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영화’는 애매하다. 감독이 여성이란 얘기인지, 주인공이 여성이란 얘기인지, 여성문제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는 얘기인지, 여성의 시각과 화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야기한다는 얘기인지, 호칭만으로는 정확한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우리가 접하는 영상의 대부분이 남성의 눈을 통해 바라본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현실에서, 아마도 앞에 열거한 모두가 여성영화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2년 만에 개최되는 ‘페미니즘 비디오 액티비스트 2005’는 이중에서도 여성의 시각, 그리고 레즈비언의 시각을 강조하는 영화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오는 6월19일부터 24일까지 총 6일간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세계 곳곳의 여성작가 20여명의 작품 70여편을 통해 여성영화의 스펙트럼을 확장해줄 것이다.
1986년부터 1995년에 걸친 8편의 대표작을 상영하는 피필로티 리스트는 각종 비엔날레를 통해 작품을 발표했던 스위스 출신의 미디어 아티스트. 여성성을 주요한 코드로 사용하여 영상매체가 재현하는 에로티시즘의 문제를 고발해왔다. 홍콩의 대중문화를 적극 끌어들여 여성주의적 텍스트로 새로 쓰기를 시도하고 있는 홍콩 출신 작가 엘런 포는 11편의 작품을 들고 한국을 찾는다. <여신의 노래>(1992)는 유명한 오페라 듀오 얌과 박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사. 오랜 시간에 걸쳐 함께 무대에 선 이들의 모습과 홍콩의 현재 모습을 몽환적으로 배치하여, 이들이 미친 문화적 영향과 둘이 함께했던 시간을 고찰한다. 하이 8mm 비디오의 특성을 활용하여 권력과 욕망 등을 탐구해온 줄리 잔도는 고전영화, 소설, 아이들의 유희 등 일상적인 텍스트 속에 감춰진 의미를 발견한다. 여름 캠프에서 처음 만난 쌍둥이 자매가 역할 바꾸기를 시도하는 할리우드영화 <페어런트 트랩> 속 장면을 패러디하여 원본과 교차편집한 <명백한 함정>(1999), 에로틱 소설의 고전인 <O의 스토리>를 새로운 방식으로 분석한 <어 오!>(1993) 등이 그런 작품들.
일본에서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젊은 여성작가 데즈리 림과 이리의 작품들은 레즈비언 혹은 여성의 일상을 친숙한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데즈리 림은 일본에서 퀴어작가가 만든 첫 레즈비언 상업영화로 기록된 <슈가 스위트>(2001)를 비롯, 동성애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음담패설이 광둥어와 영어를 오가면서 어떻게 오역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흠뻑 젖은>(2002)까지 7편의 작품을 소개한다. 1999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리의 영화는 조야한 완성도와 서툰 연기에도 불구하고 도쿄의 현재를 살아가는 레즈비언의 일상을 생생하고 친숙하게 표현한 솔직함이 돋보인다. 취향의 공유가 호감으로 이어지는 두 레즈비언의 이야기 <콧노래 부르는 나와 기분좋게 걷는 그녀>,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는 소심한 레즈비언의 가슴앓이를 소박한 반전을 통해 보여주는 <초콜릿> 등 3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여성작가들은 어떤 방식으로 동시대의 현실을 고민하고 있을까. 김진열(<잊혀진 여전사>), 강은수(<마스크걸>), 곽은숙(<나혜석 괴담>) 감독의 최근작을 비롯하여 평론활동과 작품제작을 병행하고 있는 김소영 감독의 작품 5편 등은 한국 페미니즘영화의 경향과 현주소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밖에도 일본과 홍콩, 한국의 레즈비어니즘 작품들을 상영하는 섹션들은 특정작가로 묶이지 않는 각국 레즈비어니즘영화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데즈리 림, 엘런 포, 이리, 나니와 비니루, 우라라 사토코, 오오이시 가즈요 등의 감독들을 초청한 이번 영화제의 다양한 부대행사 역시 주목할 만하다. 한국, 홍콩, 일본에서 현재 활동 중인 작가들과 함께 아시아의 레즈비어니즘 비디오 액티비즘을 이야기하는 국제세미나(6월20일 오후 4시30분 이화여대 포스코), 여성주의 퍼포먼스(6월24일 오후 8시 라이브클럽 빵)를 비롯하여 감독과의 대화, 강연회 등을 통해 여성영화의 다양한 기능과 가능성을 고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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