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는 모든 게 설익은 상태다. 몸은 급한 속도로 성장하고, 정신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허둥댄다. 누군가를 향한 연정을 쉽게 발전시키지만, 또한 금세 싫증을 내기도 한다. 그 대상이 막연하지 않은 욕망과 사랑에 시달리는 경우도 흔하다.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줄도 모르고 밤잠 설치는 일이 흔한 것도, 이 시기다. 그래서 많은 순정만화들은 이 또래의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하지만 실은, 그때의 우리는 모든 것에 너무나 진지했음을, 연애는 낭만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음을… 심각해서 죽을 지경이었음을 깨닫게 해주는 만화가 <우리들이 있었다>(오바타 유키 지음/ 대원씨아이 펴냄)이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된 나나미는 같은 반의 인기남 야노와 티격태격하며 그에 대한 애정을 키우기 시작한다. 야노는 못하는 것 없고 잘생겼으며 활발하지만 어딘가 그늘이 있다. 나나미는 야노의 옛 연상녀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야노가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 불안해한다. 야노는 옛 여자친구의 동생과도 묘한 관계에 빠지고, 야노의 친구 다케우치는 나나미를 좋아하게 된다.
이와이 순지의 영화 <러브레터>와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다 본 사람이라면, <러브레터>의 끝간 데 없는 낭만과 순정의 퍼레이드와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설익은 채 썩어버린 순정의 시체를 모두 보듬은 사람이라면 <우리들이 있었다>를 볼 것. 그림체가 화려하지도 않고 극의 진행이 빠르지도 않다. 줄거리로만 보면 특별할 것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읽기 시작하면 야노와 나나미의 연애담에 빠져들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야기는 아침드라마식의 신파와도 근접해 있지만, 기이하게도 눈물보다는 담담함을 낳는다.
사랑한다고 사랑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잊는다고 잊혀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들이 있었다>의 아이들은 몸으로 겪고 있다. 이미 그 시절을 십수년 지나온 나로서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같은 충고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충고 따위 필요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나미는 야노에게 묻는다. “왜 넌 늘 중요할 때마다 ‘글쎄?’라든지 ‘몰라’라고 얼버무리는 거니?” 야노는 얼버무리는 게 아니라고 대답한다. “아무렇게나 대답할 생각이면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어. 하지만… ‘모르는 나’도 있는 거잖아.” 어쩌면 아이들이 찾는 것은 사랑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이들이 찾는 것을 나 역시 찾고 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