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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영등위 위원 발표 앞두고 예술원의 인선권 독점에 비판 들끓어
사진 오계옥이영진 2005-06-01

밀실의 베일 벗어라!

3기 영상물등급위원회 인선 작업이 마무리 중이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지난 5월19일, 문화관광부 담당자와 먼저 통화했다. 그는 거의 끝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곧 영등위 위원을 위촉하는 청와대로 리스트가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인선 작업을 맡고 있는 대한민국 예술원에 연락해보라고 했다. 이어 예술원쪽에 연락을 했다. 담당 과장은 다짜고짜 그걸 왜 여기에 묻느냐고 했다. 예술원이 추천을 받아 청와대에 전달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그는 “회장의 재량이며 자신들은 회장의 행정적인 업무를 보좌밖에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준 예술원 회장과 통화하려고 했지만, 그는 영등위 위원 인선과 관련한 인터뷰라면 싫다고 전해왔다.

예술원의 ‘나 몰라라’ 하는 반응에 황당한 건 비단 기자뿐만이 아니다.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활동가 김완씨도 같은 일을 당했다. 김완씨는 “위원회 구성이 거의 끝났다. 아마 발표가 나면 깜짝 놀랄 것이다”라는 말을 비공식 라인을 통해 들었지만, 대략의 윤곽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다. 3기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임기 시작은 6월7일. 보름을 남겨놓고 있지만 예술원이 추천을 의뢰한 단체들이 정확히 어디인지조차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 5월11일, 사단법인 좋은교사운동 등이 성명서를 내 “청소년 보호 가치를 주장해온 학부모, 교육 시민 단체의 영등위 참여 비율을 50% 이상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여서였을까. 또 다른 잡음이 일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예술원은 추천단체도 밝힐 수 없다고 했다. 풍문으론 예술원이 이들 단체들이 거센 요구에 추천 단체를 조정했다는 말도 돈다.

아직 발표가 나지 않았으니 조금 기다려달라, 대통령이 영등위 위원을 위촉하는 형식이라 사전 의견 조율이 신중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위원 구성이 늦어질 수도 있다. 예술원의 입장을 완곡하게 받아들이면 이렇다. 하지만 영등위 위원 인선을 쥐고 있는 예술원을 향한 시선은 곱지 않다. 영화인회의, 한국독립영화협회, 문화연대 등은 5월26일, “영등위 위원 추천 및 구성의 전 과정을 공개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예술원의 현 영등위 위원 구성 방식은 추천제라는 절차적 합리성을 갖추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독점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들은 “영등위 구성과 관련한 추천, 인선 범위를 확대하고 나이, 성, 직업, 성적 지향성 등 사회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균형있게 배치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 단체들로부터 추천을 받는데도 왜 예술원이 영등위의 인선을 독점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일까.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15인의 영등위 위원들은 영화진흥위원회, 방송위원회, 대한변호사협회, 청소년위원회(종전 청소년보호위원회. 5월2일 새로 발족됐음) 등과 기타 비영리법인들이 추천한 인사들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예술원의 권한은 막강하다. 기타 비영리법인을 정하는 것도 예술원에 주어져 있고, 최종 추천자를 대통령에게 올리는 것도 예술원이다. 예술원이 위원 추천권을 갖는 단체나 기구를 정하는 데 있어 합의과정도 없고, 추천 인물에 대한 검증 절차도 없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인선 절차가 워낙 베일에 싸여 있다보니 검증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문화연대 김완씨는 “간행물윤리위원회나 출판위원회 등만 하더라도 이렇게 한 단체가 인선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때 그 가위손들이 돌아올 수 있던 까닭은?

과거 가위질을 자행하던 공륜 출신 인사들이 영등위 위원으로 다시 천거되는 이유도 이러한 인선 방식에서 기인한다. 예술원이 전문성을 갖춘 위원을 뽑을 능력이 없고, 그러다보니 뽑힌 위원들의 경우 소위원회 등에 과거 검열 업무를 맡았던 이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영화인회의 유창서 사무국장은 “영등위는 등급서비스 기관으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런데 예술원이 추천한 인물들이 영등위가 그렇게 기능하도록 끌어갈 수 있는지 의문이다. 예술원이 어떤 곳인가. 예술적인 평가에 능할지는 몰라도 어떤 나이의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 적절하겠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인물들을 추천할 만한 역량을 갖고 있진 못하다”고 말한다. 영등위 업무와의 연관성이 없는 예술원에 최종 추천권을 주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영화인은 “예술원이 아니라 문화관광부가 추천권을 갖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라면서 영등위는 “영화진흥위원회를 모델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영등위 조직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등위 내에 “심의위원들을 대상으로 한 기본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없다”는 현실은 여러 번 지적되어 왔다. 과거 검열기구 당시의 심의 규정을 수정한 내부 규정과 위원들의 자의적 잣대만으로 심의를 진행하다보니 심의 결과를 둘러싼 진통이 잦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영등위 위원들의 경우, 기관의 행정 업무까지 관할해야 한다. 이경순 현 영등위 위원장은 “2기 위원회에서도 영등위가 연구 기능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예산과 인력문제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예산 탓으로 모든 걸 돌릴 순 없다. <죽어도 좋아> 파동에서 알 수 있듯이 2기 영등위의 경우, 공청회 등을 열어 영화계 안팎의 의견에 귀기울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현재로선 6월 초에 영등위 위원 발표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술원과 정부의 영등위 인선 과정을 문제삼는 건 이미 때늦은 일일 수 있다. 그럼에도 문화관련 단체들이 예술원이 주축이 된 영등위 구성에 촉각을 세우는 건 이유가 있다. 예술원의 독점적인 인선에 대한 지적은 영등위를 향한 경고의 시작이다. 3기 위원회가 출범한 뒤에도 영등위가 전문성을 갖춘 서비스 제공 대신 독단적인 판결을 내리려 한다면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