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도철 PD와 신정구 작가가 소원을 이루었다. 노도철 PD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일요일 한낮을 총기어린 시간으로 만들었던 <두근두근 체인지>를 하면서 DVD 출시를 염두에 두고 100개에 달하는 테이프를 모아두었지만, 눈물을 머금고 반납해야만 했다. 방송사 테이프는 재활용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순환했고, 결과는 달라졌다. <안녕, 프란체스카> 1부 12화가 7월에 DVD로 출시되는 것이다. 이 기쁜 마음을 덩실덩실 춤으로 표현해야겠지만, 신정구 작가는 뽑아야 하는 순간이 임박한 사랑니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고, 모두들 전날 새벽 4시까지 계속된 촬영으로 지쳐 있다고 했다. 그렇더라도 경사는 경사. 노 PD와 신 작가, 대중문화평론가 강명석 씨가 초반 오디오 코멘터리 녹음을 마친 뒤에 차례차례 도착한 프란체스카 식구들은 눈물 맺힌 프란체스카의 미소로 끝나는 마지막회까지 열심히 달렸다. 특히 코멘터리하는 에피소드 몇개를 보지 못했다는 심혜진은 시청자와도 같은 자세로 웃어대서 다른 식구들의 타박을 받기도 했다.
<스타워즈> 시리즈 DVD의 방대한 서플먼트, 특히 “안녕하십니까, 나는 감독이자 프로듀서인 조지 루카스입니다”라는 첫마디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노 PD는 원래 12화 모두에 코멘터리를 넣고 싶어했다. 주변의 만류로 “재미있고, 내 마음에 남아 있는” 걸로 고른 4회분 8개 에피소드는 1화와 2화, 7화, 12화. 프란체스카가 노래방 도우미와 야쿠르트 아줌마로 아르바이트하는 에피소드와 길거리에 나앉은 프란체스카 가족이 봉고차에서 부대끼는 에피소드가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젊은 혈기 탓인지 정려원과 박슬기의 목소리가 유독 크다. 생활력 강한 프란체스카가 한강에서 낚시로 잡은 붕어(라고 하지만 프라이팬에 넘치는 크기로 보아선 잉어)를 구워먹는 장면, 정려원의 목청이 높아진다. “비린내가 너무 심해서, 저것봐, 마지막에 못 참고 얼굴 찡그리는 거 보이지!” 이 밖에도 <안녕, 프란체스카> 팀은 촬영할 무렵엔 보지 못하고 놓쳤던 실수를 여러 개 발견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카메오로 출연한 김구라가 프란체스카 식구들에게 집을 보여주는 장면에선 눈이 내리는데, 스탭들이 직접 뿌렸던 관계로, 김구라쪽엔 폭설이 내리고 프란체스카쪽엔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다. 전세금을 날린 프란체스카 식구들이 경찰서에서 소동을 피우는 와중에 사건 당사자인 프란체스카는 남몰래 웃고 있다. 혹은 프란체스카 식구들이 함께 걸어가고 있는 모니터 가장 아랫부분에 붐마이크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이 순간은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려 놓친 식구도 여럿이었다).
비디오 영상을 함께 녹음한 프란체스카 식구들은 다시 보아도 웃음나는 추억과 함께 한겨울 고생담도 마음 놓고 털어냈다. “저거 찍던 날이 제일 추웠는데”라는 푸념이 터져나오길 몇 차례. 그중에서도 가장 고생스러웠던 촬영은 50만원짜리 폐차 직전 봉고차에 다섯 식구가 나란히 누워자야만 했던 에피소드였던 듯하다. 식구들을 늘어놓는 ‘병풍숏’을 애용한다는 노 PD는 그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장면을 너무도 좋아해서 굳이 봉고차 앞자리를 비워두고 뒷좌석에 다섯명을 밀어넣었다. 피곤해서 얼굴색까지 변해버린 듯했던 뱀파이어들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도 너무 지쳐 있었던 것이다.
비록 전편 코멘터리의 위업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휴일이었던 5월29일, 배달피자로 끼니를 때우면서 장시간 계속된 코멘터리 녹음은 즐거운 수다인 동시에 <안녕, 프란체스카>의 탄생과 변화를 되짚는 시간이기도 했다. 노 PD와 신 작가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호러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때가 지나고나면 이들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은 영영 잊혀질지도 모르므로. 가장 놀라운 비밀은 이켠이 본디 정상이었다는 사실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루마니아 출신으로 한국어와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켠이가 바보일 리는 없을 것도 같다. 배우와 캐릭터가 서로에게 스며들어 변태를 거듭하는 마법. <안녕, 프란체스카>는 지금도 그처럼 변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최후에 도착한 뱀파이어는 극중에서 그랬듯 앙드레 대주교 역의 신해철이었다. “깃을 달아주었더니 죽어도 뱀파이어 망토를 안 벗더라”는 노 PD와 “그거 입고 있으면 얼마나 더운 줄 아느냐”는 신해철의 토닥거림은 마지막 12화 코멘터리로 이어졌고 뱀파이어들은 얼마 남지 않은 촬영을 위해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코멘터리에서 발췌한 야담과 실화
프란체스카 가족의 비밀을 알려주마
<안녕, 프란체스카>는 뱀파이어의 시대가 재래하기까지 루마니아를 떠나 있어야만 하는 뱀파이어들이 실수로 서울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켠이 그들을 잘못된 배로 인도하지 않았다면 일본으로 갔을 뱀파이어들. 왕고모 소피아를 모시고 있는 이들은 프란체스카가 물어버린 무능한 샐러리맨 두일에게 기생해 연명하기로 작정한다.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딱히 무서운 대상도 없다. 선탠도 하고 마늘은 없어서 못 먹고 십자가는 액세서리쯤으로 여기는 이들은 유사가족을 형성해서 미운 정을 쌓아간다. 뱀파이어라기보다 유독 생존력 떨어지는 낙오자쯤으로 보이는 프란체스카 식구들은 당연하게도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신정구 작가의 경험에서 나왔다는 몇 가지 에피소드, 그리고 카메라 앞과 뒤에서만 알 수 있던 몇 가지 비밀을 DVD 출시에 앞서 발췌했다.
■ 연인에게 청혼했다가 바보 취급만 받은 두일은 반지를 숲속으로 던져버린다. 이 장면에서 이두일이 던진 물건은 반지가 아니라 돌멩이였다. 나중에 찾으러가기 귀찮아서 그랬다고.
■ 두일이 반지를 찾으러 내려가다가 추락한 장면은 사실 고생해서 언 땅을 파고 두일을 묻어두었다. 잘 보였다면 만화 같았을텐데, 어두워서 하나도 안 보였다.
■ 려원이 면접을 준비하는 장면은 시트콤으로서는 특이하게도 대사없는 롱테이크를 도입한 독창적인 성과다. 하지만 대본 분량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잡아 늘렸다고 한다.
■ ‘미레미레 미시레도라 청년’ 기성주는 레어 스테이크를 먹는 려원에게 날고기를 좋아하면 사나워진다고 말한다. 신 작가가 어느 여인에게 똑같은 말을 들었다.
■ 장광효 의상실 실장으로 등장한 배우는 노 PD가 압구정동 오는 버스 안에서 우연히 만난 VJ였다. 작업걸었다는 동료들의 비난에 노 PD는 그녀가 작업을 걸어왔다고 항변했으나….
■ 반장 아줌마 이수나와 심혜진, 노 PD는 모두 고스톱을 칠 줄 모른다. 그래서 고스톱광인 스크립터가 화투 배열과 대사를 돌봐준다고 한다.
■ 프란체스카 식구들이 집 삼아 떠도는 봉고차는 50만원인데 흰 국화로 그 차를 단장하는 비용은 250만원이 들었다. 그러고도 돈이 모자라 장식을 하다 말았다. 유심히 보면 운전석이 있는 쪽의 바깥 부분은 절대 보이지 않는다.
■ 두일이 홀로 한남동 언덕길을 올라 퇴근하는, 가끔 등장하는 장면. 한번 찍어 두고두고 써먹었다.
■ 두일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 봉고차에서 자면서도 파자마를 챙겨입는다. 신 작가 또한 잠옷을 입지 않으면 잠들 수 없다고 한다.
앙드레 대교주 역의 신해철 인터뷰
“누가 겸손한 신해철을 원하겠는가”
“그분이 오신다!” 첫회부터 화려한 재림이 예고된 앙드레 대교주. 신장개업용 풍선까지 거느리고 요란하게 등장한 데까지는 좋았는데 그게 끝일 줄이야. 인간 만들어준다고 두일에게 ‘식후 30분 복용 사람정’을 건네줄 때부터 심상치 않더니 식객 노릇도 모자라 사기까지 친다. 모처럼 있는 예지력도 2초짜리라 일생 도움이 안 되는 앙드레 교주가 지닌 정작 놀라운 신통력은 프란체스카 가족 안에 어느새 스르륵 섞여든 재주가 아닐까. 극중에서와 똑같이 늦게 도착한 신해철은 스튜디오에 꽂혀 있던 사운드 서적과 PSP 게임기에 파묻혀 ‘말 걸지 마시오’ 염파를 내쏘았으나 이내 <스타워즈>에 대한 노도철 PD와의 대화를 시작으로 말문을 열었다.
-흔쾌히 합류했다고 들었다. <안녕, 프란체스카>를 1회부터 지켜보았나.
=TV는 있지만 안테나는 연결하지 않고 사는 집이다. <안녕, 프란체스카>를 알게 된 것은 <고스트 스테이션> 청취자들의 추천을 통해서였다. 출연 얘기가 오가면서 1회부터 제대로 구해보았는데 상상보다 더 웃겼다.
-앙드레 대교주의 의상은 제작진의 컨셉인가, 당신의 구상인가.
=원래 검은 정장만 입고 왔었는데 넥스트의 무대의상이 가미되고 뱀파이어 망토의 깃이 강조됐다.
-<고스트 스테이션> 청취자들의 반응은.
=“꼴좋다”, “통쾌하다”쪽인 것 같다. 그러다가 점점 망가짐의 도가 심해지니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하는 연민과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번 러닝셔츠만 입고 찍은 다음에는 “노출 연기에 동의한 바 없다”고 작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눌까 고려 중이다.
-뒤늦게 들어온 식구로서 이미 팀워크가 자리잡은 프란체스카 가족의 텃세는 없었는지.
=실력으로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물론 초보 배우로서 겸손한 버전의 대답도 생각해봤지만 그렇다고 겸손하다고 여겨질 나도 아니고, 누가 겸손한 신해철을 원하겠는가. 그럴 바에는 이 방향이 경제적이라고 판단했다). 얼마 전 폭파신까지 찍고 액션배우로 불러주길 주위에 요구한 바 있다. 대역은 없었고 마네킹 한구가 나 대신 불탔다. <닥터 슬럼프> 같은 만화에서 엄청 고생한 주인공들이 “우, 이젠 개그 만화는 싫어”라고 독백하듯 나도 외치고싶다. “우, 이제 개그드라마는 싫어”라고.
-첫회 대본을 받고, 오직 “스카”로 일관하는 초반 일련의 대사를 읽었을 때 연기력을 불신당했다는 불쾌감은 없었는지.
=‘날 못 믿는군’ 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시청자들도 그렇게 생각할 무렵 바로 대본이 엎어치기를 해주지 않았나. 지난주 방영분에는 급기야 앙드레 대사가 한 페이지를 넘겼다.
-앙드레 대교주가 된 뒤 체감하는 변화가 있을 텐데.
=18년간 쌓아올린 카리스마가 무너졌다. 전에는 아이들 사인요청은 거의 엄마들이 옆구리 찔러서 보낸 거였는데, 앙드레 이후로는 아이들이 만만히 보고 다가온다. 메신저 회사에서 앙드레 아바타 만들겠다는 제의도 들었다. 넥스트 다음 앨범에는 “보컬-앙드레”로 쓸까 싶기도 하다.
-연기자로서 다음 작품은 결정했는지.
=그렇다. 남궁연이 찍는 단편영화에 캐스팅됐다.
-내년에 <안녕, 프란체스카>가 만약 새로운 시즌으로 재개되면 출연할 것인가. 안 될 경우 2대 앙드레를 추천한다면.
=나도 음악 해야지. 2대 앙드레는 싸이가 하면 되지 않을까.
-바야흐로 <스타워즈> 시리즈의 종결을 맞이하는 감상은.
=한번 코가 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지만, 더이상 조지 루카스의 대사를 영화로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기쁘기 한량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