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희는 두 개의 이미지를 가진 배우다. 우아하고 지적인 게 하나다. 다른 하나가 ‘코믹’이라는 건 아이러니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되풀이돼 온 패러디가 그 이유다. 대종상 시상식에서 그가 했던 말 “아름다운 밤이에요”나 드라마 <육남매>에서의 대사 “떡 사세요”는 개그우먼 이경실의 코믹버전으로 한층 유명해졌다. 그의 발성은 외모만큼이나 여성적인 우아함을 자랑한다. 그러나 이게 코미디의 맥락 속에 들어서면 포복절도할 웃음을 자아내는 역설이 생겨난다.
유명배우 출신 거물 영화제작자역 “‘매트릭스’ 여전사도 잘할 수 있어”
그가 다시 본연의 우아한 모습으로 안방극장을 찾는다. 그의 아름다움을 내밀하게 탐해온, 그래서 코믹 패러디에 낄낄대면서도 마음 한 켠이 아릿했던 팬들에겐 일단 반가운 소식이다. <토지> 후속으로 28일 첫 방송되는 에스비에스 새 주말극 <그 여름의 태풍>(토·일 저녁 8시45분)이 출연작이다. <폭풍의 계절> <아들의 여자> <육남매> 등을 쓰고 연출한 최성실 작가와 이관희 피디가 5년여만에 다시 손잡고 만드는 정통 드라마다. 영화계를 배경으로 과거 한 영화감독을 두고 연적관계였다가 중년이 돼 다시 만난 두 여배우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들의 두 딸들도 영화배우로서 세대를 이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장미희는 과거 인기감독(노주현)을 차지한 뒤 지금은 영화계의 거물 제작자가 된 정미령 역을 맡았다.
“전반적으로 제 이미지와 비슷하지만, 차이도 있어요. 전에는 내면에 슬픔을 지니고도 표현하지 못했던 인고의 여성상이었다면, 이번엔 느끼는 대로 표현하는 인물로 그려지죠.” 극중 정미령은 처음 딸 한은비(한예슬)의 배우 입신을 반대하지만, 딸의 진심을 알고는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딸을 톱스타로 끌어올리려 한다. “걸걸한 여장부는 아니지만 냉철함과 치밀한 전략적 두뇌를 지닌 현대적 여성이에요.”
그의 출연에는 작가·피디와의 끈끈한 인간관계도 한 몫 했다. “<6남매>를 두 분과 함께 했어요. 그 뒤로도 이관희 감독과는 여러 작품을 같이 했고요.” 그는 “특히 작가가 5년만에 붓을 든다길래 좋은 먹이 되고 싶었다”며 “젊은세대 이야기로만 끌어가는 요즘 드라마와 달리 최 작가는 세대를 넘나드는 이야기에 탁월하다는 점도 좋았다”고 말했다. 중견 연기자들이 단순히 극의 배경으로 소진되는 게 아니라 당당한 한 축으로 생동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단단했다는 것이다.
30부작으로 예정된 이번 드라마 뒤엔 좀 색다른 배역을 연기하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예를 들어달라고 하자 “<매트릭스>나 <에일리언>의 여전사 같은 차가우면서도 강인한 역”이라고 했다. 놀랍다는 표정을 짓자 “감독들이 보도록 꼭 좀 써달라”며 못을 박았다. “저에게 여성성만 있다고 생각하면 큰 착오예요. 매일 2시간씩 근육운동과 합기도, 태껸, 요가 등을 병행하고 있어요. 저도 날아다닐 수 있어요.” 실제로 1970년대 후반엔 홍콩 배우 유가휘와 함께 <당랑권>이라는 무협영화에 출연한 적도 있단다.
“<포르노그래픽 어페어> 같은 외로움과 관능이 살아있는 배역도 욕심이 난다”고 했다. 젊은 연기자들이 젊다는 이유만으로 활개치는 요즈음, 그는 그들보다 더 열정적으로 연기변신을 꿈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