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수줍은 남자 브랜단(피터 맥도널드)이 다혈질 여자 트루디(플로라 몽고메리)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트루디 역시 교회 성가를 부르는 브랜단의 목소리에 반해 두 사람은 곧장 운우지정(雲雨之情)에 돌입한다. 그러나 트루디는 밤마다 수상쩍은 외출에 나서고 브랜단은 그녀가 남자를 거세한 뒤 죽이는 살인 용의자가 아닌지 의심한다. 트루디가 자신의 직업이 도둑이라고 실토하자, 얌전한 학교 선생인 브랜단은 커플 도둑이 될 것인가 아니면 실연의 아픔을 견딜 것인가라는 기로에 선다
■ Review
이렇게 다른 두 남녀가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브랜단이 성가대용 테너 목소리로 정성껏 부르는 <파니스 안젤리쿠스>(생명의 양식)를 트루디는 늘 “페니스 어쩌고저쩌고” 하는 노래라고 기억한다. 어머니에게 장 뤽 고다르에 관한 책을 선물하고 파스빈더 영화 포스터를 소중하게 챙겨오는 브랜단과 달리 트루디의 취향은 “심각하지 않고 흑백이 아니며 에마 톰슨이 나오지 않는 영화”쪽이다. 브랜단이 침대 위에서 “당신 얼굴에 고향 마을의 오솔길이 보인다”는 옛날 영화 대사를 읊조리면, 트루디는 시트를 뒤집어쓴 채 성모 마리아를 흉내내다 베개 밑에 깔아둔 담배를 꺼내 문다.영화의 전반부는 이처럼 판이하게 다른 배경과 취향, 성격을 가진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매혹되는 모습을 묘사한다. 현실에서라면 티격태격하는 입씨름이 적지 않겠지만 로맨틱코미디답게 오히려 둘의 기이한 관계로부터 코믹한 에너지를 뽑아낸다.
중반부는 트루디의 의심스러운 밤생활로부터 시작해서 사도마조히즘과 거세공포를 풍자하는 유쾌한 스크루볼 코미디로 전개된다. 트루디가 가지고 있는 이상한 공구들과 검정마스크 때문에 TV뉴스에 나온 바로 그 살인자가 아닌지 불안에 떨던 브랜단은, 그녀가 자신을 침대에 묶으려 하자 아랫도리를 움켜쥔 채 비명을 지르며 도망간다.
후반부는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서로의 생활에 엮이면서 변화해간다는 내용인데, 수줍고 얌전한 학교 선생이 도리어 사고를 치고 안하무인이던 트루디가 혼자 책임을 뒤집어쓴다. 마침내 <파니스 안젤리쿠스>는 희한한 장애물을 뚫고 울려퍼지는 사랑의 송가가 된다.
<브랜단 앤 트루디>의 원제는 <브랜단이 트루디를 만났을 때>(When Brendan met Trudy)인데,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라는 로맨틱코미디를 의도적으로 상기시키면서 미국식과 영국식 코미디가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겠다는 자의식을 반영한다. <브랜단 앤 트루디>는 영화에 빠진 주인공이 나르시스틱한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코미디이면서도, 영국영화 혹은 아일랜드영화에 관해 최근 우리가 들은 그대로, 무언가 있어 보이는 주제와 스타일을 잊지 않는다. 이를테면 대기근 때의 아일랜드 서민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를 언급하는 트루디가 도둑질이라는 안이한 직업을 갖고 있다거나, 고상한 문화에 대한 자만에 빠져 신식 테크놀로지를 등한시하는 브랜단을 통해 영국·아일랜드의 국가적 이미지를 풍자한다.
<브랜단 앤 트루디>는 자유주의적인 감수성을 바탕으로 대중문화와 미디어를 끌어들이고 아일랜드 터치를 가미함으로써,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좋아했던 코미디 관객과 까다로운 안목을 가진 관객을 동시에 만족시키겠다는 야심을 보여준다.
김소희/ 영화평론가 cwgod@hanmail.net
각본 로디 도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전
각본을 쓴 로디 도일은 영미권의 유력한 문학상인 부커상 수상자이자 영화광답게 수많은 고전영화들을 신선한 코미디 감각으로 끌어들였다.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포스터를 방 안에 붙여둔 브랜단이 장 폴 벨몽도의 걸음걸이와 제스처를 흉내낸다는 것쯤은 기본에 속하겠지만, 빗속에서 무정하게 뒤돌아서는 트루디의 시선을 끌기 위해 교통사고를 당한 척하며 빗물 위에 납작 엎드린 브랜단의 모습이 <선셋대로>(1950, 빌리 와일더)에서 수영장에 빠져 있던 윌리엄 홀덴에게 경의를 표한 장면이라는 것은 유쾌한 발상이다.
주인공 브랜단은 영화와 현실을 굳이 구별하지 않는다. 오히려 심란한 애인과 나누는 골치 아픈 사랑을 멋진 영화들과 뒤섞음으로써 자신의 현실을 곧장 환상적인 열반으로 끌어올린다. 첫 데이트 할 때 <옛날 옛적 서부에서>(1969, 세르지오 레오네)를, 실연당했을 때는 <선셋대로>와 <노틀담의 꼽추>(1939, 윌리엄 디이털)를, 절도행각에 나설 때는 <네 멋대로 해라>(1960, 장 뤽 고다르)를 상상할 수 있다면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그외에도 <아프리카의 여왕>(1951, 존 휴스턴), <말없는 사나이>(1952, 존 포드), <수색자>(1956, 존 포드), <리버티 발렌스를 쏜 사나이>(1962, 존 포드), <유쾌한 프로듀서>(1968, 멜 브룩스) 등 서구인의 추억을 구성하는 고전영화들이 수시로 튀어나온다. 무성영화 시절의 아이리스 기법을 사용한 것도 추억 모음에 한몫한다.
엄마보다 영화를 더 좋아하고 애인이 없을 정도로 영화에 빠져사는 마니아들이라면 더욱 재미를 느끼겠지만, 여기 인용된 영화의 원전을 알지 못하더라도 즐기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