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나누는 대화가 바로 소위 말하는 ‘쿨함’이 아니던가
일요일 아침, 비몽사몽간에 TV를 켜니 와글와글 어린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 시간에 방영되는 무슨 성장 드라마가 하나 있다던데 그건가. 그러나 떠지지 않는 눈을 어찌하지 못하여 소리로만 짐작할 뿐이었다.
내 경우 일요일 아침 프로는 대개 자다 깨기를 반복하면서 시청하는 것이 보통이다. MBC의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만 해도, 어떤 에피소드가 진실인지 밝혀지기도 전에 다시 잠이 들곤 하여 혼자서 안타까워했던 일이 한 두 번이 아닐 지경.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는 일요일 아침. 그런데 어쩐 일인지 어린 학생들의 대사가 신경 쓰여 더 잘 수가 없었다.
“너네 끄떡하면 나 가르치려고 드는데 그거 하지마. 지가 알아서 기는데 나보러 어쩌라구.” (나, 몸을 뒤척이며 으응? 한다. 그러나 곧 다시 비몽사몽.) “니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왜 상필이 시다바리처럼 부리냐고? 그러면 좀 어떤데? 서로 그게 편해서 그런다, 왜?” (이거 뭐지? 감았던 눈을 뜨고 방금 전 대사의 주인공을 찾지만 이미 그 장면은 지나간 뒤.) “너, 나랑 잘 지내고 싶지?” “어.” “그런데 난 니가 싫어.” “나도 알아.” (이 시점에서 나는 눈을 완전히 뜨고 자세를 고쳐 앉는다)
이 어린 학생들의 목소리를 성인의 것으로 대치한다면? 상상해보니 의외로 멋진 그림이 그려진다. 꾸미지 않은 감정표현과 직선적인 대사. 이것은 다 큰 어른들이 동경하는 시원시원함, 소위 말하는 ‘쿨함’이 아니던가.
비비 꼬고 뒤틀기 좋아하는 성인 드라마에 익숙한 나에게 <반올림 2>는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른들이라면 어렵고 복잡하게 말했을 내용을, 그들은 속이 시원할 정도로 단순하게 말하고 또 그만큼 명쾌하게 해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오히려 어른을 즐겁게 하니, 이 드라마, ‘10대’로 연령층을 제한하기에는 아깝기까지 하다.
어쩌면 실제 고등학생들 눈에는 <반올림 2>의 내용이 비현실적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대한민국 고교생활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동아리 활동에 그토록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는 않을 테고, 남학생 머리카락 길이가 귀를 덮는 수준이어도 괜찮은 분위기는 더더욱 아닐 테니. (사진부 부장은 무슨 일본 락 그룹 멤버 같아 놀랐다.)
아마도 스무 살 무렵의 내가 <우리들의 천국>에 가졌던 실망과 비슷하리라. 그 당시 나는 대학에 입학하면 그야말로 <우리들의 천국>과 같은 일상이 펼쳐질 줄 알았다. 남학생, 여학생이 삼삼오오 몰려 다니고 우리들의 아지트인 카페가 있고, 캠퍼스 커플이 되어 연애도 하고. 이런 재미난 일상이 아름답게만 펼쳐질 줄 알았던 것이다. 얼마 안가 그것이 순 뻥이었음을 깨닫게 된 나는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그 드라마를 싫어하게 되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니 정말로 현실적이기만 했다면 내가 이토록 오래 기억할 수 있었을까 싶다. <우리들의 천국>은 리얼한 대학 생활이 아닌, ‘스무 살의 느낌’을 그리는 드라마에 더 가까웠던 것이다.
한 성장소설을 예로 들어 보겠다. 여드름 투성이 얼굴의 중학 3학년 남자 아이가 주인공인 소설인데, 그 아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 세 번 철저히 세수하고, 세수한 뒤에는 꼭 샘플 화장수로 얼굴을 두드려 바른다는 구절이 있었다. 나는 무엇보다도 ‘샘플’이라는 표현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돈이 없어 화장수는 살 수 없고, 피부 관리는 해야 하는 중3 남자 아이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반올림 2>에 기대하는 점도 이와 비슷하다. 감정표현에 서툴고 직선적이지만 알고 보면 누구보다 더 예민하고 감성적인 10대를 주인공으로 한다는 것은, 더 쿨하고 더 감성적인 이야기를 보여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고교생의 생활을 리얼하게 담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그 시절의 느낌, 어른스러운 척하는 모습조차 더욱 어려 보이는 그들만의 귀엽고 맑은 느낌들을 살리는 일에 더 중점을 두었으면 한다. 그것은 거창한 사건사고보다는 미세한 감정변화에 관심을 기울일 때 얻을 수 있는 부분이다. 예민한 감수성에 비해 서툴고 투박한 대화법을 가진 그들 특유의 불안정하면서도 톡톡 튀는 느낌들을 잡아낼 수 있다면, <반올림 2>는 10대는 물론 어른들의 보편적인 공감대도 끌어낼 수 있는 좋은 드라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