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리슨은 자본주의의 성공담과 추락담을 한몸으로 보여준 실존인물이다. 95년 당시 불과 28살이었던 그는 출중한 투자 수완으로 출세 가도를 달렸지만, 불법투자로 영국의 유서깊은 민간은행 베어링스를 파산에 이르게 한다. 대단히 이재에 밝았던 그는 감옥살이를 또다른 기회로 삼아 9억원의 판권료를 받고 자서전 <악덕 거래인>을 썼다. 이원 맥그리거를 자본주의의 실패한 영웅으로 내세운 영화 <겜블>은 바로 그 자서전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닉 리슨은 너무 많은 것을 원했던 사나이다. 성공을 향한 욕망은 평범한 은행원이었던 그를 단숨에 세계 금융계를 주무르는 거물로 만들어놓는다. 하지만 리슨이 짜릿한 성공을 거두는 순간 이미 아찔한 심연이 그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회사와 증권가에서 그의 성공을 신화로 만들어가기 시작할 무렵 그는 안으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무모한 그의 욕망이 그를 삼켜버린 것이다. “오늘은 5천만달러를 잃었어”라는 리슨의 독백은 파멸의 속도를 능히 짐작케 한다.
닉 리슨의 내레이션과 함께 흘러가는 <겜블>은 철저하게 리슨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제임스 디어든 감독의 시선에는 동정도, 비판도 깃들어 있지 않다. 디어든 감독은 또 리슨을 빌미로 자본주의 시스템을 물고 늘어지지도 않는다. <위험한 정사>에서 순간의 쾌락을 대가로 한 남자가 겪는 끔찍한 공포를 그렸던 그에겐 리슨 개인의 추락담이 관심사일 따름이다. 전형적인 이야기일수록 고도의 우회로가 필요한 법이지만, 디어든 감독은 극히 냉랭하고 무미건조하게 리슨의 뒤를 밟아간다. 영화는 소재의 극적인 힘을 그 이상으로 밀고가지 못했다. 그러니까 디어든 감독이 그리려던, “모든 사람들이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느끼는 섬세한 공포”는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