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컨 브리프>(1993)에서 여제자인 줄리아 로버츠와 불안한 사랑을 나누던 법대교수를 기억하는지? <사랑과 슬픔의 여로>(1991)에서 자신의 딸인 줄 모르고 줄리 델피를 사랑한 음울한 중년남자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필사의 도전>(1983)의 냉소적인 파일러트 예거나 <천국의 나날들>(1978)에서 리처드 기어의 연적으로 등장한 신비한 농장주인은? 이 우수에 젖은 퀭한 눈빛과 범접하기 어려운 아웃사이더적 풍모를 가진 남자가 샘 셰퍼드다. 그러나 이 남자를 그저 개성있는 조연배우 정도로만 인식한다면 그에 대해서 반의반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것이다.
성장기의 샘 셰퍼드는 카우보이였다. 실제로 그는 고교 시절 자신이 키운 숫양으로 LA농산물박람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대학 역시 샌 안토니오 전문대의 농학과로 진학했다. 그의 진로를 바꾸어놓은 것은 새뮤얼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연극의 세계에 매료당한 셰퍼드는 대학을 중퇴하고 무작정 뉴욕으로 내뺀다. 그의 20대는 곧 뉴욕의 60년대다. 히피와 예술가들이 들끓고 마약과 재즈가 넘쳐나던 곳. 그곳에서 폐차를 부수고 접시를 닦으며 극작에 매달리던 셰퍼드는 1966년부터 연속 3년간 오비상을 수상하면서 ‘히피세대를 대표하는 그로테스크한 극작가’로 명성을 쌓는다.
그의 연극은 언제나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야만적이고 폭력적이라는 비난과 진정한 초현실주의자 혹은 신비적 사실주의자라는 찬사는 결코 공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셰퍼드의 작품세계에 대한 비난 혹은 몰이해를 수그러뜨린 것은 그의 퓰리처상 수상연극 <매장된 아이>(1979). <기아계급의 저주>(1977), <진짜 서부극>(1980)과 더불어 ‘가족 3부작’(Family Trilogy)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아이를 죽여서 매장시킨 한 가족이 서로를 물어뜯으며 서서히 해체되어 가는 과정을 소름끼치게 묘사한 걸작이다.
이처럼 권위파괴적이고 도발적인 작가이니 그가 쓴 시나리오 역시 전혀 얌전하지 않다. <우리 형제>는 시인 피터 오를로프스키와 그의 정신병자 동생의 여행을 다룬 다큐멘터리이고, <자브리스키 포인트>는 60년대 히피들의 후일담을 분방한 형식 속에 담은 실험적인 작품인데 핑크 플로이드가 맡은 영화음악이 인상적이다. <오! 캘커타!>는 최초의 집단 누드신으로 화제를 모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각색인데 존 레넌과 함께 시나리오를 썼다. <레날도와 클라라>는 밥 딜런 밴드의 세계투어를 배경으로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제멋대로 뒤엉켜 있는 작품(셰퍼드 역시 자신이 드러머로 참여했던 록그룹 ‘홀리메달 라운더스’와 함께 그의 세계투어에 동참했다). 여기까지가 기존의 영화형식에 대한 장난스러운 비틀기 혹은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면, <진짜 서부극> 이후의 작품들에서는 그의 전공인 ‘미국적 신화의 붕괴’와 ‘가족 해체’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가 시작된다. <사랑의 열정>은 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파리, 텍사스>의 쌍생아 같은 작품이다. 샘 셰퍼드가 킴 베이싱어의 상대역으로 나와 비극적인 운명의 사랑을 무심하게 보여준다. <파 노스>는 자신의 아내 제시카 랭을 주연으로 기용한 감독 데뷔작이고, <벙어리>는 절묘하게도 웨스턴 형식 속에 그리스비극을 녹여넣은 수정주의 서부극.
그의 직함은 너무 많다. 극작가, 연출가, 연극배우, 록뮤지션, 시인,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영화배우, 감독…. 굳이 이런 르네상스맨을 한 단어로 정의해야 한다면 아무래도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주는 것이 상책일 듯싶다. 셰퍼드는 주저없이 말한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을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