는 이렇게 ‘버진 퀸’을 선언한다. 엘리자베스 삶의 비애와 오만이 겹치는 순간이다. 아마도 영국인에 의해서는 결코 제기될 수 없었을 이 아이콘이 지니고 있는 모순적 문제가 세카르 카푸르에게는 도전으로 여겨졌다. 그녀는 버진 퀸의 신화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만한 엘리자베스의 육체적 사랑을 과감하게 다룬다. 밤마다 사랑을 나누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아무에게도 속박될 수 없는 존재임을 외친다. 최고의 권력을 가졌으면서도 남편감에 따라 나라의 장래가 결정된다는 강압속에 놓여 있던 엘리자베스의 모순은 시대와 계층을 막론하고 여자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편견의 깊은 골을 보여준다. 엘리자베스는 버진 퀸의 아이콘을 자신의 시대에 맞는 생존전략으로 택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세카르 카푸르는 인도의 전설적 여성전사 폴란 데비의 삶을 그린 <밴디트 퀸>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밴디트 퀸>과 마찬가지로 <엘리자베스>도 영웅적인 삶을 꿈꾸며 살다간 여성이라는 점에서 같은 맥락 위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그는 외부인이고 게다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출신이다. 대부분의 시대극은 화려함과 스펙터클을 내세우지만 그의 시선은 냉정하고 객관적이다. 카푸르는 절제력과 통제력으로 영화를 끌고 간다. 웅장하고 고풍스런 고딕양식의 건축물과 회화를 보는 것처럼 정적이면서도 깊이있는 배경 속에서도 계략과 혈흔으로 가득한 왕궁의 세계는 마치 누아르처럼 어둡고 침울하게 묘사돼 있다. 시대극에 대한 일반적인 상상을 뛰어넘는 독특한 비주얼의 창조이다. 그러나 비주얼의 강렬함으로 인한 긴장감은 영화를 계속적으로 추동하진 못한다. 영화는 지나치게 음모에 치중한 나머지 스릴러의 강약을 조절하지 못했고, 계속되는 사건들은 오히려 지루함을 주고 드라마틱한 삶을 창조하지는 못했다.

엘리자베스의 시대

앤 볼린의 딸, 예술을 꽃피우다

헨리 8세는 아라곤의 캐서린과 결혼해 메리 1세를 낳았으나, 남자 상속인을 바라는 마음에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볼린과의 결혼에서 1533년 엘리자베스를 얻었다. 그러나 3년 뒤 앤이 남자아이를 유산하자 그녀를 골방에 가두고 제인 시무어와 결혼해 에드워드 왕자를 얻었다. 엘리자베스는 1558년부터 44년간 잉글랜드를 지배했다. 그녀는 아버지처럼 야망적인 권력자도, 그녀의 언니처럼 이념주의자도 아니었고,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종종 중요한 문제들을 지연시켰다고 한다. 그녀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화합’이라는 표어 아래 불안정한 상태의 종교를 통일한 일이다. 관련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는 데는 리처드 아텐보로가 연기한 윌리엄 세슬의 공이 컸다고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로버트 더들리와 월싱엄은 실제로는 정책입안 기구인 추밀원의 일원으로 신념이 확고한 정치가들이었다. 1585년 스페인과의 전쟁이 시작되자, 엘리자베스는 로버트 더들리에게 임무를 맡겼으나 실패했고, 불명예스러운 귀국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고 한다. 또한 스코틀랜드의 메리 스튜어트는 영화처럼 암살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엘리자베스 암살에 연루되어 사형당했다.

엘리자베스가 이끌던 튜더 왕조 시대를 더욱 화려하게 만든 것은 문학과 예술에서의 업적이다. 니콜라스 힐리어드는 세밀화로 명성을 얻었고, 엘리자베스 시대를 묘사한 우화적 서사시, ‘요정 여왕’의 시인 에드먼드 스펜서는 영국 서정시를 발전시켰다. 또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크리스토퍼 말로의 연극은 튜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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