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 오즈, 브뉘엘, 르누아르를 좋아해요”
어렸을 때부터 어울리다보면 사람들이 항상 치사하다고 느껴졌어요. 몰려다니면서 편 짜고, 틀린 거 알면서도 (상대를) 누르고, 자신에 대해서 모르면서 남들을 비난하고. 사람들 만나서 적응이 안 된 것도 그런 것 때문이기도 한데. 하여간 좀 사람들이 실망스러웠던 것 같아요. 친하고 싶고 교류하고 싶은 건 있는데 어떤 건 용납이 안 되고 거슬리고 그러니까 가까이 못 가는 거죠. 지금 나이가 들어서 봐도 그래요. 제가 비위가 좀 생기고, 제 자신이 그 사람들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다고 느끼니까 전보다 낫지만.
잘난 사람 TV에서 틀어주고, 그 사람 본받게 하려고 하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전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그걸 흉내내는 데 한계가 있고, 또 성공한 사람을 가까이 가서 보면 성공 요소라는 게 제 속에 없고. 그러니까 모델이 되는 게 아니라 방해가 되더라고요. 대신 자기를 자꾸 보는 거, 있는 그대로 얼마만큼 자기를 볼 수 있느냐가 진짜 개성을 찾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에서도 영웅을 자꾸 보여주잖아요. 과장이랄까 단순화랄까, 미화랄까. 전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니까 그런 인물을 만들기가 싫은 거예요. 나도 그런 영화들도 보고 감동받고 그랬겠지만. 영웅에 반대되는 반영웅을 그리는 것도 도식 같고.
그럼 뭘 그려야 하나. 사람들이 익숙해하는 건 전형적인 인간이고, 가능하면 긍정적이어야 하고, 또 메시지가 행동을 통해 명확하게 전달되길 원해요. 제 생각에 그런 드라마는 아마 영원히 존재할 것 같은데요. 하지만 저 개인으로선 그런 걸 만들 수 없다는 걸 알게 됐고, 그래서 만들기 시작한 것들이 지금까지 제 영화들입니다. 이 사회에 팽배한 통념이나 이데올로기들에 의해서 부분적으로 왜곡된 조각들이 아니라 제가 삶에서 그냥 맞닥뜨리는 조각들을 영화라는 통 안에다가 집어넣을 수 있나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를테면 전 딱 떠올라서 멋있다 하는 건 안 썼어요. 똑같은 반복이니까. 처음엔 부정하는 식으로 영화를 찍었던 것 같아요. 예쁜 앵글은 다 사진, 미술에서 온 것 아닌가요? 일부러 그런 앵글을 부정하다보니 지금은 안 그러지만 처음엔 누군가 ‘왜 앵글을 그렇게 재미없게 잡느냐’ 그러더라고요. 골목 같은 것도 후진 데를 자꾸 그리느냐고 하고. 하지만 전 내가 아닌 건 일단 내가 아니라고 하고 넘어가자.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부정을 했어요.
부정을 하면서 부정을 통해 걸러진 조각들이 하나로 묶여지는 걸 느꼈는데 제가 패턴이라 말하는 거거든요. 반복, 차이, 모방. 그게 뭔지 몰랐어요. 그냥 처음엔 묶이니까 좋았어요. 묶이지 않으면 일루전(illusion)을 줄 수가 없으니까. 나쁜 일루전을 깨야 한다고 했지만 일루전 없이 스며들 순 없으니까. 그거 하다보니까 그런 패턴이 반복이 되더라고요. 그 반복을 의식하면서 사용하게 됐고요. 내가 무슨 이야기하다 이렇게….
허문영 | 홍상수 감독이 미국 유학 시절 제일 좋아했던, 제일 즐겨 읽었던 영화적 방법론의 영감을 준 로베르 브레송의 <시네마토그라프에 관한 노트>라는 책의 맨 첫장에 ‘나 스스로를 정확성의 도구로 삼자’라는 일종의 표어 같은 게 나오는데, 홍 감독이 영화를 시작했을 때의 출발점도 그게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은 주변적인 이야길 많이 나눴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 판단하기에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이야기 영화의 외향을 띠고 있지만 영화 형식이 갖고 있는 가능성을 가장 끝까지 가장 멀리 밀어붙여서 고민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니다. 그 과정에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시각적인 것, 그리고 사운드, 이런 것들에 관한 관계까지 전부 새롭게 고민되고 결합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여쭤볼 것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적 방법론과 연관을 맺고 있는 다른 어떤 요소들에 관한 것입니다. 아까 고립을 좀 버티게 해준 요인 중에 좋은 책들이 있었다고 했는데요.
홍상수 | 머릿속의 아둔한 회로들이 정확해지고, 정교해지고, 그러다 안개 같은 현상을 뚫고 나가기도 하고. 뭐, 그런 느낌이었어요. 요새는 옛날처럼 책을 많이 안 읽지만 책상 위에 10권씩 올려놓고 조금씩 보거든요. 전엔 너무 좋아하는 책은 반년씩 베고 자고 그랬어요. 인터뷰여도 좋고, 소설이어도 좋고, 자서전이어도 좋고. 제 방에 얼마 안 되는 책장이 있는데 지금도 마음히 혼미해서 그 앞에 서면 딱 보고 싶은 게 생겨요. 그래서 자기 전에 10분 정도 읽으면 다시 마음이 맑아지고. 내가 원하는 만큼 볼 수 있는 상태로 다시 돌아가요. 그래서 지금도 책이 중요한 이유고요. 저런 게 없었으면 어땠을까 걱정이에요. 일상이라는 게 투박하고 거칠고 단순한 수없이 반복된 감정의 훈련으로 인해 눈앞은 좁아지고 안 보이고. 누군가 만들어준 감정의 패턴에 따라 그냥 가는 건데 반 발짝만 떨어져서 보면 그 사람도 나도 그렇게 갈 이유가 없는 거예요. 이런 게 있어요. 초등학교 때 선생님들이 속담 가르쳐주잖아요. 대개 도덕적인 이야기들인데. 내가 보면 정반대 속담이 꼭 다음 페이지에 있더라고. 세상 어떤 사람이 열변을 통해서 설득을 해요. 이 말이 맞소. 그런데 집에 갈 때 생각해봐요. 정반대의 말도 통용되고 있어요. 현상에서 어떤 순간에 어떤 말이 더 득세를 하고 실용적이냐 아니냐 그런 거거든요. 그거 팔아먹는 사람은 그게 절대선이라고 하고 팔아먹지만. 아,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
허문영 | 제가 드린 질문은 무슨 책이 당신에게 위안을 주었느냐인데, 핀트에 어긋나는 이야기를 7∼8분 정도 하셨습니다. 근데 이 점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식의 문답이 홍 감독의 영화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알레고리가 됩니다. 질문자가 듣길 원하는 대답은 무엇을, 인데 항상 홍 감독은 어떻게, 로 답합니다. 다른 질문 하실 때도 그것은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 절대 대답을 들으실 수가 없을 겁니다. 대상에 어떻게 접근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게 홍상수 감독의 영화이고 일상적인 화법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책 이름 몇권은 나올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나와서 당황스럽습니다.
홍상수 | 몇권은 이야기 할 수 있는데.
허문영 | 그럼 몇권만이라도. 섭섭하니까.
홍상수 | 여러분 다 아는 책들인데요… 유명한 사람들… (침묵) 너무 유명한 사람들이라서. 다 아시는 책들. 아 근데 여러분도 그런 이야기 많이 할 것 같은데 우리 친구들 보면 어렸을 때 도스토예프스키 읽었다고 여자 앞에서 자랑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안 그래요? 그 책 읽지도 않고 요약본 읽고서 얘기하고 그랬대요. 그거랑 비슷한 느낌인데. 클래식이라고 하는 거 있잖아요. 그거는 정말 제대로 읽어보세요. 되게 좋아요. 큰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어디선가 들은 제목의 책들 있잖아요. 지금의 눈으로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읽어보세요.
허문영 | 끝내…. 앙드레 지드 좋아하고, 인물들 전기를 좋아합니다. 정교한 소설보다 인물들이 살아 있는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맞습니까?
홍상수 | (침묵하다) 예.
허문영 | 최근에 홍상수 감독이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언급하는 예술가 중에 세잔이 있습니다. 혹 관심이 있으시다면 세잔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그림을 유심히 봐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세잔의 미학적 이상과 홍상수 영화의 미학적 이상이라는 것이 상당히 유사하다 혹은 좀 통하는 데가 있다는 생각을 나름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세잔은 인상파 화가들이 추구했던 표면의 활달함과 고전주의 회화가 추구했던 사물의 이면의 질서, 혹은 입체감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시도를 한 화가라고 평가받습니다. 세잔에 의해 달성됐다고 말해지는 그것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도달불가능한 목표라고 여겨지는 것인데요. 표면은 굉장히 단단한데 그 안에는 깊은 입체감과 질서가 있는 세계. 세잔과는 어떤 인연이 있습니까.
홍상수 | 제가 다닌 시카고예술대학은 박물관을 통과해서 가야 했는데, 거기 인상파 화가들 그림이 많아요. 어느 날 세잔의 유명한 사과 그림을 하나 봤는데. 그냥 정말 너무 좋더라고요. 달리 표현이 안 돼요. 다른 그림 봤을 때는 ‘응, 알겠어’ 했는데. 그게 어떤 거냐면 의도가 보이면서 작가의 손이 보이고요. 작가의 제스처가 보이고 그게 작가의 그림에 앙금처럼 남아 있어 지저분한 느낌인데. 세잔의 그림은 깨끗했고 완전했어요. 그게 첫인상이었어요. 영화하고 나서 세잔에 대한 책을 나중에 읽어보니까 제가 생각하는 단어랑 겹치는 것도 있고 그래서 지금까지 제일 좋아하는 화가고요. 대개 구상 뒤에 빈약한 추상이 숨어 있다면, 이 사람의 그림에선 추상이 바깥으로 나와 있고, 추상의 선들이 구상의 구조를 만들어줘요. 그런데 언뜻 보면 그게 구상이에요. 빈약한 추상의 도움 없이도 완전한 구상이 되는 거예요. 구상인데 더러운 게 뒤에 없어. 그게 너무나 예쁘더라고요.
허문영 | 사실 세잔의 그림은 참으로 밋밋하고 재미없을 수 있습니다. 세잔은 당대에 데생조차 못하는 한심한 화가로 혹독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세잔은 20세기 회화의 아버지이고, 피카소가 나의 유일한 스승이라고 말할 정도로 현대 회화에 영감을 준 위대한 화가 중 한명입니다. 제가 반복해서 이렇게 말하는 건 어떻게라는 측면에 좀더 주의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하는가라고 묻는 순간, 이미 대답을 얻을 수 없다는 것, 그 순간에 텍스트 바깥으로 빠져나간다는 사실. 그것은 세잔의 그림이나 홍상수의 영화나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홍상수 감독이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이라는 말은 아니고 미학적 이상을 공유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려는 겁니다. 칸영화제 직후에 세잔이 살았던 고향집에 다녀왔고 거기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셨는데 좀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홍상수 | 별거 없고요. 조그맣고 예쁘고. 살던 집하고 일하던 화실을 가봤고요. 세잔의 옷을 만져보기도 하고. 그 사람이 말년까지 살던 동네인데 아이들이 미친 노인네라고 하면서 돌 던지고 그랬다는데 뭐랄까 거기 가서 힘을 좀 얻었어요. 세잔은 국전에 한번도 못 들어갔거든요. 그런데 그는 그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예술적인 컨셉을 실천해냈는데 국전조차 안 내주니까 얼마나 억울했겠어요. 여러분도 반에서 시험문제 잘못 체크하면 화내잖아요. 세계에서 가장 예술적인 컨셉을 갖고 있다라는 걸 세잔 자신이 몰랐을 리가 없어. 그랬다면 그걸 어떻게 만들어. 그런 사람을 어떻게 국전에도 안 넣어주고. 너무 힘들었을 텐데 평생 죽을 때까지 그렸거든요.
허문영 | 어쨌든 격려받았다, 고무받았다는 얘깁니다. (웃음) 세잔과 홍상수 감독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세잔은 은행가였던 아버지에게서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아서 미친 노인네라는 소리 들으면서까지 그저 그림만을 그릴 수 있었지만, 홍상수 감독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특히 이번에 독립해서 자기 영화사를 만들어서 영화를 찍고 있기 때문에 극장에 사람이 얼마나 드나 초조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는 그런 입장인 것 같습니다. 그렇죠?
홍상수 | 예.
허문영 | 생각이 막힐 때 책처럼 가끔 꺼내보시는 영화도 있습니까.
홍상수 | 영화는 그렇게 안 되는 것 같아요. 책은 착 머리에 꽂히는 게 있는데 영화는 좀. 컬렉션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데 그래도 50편 정도 모아서 좋은 TV로 보고 싶은 마음은 있죠.
허문영 | 50편 중에 상위 목록 몇편만 말씀해주십시오.
홍상수 | F. W. 무르나우라는 사람 아시죠? <선 라이즈>라는 영화가 있어요. 예쁘고요. 장 비고라는 사람 아세요? <라탈랑트>라는 영화가 있는데 예쁘고요. 로베르 브레송의 두편 중에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가 더 예쁘고요.
허문영 | 또 하나는 <사형수 탈출하다>인가요?
홍상수 | 예. 그리고 오즈 야스지로 아시죠. 제가 그런 감독이 몇 있는데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영화 전부를 좋아하는 감독 중 하나고. 편차는 있지만 루이스 브뉘엘 영화도 모두 호감이 가요. 그 다음 조금 떨어지지만 다 좋아하는 감독이 장 르누아르예요. 그 사람 거는 좀 심심해도 저항감이 안 들어요. 마음의 맑음이 있어요.
허문영 | 남들이 거장이라고 부르는 사람 중에 끔찍해하는 사람 있죠?
홍상수 | 응? 그런 건 신경 안 쓰는데. 내가 언제 그런 말 한 적 있어요? (잠시 침묵) 싫어하는 영화야 많죠. 그런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도 있죠. 그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여러분도 저 같은 상태가 될지 몰라서 하는 말인데… 음, 화내지 마세요. 정말 자기를 죽이려는 것도 아니고 정말 미워하는 것도 아니고 생겨먹은 한도 내에서 충동과 필요 때문에 공격이 될 수 있어요. 그렇지만 받아들이세요. 그런 거구나,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돼요. 여기 아프면 외려 자기가 못 움직여요.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세요.
허문영 | 제가 좀 전에 물어본 거는 지난해에 마틴 스코시즈의 <갱스 오브 뉴욕>을 보고 나와서 버럭 화를 내면서 욕을 하기에 그쪽하고는 궁합이 안 맞는구나 해서 그런 겁니다.
홍상수 | 으흠….
허문영 | 화가 날 때도 있죠. 영화적 방법 차원에선 독자적인 걸 하고 계시지만 기법에선 브뉘엘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갖거든요. 최근에 좀더 강하게 영감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홍상수 | 오즈, 브뉘엘, 르누아르. 이렇게 세 사람이 공통적으로 왜 좋냐하면 그 사람들을 믿거든요. 실제 본 적도 없지만 그러고 싶어요. 그들의 마인드를 좋아하는 거 같아요. 세 감독은 너무 다르지만 뭐가 맞다, 메시지다, 의미다, 상징이다, 이렇게 하자, 이게 살길이다, 이게 대안이다, 이게 해결책이다, 자기 편의에 의해서 현상을 해석하고 하나의 인위적인 논리틀 안에 끼워맞춘 극단적인 사고들과 태도들에 대해 그들은 완전히 믿지 않아요. 그래서 자유롭고, 쾌활하고, 그게 좋은 것 같고.
허문영 | 브뉘엘 영화를 보신 분들은 느끼셨겠지만 거장 감독들 중에서 제일 활달합니다. 나쁘게 말하면 과격합니다. 줌도 촌스럽게 확확 들어가고 컷 사이 이음매가 거칩니다. 꿈을 꾸는데 꿈인지도 아닌지도 헷갈리고. 엉뚱한 사건, 대사, 인물이 불쑥불쑥 튀어나옵니다. <강원도의 힘>에서도 산에 가는데 금붕어가 있습니다. 그 후반부에 남자 주인공이 기르던 금붕어가 없어집니다. 앞뒤가 안 맞지만 그 둘 사이에는 기묘한 리듬이나 양상이 존재합니다. 이게 이 영화의 논리적인 이야기보다 훨씬 더 영화의 느낌을 두텁게 만들어줍니다.
홍상수 | 우선 브뉘엘이 부럽고요. 과장된 인물의 아주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서 초현실주의라 불리는 것을 너무 잘 표현하니까. 금붕어라든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갑자기 신문지를 밟고 지나간다든지 그런 데서 브뉘엘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죠. 다만 브뉘엘 영화의 힘은 기괴한 캐릭터들에서 나오는 것이고, 저도 그것을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어요. 근데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전 구조를 갖고서 하죠. 사실적인 표면들을 결합해서 실제 사실적인 표면을 대했을 때 환기되는 것이 아닌 것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