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트랙 테이프와 비닐 레코드의 뒤를 이어 가정용 영화와 실험영화에 즐겨 쓰였던 코닥의 코다크롬 슈퍼8mm 필름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필름 생산업체인 이스트만 코닥사는 지난 5월9일 코다크롬 슈퍼8mm 필름의 생산을 중단할 계획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코닥의 엔터테인먼트 이미징 부문 부회장인 밥 메이슨은 “가정용 영화 시장이 디지털로 전환됐기 때문에 이 필름의 판매는 눈에 띄게 하락했고 전세계의 극소수 현상소만이 이 필름 포맷에 맞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코닥은 이 필름을 내년 중반기까지 생산하지만 미국에서의 현상작업은 올해 말까지만 진행할 계획이다. 스위스의 코다크롬 슈퍼8mm 필름 현상소도 2007년 12월까지만 운영된다.
하지만 코다크롬 슈퍼8mm의 옹호자들은 1965년 개발된 이 40살짜리 매체의 ‘조기 은퇴’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영화제작을 다루는 독일 잡지 <슈말필름>(작은 영화)은 이미 이 필름의 생산을 지속시켜달라는 수천명의 서명을 받았으며, 관련 온라인 게시판 또한 뜨겁다. 프랑스의 실험영화와 독립영화 배급업자 피프 초도프는 이 필름의 생산 연장을 위해 프랑스 정부에 도움을 청할 계획이기도 하다. 그는 “메이슨 부회장이 악의 섞인 메일을 많이 받고 있겠지만, 내 일은 그런 메일을 보내는 게 아니라 해결책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8mm 필름보다 화면이 크고, 독특한 색감을 갖고 있었던 코다크롬 슈퍼8mm 필름은 출시 당시 획기적인 제품으로 각광받았다. 특히 비디오 카메라가 존재하지 않던 당시에는 가정에서 소소한 일상사를 기록하는 데뿐 아니라 영화학도들의 실습이나 다큐멘터리에까지 폭넓게 사용됐다. 비디오 카메라와 디지털 기기가 보급되면서 수요는 서서히 줄어들었으나, 독립영화나 실험영화계에서는 여전히 애용돼왔다. 코다크롬은 K-14라는 특별한 현상방법을 사용하는데,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놀라울 정도의 독특한 색감을 발하기 때문에 케네스 앵거나 조나스 메카스 같은 실험영화의 거장도 이 필름을 사용했다. 또 뉴욕과 파리 등에서는 이 필름으로 찍힌 영화만 상영하는 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한편, 사진 필름과 일회용 카메라를 만드는 아그파필름이 5월27일 디지털카메라의 발흥에 밀려 파산했고, 전통 깊은 필름 카메라 업체 라이카, 롤라이, 하셀블라트 또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고 있다. HD 영화기술 또한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으니 언젠가 영화필름도 이들과 운명을 함께할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