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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끓는 소년, 루키 9단, <태풍태양>의 배우 온주완
사진 정진환김수경 2005-06-09

<태풍태양>의 부산 벡스코센터 촬영현장. 오늘은 스케이트를 타겠구나 하고 들떠 있던 온주완(21)에게 정재은 감독은 그 자리에서 찬물을 끼얹는다. “주완아, 네가 설명을 잘해주지 않으면 영화를 보는 관객은 이 장면에서 그냥 스케이트를 타는 이미지만 보는 게 되는 거야”라며 정 감독은 주완에게 행사장의 마이크를 떠넘겼다. 단단히 삐친 주완은 모자를 눌러쓰고 스탭들과 말도 하지 않고 음악만 들으며 시위했다. 그 장면은 완성된 <태풍태양>에서 가장 흥겨운 입담으로 자리잡았다. 다시 한번 그 상황을 끄집어내자 이 열혈청년은 “연습도 똑같이 했고, 실력도 똑같은데 못 타서 무지하게 속상했다”고 팽팽한 스프링처럼 대답한다.

온주완은 마운드에 갓오른 싱싱한 어깨의 루키이며, 아직은 수싸움보다는 자존심이 소중한 강속구 투수다. 유인구는 없다. 무조건 정면승부. 삼구 삼진이면 예의 그 눈꼬리를 움직이는 웃음으로 자신감을 과시할 테고, 실투에 의한 홈런을 허용해도 씩씩거리며 경험이 될 거라고 자신의 볼을 두드릴 타입이다. 악성 리플에 대해서도 “호평도 악평도 언제나 환영한다”라고 말한다.

<태풍태양>의 말미에 뿔뿔이 흩어지는 멤버들의 운명에 대해서도 그는 자신있게 장담한다. “걔들은 어디서든 끝까지 스케이트를 탈 것이다. 백댄서들한테 춤을 뺏으면 뭐가 남겠는가”라고. 이 넉살 좋은 약관의 젊은이는 캐스팅 과정에도 후반작업 중인 전작 <발레교습소>의 영화사와 차기작 <태풍태양>의 사무실을 거리낌없이 오가는 곰살궂은 성격을 자랑했다. “변영주 감독님 추천으로 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편견을 가질 것 같아 다른 사람이랑 똑같다는 걸 보여주려고 그랬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백댄서와 가수를 꿈꾸던 그는 “고등학교 때 예체능계 꼴찌를 했던 사실”을 환히 웃는 얼굴로 이야기했다. 조금 당황하는 매니저의 표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되레 농담을 건넨다. 그러던 그는 “운좋게도” 수능에서 예체능계 전교 2등의 성적으로 주위를 놀라게 하고는 고향 부산을 떠나 서울로 유학온다. “학교에서 배우는 건 체질에 안 맞더라. 감독님 말에 무작정 100% 따르고 싶지는 않았다. 생각하면서 기다리면 지치는 스타일이다.” 공격적이고 거침없는 도발들이 그의 입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연기라면 “누구에게도 절대로 지고 싶지 않다”거나 “두 작품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고 언제나 제안을 주고받을 정도로 대등하게 연기했다”고 덧붙이는 이 승부욕으로 찰랑거리는 루키는 왠지 밉지 않다. 림을 향해 돌진하는 강백호의 순수함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정통적인 연기수업과 현재의 행보가 조금은 거리가 있지 않으냐고 묻자 “결국 완성도가 다르지 않다면 나는 내 길로 찾으면 되는 거다. 왜냐하면 나중에는 배우라는 호칭으로 모두 수렴되는 거니까. 오래 걸려도 열심히 해서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면 불안감 같은 건 가질 필요가 없다”라고 튕겨낸다. 류승범과 조재현을 좋아한다는 온주완은 “눈에 힘주는 배우가 가장 싫다”고. 그는 탁자 위에 놓인 물건을 바라본다고 가정하면 어느 곳을 바라보는지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는, 즉 “무엇이든 전체적인 관점을 볼 줄 아는 배우”가 되는 것이 희망사항이다. 한편으로는 “모든 게 조금씩 모자라지만 노력으로 그것을 뛰어넘는 게 좋은 배우”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한다.

이관희 PD의 신작 드라마 <그 여름의 태풍>에서 근이양증을 앓는 한지훈 역을 맡아 출연하는 온주완은 촬영 내내 휠체어 위에서만 연기한다. “안 어울리게 착하고 약한 척하느라 너무 어렵다”고 농담을 던지지만 “움직이며 대사하는 것과 목소리 톤부터 다르다”거나 “실제 장애인분들은 나보다 훨씬 밝다. 정형화된 동정받는 캐릭터를 보여주지는 않겠다”라는 설명을 듣다보면 준비는 꽤 착실히 된 분위기다. 차기작 영화는 서너편의 시나리오를 두고 고민 중이라고. 예술영화도 “무지하게 센” 상업영화도 섞여 있다고 귀띔한다. 그 사이에는 전주영화제를 지나 9월 개봉예정인 인권영화 <다섯개의 시선> 중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남자니까 아시잖아요>로 극장 관객에게 얼굴을 보여줄 예정. “그때그때 행복하게 살아가면 된다. 몇년 뒤의 행복을 미리 누리고 싶지는 않다”는 피끓는 소년의 도전은 자신의 규정대로 “21살을 넘으면 남자”라는 본격적인 무대로 이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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