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영화과를 2년간 다니다가 중퇴한 뒤, 충무로에 뛰어든 박정수(24)씨의 연출부 참여작 목록은 예사롭지 않다. <국화꽃향기>(2003), <태극기 휘날리며>(2004), <남극일기>(2005). 영화와 영화 사이에 4일 이상 쉬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숨가쁘게 달려왔던 그는, “준비했던 영화 중에 엎어진 작품은 하나도 없다. 내가 원래 사주팔자가 무지 좋다더라”며 웃는다. <남극일기>에서 그가 맡은 것은 비주얼이펙트를 총괄하는 일. <태극기 휘날리며>의 촬영·후반작업을 참여하면서 특수효과쪽 사람들과 친분이 많고, CG작업 등의 공정을 잘 알고 있다는 경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비주얼이펙트를 담당하는 건 어떤 일인가.

=비주얼이펙트는 특수효과, 특수분장, CG를 말한다. 현장에선 특수효과, 특수분장팀을 인솔하면서 장면별 연결을 책임진다. 말은 그럴싸하지만 실은 특수효과팀 등과 함께 강풍기 등의 장비를 나르면서 노가다를 하는 거다. (웃음) 대부분의 연출부는 촬영 종료와 함께 일이 끝나지만 비주얼이펙트 담당은 극장 개봉 직전까지 일이 끊이지 않는다. CG나 디지털 색보정 등에서 수정을 계속해야 하니까.

-촬영 당시 가장 어려운 점은.

=특수효과 팀장님과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매번 서로 옳다고 티격태격했던 일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사소한 것들이었다. 가장 많이 싸운건 대원들 모자에 달린 털 때문이었다. 한 시퀀스 안에선 그 털이 흔들리는 정도가 비슷해야 하는데, 매번 털이 너무 많이 흔들린다거나 적게 흔들린다고 승강이를 벌였다. 이제 와서 말로 설명하려니 정말 웃기는 일처럼 여겨진다. (웃음) 그래도 덕분에 특수효과 및 CG업체 분들을 많이 알게 됐다. 영화판에선 사람이 다인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여러 부서 사람들과 두루 커뮤니케이션을 하려면 아는 게 많아야 할 것 같다.

=옛날부터 기계나 컴퓨터를 좋아했다. 나중에 만들고 싶은 영화도 그로테스크한 SF영화다. 대학 때도 연출작품은 하나도 없는데, 애니메이션에는 관심이 많았다.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의 경우 필름과 달리 프레임별로 나눠서 찍어야 하기 때문에, 화면 안 요소를 컨트롤하는 구체적인 연출방법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멘사(IQ148 이상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 회원이라고 들었는데.

=하지만 아이큐랑 영화는 정말 아무 상관이 없더라. 공간지각능력이 좋아서 아이큐가 높아진 건데, 여지껏 연출부를 하면서 그걸 이용할 일은 한번도 없었다. (웃음)

-현재 참여하고 있는 영화는.

=<남극일기> 끝나기 무섭게, 조범구 감독님의 데뷔작 <뚝방전설>을 준비 중이다. 조감독으로 참여하는 첫작품인데 가을에 크랭크인 예정이다.

-그럼 이제 감독으로 데뷔하는 일이 남은 건가.

=그전에 조감독을 한 작품 더 해야 할 것 같다. <태극기 휘날리며> 정도 규모의 영화였으면 좋겠는데, 운이 닿기를 바랄 뿐이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