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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 콤플렉스라는 이름의 함정, <스타워즈>

<스타워즈> 프리퀼, 자기 우주에 빠져 작품의 진짜 재미를 놓치다

한국 <버피>(한국 방영명 <미녀와 뱀파이어>) 팬들 중 날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될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난 내 <버피> 에피소드 리뷰에 분노하며 내 리뷰 사이트로 연결되어 있는 링크를 지워버리자고 주장하던 팬 커뮤니티 회원들을 몇명 알고 있다. 그들에겐 내가 당시 6, 7시즌에 박했던 게 팬으로서 배반행위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아마 날 팬의 가면을 뒤집어쓴 안티팬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눈을 딱 감고 7시즌이 6시즌 때 잠시 주저앉았던 시리즈를 멋지게 회복했다고 아무리 믿고 싶어도, 6시즌 이후 이 시리즈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7시즌 이후 계속 바닥을 향해 달려갔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팬층이 더 넓은 <X파일>의 애호가들은 조금 더 솔직할 것이다. 어디까지가 이 시리즈의 전성기였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겠지만 그래도 이 시리즈의 마지막 3시즌이 재능과 시간의 낭비였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부인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운좋게 그럴 수 있는 나쁜 기억력의 소유자라고 해도 과연 피날레 에피소드의 허망함까지 잊을 수 있을까?

이건 텔레비전 세계에선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다. 히트작인 텔레비전 시리즈들은 대부분 필요 이상으로 수명이 길다. 마지막 시즌까지 이전의 창의력과 매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시리즈는 거의 없다. 대부분 그들은 조금 더 나간다. 그게 자의건 타의건 간에.

하지만 <버피>나 <X파일>은 일반적인 시리즈들이 갖추고 있지 않은 핸디캡을 하나 더 가지고 있다. 그건 이들이 기본적으로 판타지/호러/SF라는 것이다. 두 작품들 모두 우리 세계와 외양은 비슷하지만 속은 전혀 다른 환상 세계를 다루고 있다. <앨리의 사랑 만들기>의 작가들은 기껏해야 보스턴이라는 실제 공간에 살짝 괴팍한 변호사들을 끼워넣었을 뿐이다. 하지만 <버피>와 <X파일>의 작가들은 고유의 법칙이 존재하는 자기들만의 세계를 창조했다.

이런 식의 작품을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창조주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그들은 더이상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그들이 시리즈를 이어가는 동안 창조한 우주는 너무 근사하고 멋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세계의 법칙과 운명을 좌우하는 전능자인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이야기나 캐릭터보다는 우주 자체에 매달리게 된다. 수많은 이 장르의 작가들이 콤플렉스의 희생자가 된다. 아이작 아시모프와 같은 거장들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아이작 아시모프야말로 이 콤플렉스의 최대 희생자이다. 그의 후기작들이 재미없는 건 나이 들어 필력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물론 그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괜히 잘 연결되지 않는 그의 전작들을 연결해 하나의 거대한 역사를 만들려는 허망한 시도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왜 이들은 실패하는 걸까? 그건 그들이 만든 우주가 사실 별게 아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그들의 이야기도 그들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깊이있는 것도 아니다. <버피>는 기껏해야 금발머리 치어리더가 뱀파이어를 사냥하는 재미있는 코미디액션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은 기껏해야 심리역사학이라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활용한 깜찍한 단편 모음집이다. <X파일>에서 매력적인 것은 외계인과 흡혈귀들이 공존하는 정체불명의 미로 자체이지 그 해답은 아니다. 제대로 정신이 박힌 작가라면 아무리 자기 시리즈가 인기가 많아도 아이디어와 캐릭터에 집중하지, 괜히 쓸데없이 자신의 우주와 설정을 과대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장르의 작가들은 대부분 팬들이 형성한 좁은 컬트 그룹 안에서 과대망상증에 빠지게 마련이다. 그 결과는? 이야기는 지루해지며 주제는 생뚱맞아진다. 캐릭터들은 엉겁결에 우주의 운명을 짊어지고 헉헉거리다가 이전의 매력까지 날려버린다. 결정적으로 시리즈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것을 질겅질겅 씹어 삼키다가 심한 소화불량에 빠지고 만다.

선배들의 실수담 그대로 따른 조지 루카스

자, 그럼 <스타워즈>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아마 여러분들 중 상당수는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가 미적지근했던 앞의 두 프리퀄들이 망쳐놓았던 시리즈의 위상을 어느 정도 회복한 작품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도 그 사실을 아주 부정하고 싶지도 않고.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이 작품에 관대하고 싶어도 한계는 있다. 결국 우리가 보고 칭찬하는 영화는 조지 루카스가 만든 실제의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보고 싶었고 오래전부터 결말을 알고 있었던 친숙한 이야기라는 것을. 그리스 비극에 비유한다면, 관객이 정말 좋아한 건 눈앞에서 상연되는 소포클레스의 연극이 아니라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 자체였던 셈이다.

루카스는 자신의 히트작에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 아시모프나, 조스 위든, 크리스 카터가 저지른 실수들을 거의 그대로 저질렀다. 너무 모범적이어서 나중에 반면교사의 교과서로 써먹을 수 있을 정도다.

우선 그는 자신이 다루는 세계를 과대평가했다. <스타워즈>의 우주는 결코 그렇게 새롭거나 신선하거나 대단한 의미가 있는 곳은 아니다. 은하 제국과 그에 대항하는 저항군이라는 설정은 펄프 작가들이 몇십년 동안이나 써먹었던 아이디어다. SF와 구닥다리 판타지의 결합 역시 특별히 신기한 게 아니고. 조셉 캠벨 주니어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시길. 요새 SF나 판타지를 쓰려는 작가들 중 조셉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안 읽은 사람이 어디 있나? 이것들은 모두 루카스가 엄청나게 잘한 일이 아니다. 그는 그냥 조심성 있는 풋내기 작가들이 대부분 그러는 것처럼 모범적으로 굴었을 뿐이다. <스타워즈>에서 루카스의 공헌은 뻔한 스페이스 오페라의 세계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그 세계를 영상 매체를 통해 기가 막히게 구현했다는 데에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루카스는 모두가 아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언젠가부터 그는 자신의 우주가 포스트 모던한 잡탕찌개가 아닌 독자적인 깊이와 철학을 갖춘 무언가 대단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가 만든 캐릭터들도 과대평가했다. 물론 나도 오리지널 시리즈의 다스 베이더를 좋아한다. 그는 멋있는 악당이고 목소리도 근사하며 뒤집어쓴 검은 가면도 죽인다. 돈만 충분히 있다면 나도 성게군처럼 다스 베이더 목소리 변조 가면을 사서 쓰고 놀고 싶다. 하지만 루카스는 왜 다스 베이더가 그렇게 인기있는 인물인지 까먹고 있었다. 다스 베이더의 매력은 루카스가 ‘정교하게’ 묘사한 캐릭터에 있는 게 아니라 설정과 폼과 미스터리에 있다. 관객은 오비완 케노비와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마지막 결투에 대해 피상적인 호기심을 품고 있긴 했지만 다스 베이더의 캐릭터 자체에 대해서는 별 생각도, 관심도 없었다.

결정적으로 그는 자신의 작가적 능력을 과대평가했다. 아마 그는 오리지널 시리즈에서도 잘했으니 이번에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프리퀄의 세계와 오리지널 시리즈의 세계는 전혀 다르다. 오리지널 시리즈의 각본을 쓸 때, 루카스는 자신의 능력의 범위를 넘지 않았다. 오리지널 삼부작의 플롯과 갈등, 인물들은 단순했으며 종종 이야기가 어두운 쪽으로 빠지긴 했어도 바보스러운 만화적 유머를 잃은 적이 없었다. <스타워즈>는 기본적으로 어린아이도 즐길 수 있는 단순하고 소박한 이야기였다. 딱하게도 프리퀄에선 모든 게 그의 능력 밖이었다. 이 이야기는 고도로 복잡한 플롯과 그에 어울리는 복잡한 인물과 갈등들, 깊이있는 정치철학, 결정적으로 그들을 표현할 수 있는 세련된 대사가 필요했다. 한마디로 오리지널 시리즈가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들이다.

루카스가 제정신이었다면 그는 이 삼부작을 직접 쓰는 일 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그게 또 논리적으로 이치에 맞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비전이 있는 프로듀서이며 기획자이며 리더이다.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더 능력있고 테크닉도 뛰어난 사람들을 고용해 부려먹는 게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슬프게도 루카스는 자기 발로 함정에 들어갔다. 왜 이렇게 똑똑한 사람이 그런 잘못을 저질렀느냐고 묻는다면, 이미 난 위에 답변을 했다. 이 장르에서 인기있는 시리즈의 발명가이면서 창조주 콤플렉스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으려면 그냥 똑똑한 것만 가지곤 어림없다. 아니, 이 함정 자체가 똑똑한 사람들만 골라서 빠트리게 디자인되어 있다. 처음부터 성공적인 SF/판타지 시리즈라는 것 자체가 그런 악순환의 함정을 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처음부터 없었던 걸까? 아마 루카스가 다른 작가들과 감독들을 기용했다고 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루카스의 ‘비전’은 남아 있었을 것이고 작가들 역시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을 테니까. 증거도 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2: 클론의 습격>과 <시스의 복수>를 연결하는 겐디 타르타코프스키의 애니메이션 시리즈 <클론 워즈>를 보라. 여전히 타르타코프스키의 번뜩이는 스타일이 돋보이는 작품이긴 하지만 그 역시 루카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다.

그나마 해답 비슷한 건 경쟁 시리즈인 <스타트렉>에 있는 것 같다. <스타트렉>의 우주가 여러 편의 스핀 오프 시리즈를 내며 수십년간 수준저하 없이, 아니 상당한 수준의 질적 성장을 이룩하기까지 하며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그 세계의 창조주인 진 로젠버리한테서 해방되었기 때문이다. 팬들은 잘 이야기하지 않는 비밀이지만, <스타트렉: 넥스트 제너레이션>에서 로젠버리의 영향력은 미미하다. <스타트렉: 넥스트 제너레이션> 이후의 우주를 구축한 사람들은 로젠버리가 아니라 릭 버먼이나 브래넌 브래가 같은 그의 후배들이다. <스타트렉> 우주가 절정을 구가할 때 로젠버리는 살아 있지도 않았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로젠버리가 <스타트렉: 넥스트 제너레이션>을 위해 낸 아이디어 대부분은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스타워즈> 우주가 앞으로도 가치있는 상상력의 공간으로 살아남길 바란다고? 해답은 하나다. 루카스가 포기하거나 죽을 때까지 기다리라. 하지만 그건 앞으로 한동안 어림없는 일이니 한 가지 대안을 내놓겠다. <스타워즈> 우주를 무대로 하되, 스카이워커 가족에서 될 수 있는 한 멀리 떨어진 변두리를 배경으로 독자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 뒤, 루카스에게 가져가는 것이다. 이야기가 충분히 좋다면 아마 루카스도 여기엔 큰 간섭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그의 비전이 상처받는 일은 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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