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기스칸, “중세와 현대를 통틀어 가장 영토가 큰 제국”(브리태니커 사전 참조)을 건설한 몽고의 영웅. 알렉산더 대왕, 율리우스 시저, 나폴레옹 등과 마찬가지로, 정복왕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그의 삶은 서사물에 매력적인 소재다. <징기스칸>은 몽고의 통일과 대제국 건설에 이르기까지 전쟁과 학살, 권력과 암투로 둘러싸인 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룬 영화. 홍콩의 시져널필름코퍼레이션에서 돈을 대고, 내몽고필름스튜디오가 제작한 이 영화는 베이징영화학교 출신인 부부 감독 사이푸와 말리시는 물론, 대부분의 배우와 스탭까지 실제 몽고인들이 그린 징기스칸의 초상이다.
그간 정복자로서의 징기스칸에 대한 영화나 다큐멘터리가 많았던 것과 달리, 몽고인들이 만든 <징기스칸>의 관심사는 인간 징기스칸이다. “1167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이 몽골 초원에 태어났다”는 자막으로 시작된 영화는, 소년 테무진이 황제의 칭호를 얻게 되기까지의 치열한 생존투쟁을 다루면서 그의 내면을 함께 들여다본다. 인간적인 내면에 다가가기 위해 역사적으로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는 유년 시절에 적잖은 비중을 두기도 했다. 퇴각하던 적장의 도움으로 초원에서 태어난 극적인 출생부터, 동족의 배신으로 아버지를 잃고 가족과 함께 버려진 유년기, 다른 가족의 몫까지 훔쳐 먹는 동생을 활로 쏘아 죽일 만큼 처절한 생존투쟁이 그의 성장기. 어린 날의 정혼을 지키러 온 보에티와 재회하면서 성인으로 각성한 테무진은, 아버지를 배신한 타훌타이를 죽이고 키얀족의 칸이 되면서 정복의 대장정에 나선다.
보에티를 납치한 미얼키족과의 대전, 아버지를 죽인 숙적 타타르족과의 전쟁 등 끊임없는 싸움으로 점철된 생애를 따라가지만, 카메라는 본격적인 정복기를 담기 전에 멈춰선다. 대신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어머니, 아내 등 인간적인 관계와 험난한 삶을 개척하는 과정 속에서 ‘인간’ 징기스칸이 얻어가는 생의 가치에 주목한다. 별다른 촬영기교나 특수효과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흙먼지 이는 황토빛 대지와 광활한 초원, 노을에 맞닿은 지평선 등 웅장한 시네마스코프 화면에 살아난 몽고의 풍광은 그 자체로 장관. 등장인물, 풍광은 물론 구음을 비롯한 음악 등에 몽고 문화의 색채가 스민 이 영웅담은, 곧 멀티플렉스로 바뀔 대한극장 70mm 화면에서 상영하는 마지막 영화가 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