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씨네21> 홈페이지에 가장 큰 변화는 블로그를 만든 것이다. 인터넷 소식에 둔감한 나는 온라인팀 배성준 팀장이 블로그의 필요성을 역설할 때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필요하면 하죠, 뭐, 정도였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글을 쓰고 덧글을 달아가며 교류한다는 게 처음엔 상상이 잘 안 됐다. 돈주는 것도 아닌데 그런 귀찮은 일을 누가 하겠어, 싶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요즘,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씨네21>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블로그부터 살펴본다. 하나하나 덧글을 달 만큼 부지런하진 않지만 블로그에 올린 글과 사진들을 보는 게 소소한 즐거움이 돼버렸다. 독자엽서만으론 알 수 없던 독자들의 모습을 아주 가깝게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씨네21 블로그에 몇몇 스타(?)가 등장하고 있다. 김혜리, 이종도, 손홍주, 오계옥, 백은하 등 기자나 통신원의 블로그도 인기지만 블로그 개설 전까지 전혀 몰랐던 독자들의 블로그 가운데 매일 찾게 되는 것들도 생겼다. 대표적인 두개만 소개하자면 ‘한 일본사람의 눈으로 보는 한국영화’와 ‘약에 쓸 개똥’이라는 제목을 단 블로그가 그렇다. ‘한 일본사람의 눈으로 보는 한국영화’는 진짜 일본인이 만든 블로그로 kojongsoo8318이라는 ID를 갖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시미즈 다카시, 요시모토 바나나 등의 인터뷰를 한글로 번역해 올려놓았던 그는 최근 <아무도 모른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연출노트를 번역했다. 그중 심금을 울리는 대목 하나. “막내동생의 죽음에 관해 말하자면, 아이끼리 사는 게 싫어진 아키라(야기라 유야)가 야구에 열중하고 있는 사이에 동생이 죽는다. ‘동생이 죽었을 때 나는 웃고 있었다’는 기억은 그에게도 관객에게도 예를 들어 주인공이 울면서 스스로 동생을 죽이는 것보다 훨씬 참혹하다고 나는 믿는다. (중략) 그래서 야구신을 찍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아키라에게 ‘더 웃어라! 더 신나게!’라고 했다.” 한글 번역이 완벽하진 않지만 이 블로그에 올려진 고레에다의 연출노트는 일독을 권하고 싶은 글이다.
‘약에 쓸 개똥’은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ID가 elisse인 분의 블로그다. 최근 그의 글 가운데 무릎을 치며 공감했던 대목 하나. “<안녕, 프란체스카> 15회 에피소드를 보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한국의 몇 가지 이슈가 있다. 최근에 여러 뉴스에서 접한 출산장려정책, 꽤 오래된 문제인 외국인 노동자 문제, 그리고 국적 포기 문제다. 신기한 것은 이런 문제들이 한 가지로 압축되는 면이 있다. 물론 그 한 가지만으로 이런 문제들을 다 보는 것은 안 되겠지만 일단 눈에 크게 띄는 문제는 피에 대한 집착이다. (중략) 우리는 좀 비빔밥을 더 먹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비빔밥 많이 먹고 잘 좀 섞여봤으면. 이제는 서로 끌어안고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블로그를 뒤지는 버릇이 생긴 이후 든 생각은 <씨네21>의 블로그 커뮤니티가 어쩌면 새로운 인터넷 문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이다. 온갖 포털사이트가 악플로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씨네21>은 아직 청정지역인 것 같아 드는 생각이다. 게다가 이곳은 여느 포털사이트 같은 망망대해는 아니어서 공통의 관심사를 나누기에 좀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앞서 가는 느낌은 들긴 하지만, 10년 전 잡지 <씨네21>이 했던 일, 그러니까 영화를 중심으로 일종의 문화적 진지를 구축하는 일을 이제 온라인에서 할 시점이 된 게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자기 블로그에 글 올리는 건 왜 그렇게 게으르냐고요? 음… 그러고보니 그게 문제긴 문제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