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입문자들에게는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 옛날, 멀고도 먼 한 은하계에서(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라는 익숙한 자막과 함께, 존 윌리엄스의 스코어가 울려퍼지면, 데자뷰처럼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이하 <시스의 복수>)는 막을 올린다. 몇날 며칠에 걸쳐 바그너의 4부작 <니벨룽겐의 반지>를 상연하던 독일 바이에른주의 어느 오페라 하우스처럼, 극장은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 집회에 참여한 신도들로 가득 찰 것이다.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3번째 에피소드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오페라의 마지막 장이다. <보이지 않는 위험>과 <클론의 습격>에 탄식했던 광신도들의 마지막 기대를 충족시켜면서 시리즈의 막을 내려야 하고, 동시에 4번째 에피소드인 <새로운 희망>과의 연결고리를 지으며 새로운 시작을 알려야 한다.
조지 루카스가 누누이 밝혔듯이 “근본적으로 그리스 비극에 가까운 <시스의 복수>”가 시리즈 중 가장 어두운 별임은 놀랄 일이 아니다. <클론의 습격>으로부터 3년 뒤, 공화국은 시스 백작 두쿠(크리스토퍼 리)와의 전화에 휩싸여 있다. 분리주의자 드로이드군의 우두머리인 그리버스 장군은 팰퍼타인 의장(이안 맥디아미드)을 납치하고, 오비완 케노비(이완 맥그리거)와 아나킨 스카이워커(헤이든 크리스텐슨)는 의장을 구출하기 위한 임무를 지니고 드로이드군의 함정에 잠입한다. 아나킨은 자신의 손목을 앗아갔던 백작 두쿠의 목을 치고 팰퍼타인을 무사히 구출하는 공적을 세우며 의기양양하게 귀환한다. 하지만 팰퍼타인의 의중을 의심스러워하는 제다이 원탁회의는 팰퍼타인과 친분을 맺고 있는 아나킨을 제다이 마스터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실망한 아나킨은 설상가상으로 몰래 아이를 임신한 파드메(내털리 포트먼)의 죽음에 대한 예지몽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역사는 정해져 있다. 다스 베이더가 루크와 레이아의 아버지이듯이,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다스 베이더가 될 것이며, 공화국은 악의 제국으로 화할 것이다.
여기에 “내가 네 아버지다”는 없다. <시스의 복수>는 내러티브로 끌어낼 수 있는 서스펜스는 일찌감치 거세된 채 시작된다. 대신 조지 루카스는 ‘어떻게 아나킨이 무너져가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신파 <스타워즈>”라는 조지 루카스의 귀띔처럼, 아나킨이 어둠의 포스에 매혹되는 일련의 과정은 거대한 권력에의 욕망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예견된 연인의 죽음을 막기 위한 가련한 청년의 몸짓에서 나온다. 요다는 사랑하는 대상을 떠나보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아나킨에게 이르지만, 탁월한 힘을 타고나고도 줄곧 사랑하는 것들을 잃기만 해온 청년의 귀에 그 말은 들리지 않는다.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것은 어둠의 포스만이 가르쳐줄 수 있다는 팰퍼타인의 유혹은 달콤하고, 젊고 의기양양한 아나킨은 그것을 뿌리칠 수 있을 만큼 지혜롭지 못하다. 사람들은 헥토르의 죽음을 알면서도 트로이의 운명에 눈물을 흘리듯이, 아나킨이 다스 베이더가 될 것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선한 젊은이의 추락에 안타까운 탄식을 보낼 것이다. <시스의 복수>는 할리우드의 달콤한 낙관주의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블록버스터다. ‘영웅의 탄생’이 아니라 ‘악마의 탄생’을 이야기하는 블록버스터를 달리 본 일이 있던가. 게다가 조지 루카스의 손길은 온화했던 전편들을 생각한다면 이상할 정도로 비정하다. 그는 불편한 장면들의 삽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침내 시스 군주로서의 정체를 드러낸 팰퍼타인과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 아나킨은 제다이의 학살을 명하고, 은하계 도처에서 죽어가는 제다이들의 모습에 비애감을 느끼기도 힘겨울 때쯤, 조지 루카스는 아나킨의 손으로 어린 제다이 후보생들을 갈가리 찢어놓는다. <시스의 복수>는 스타워즈 에피소드들 중 유일하게 PG 13등급을 받았다(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는 ‘전체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시스의 복수>는 5편의 에피소드를 모조리 끌어와도 모자랄, 경이로운 스펙터클이다. 우주전장에서 시작되는 오프닝과 오비완, 아나킨의 마지막 대결 시퀀스는 ILM의 테크놀로지가 마침내 우아함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고, 중국, 타이, 스위스, 이탈리아와 튀니지에서 촬영된 화면들은 전 지구적 지형도를 스페이스 오페라의 세계 속에 포괄적으로 담으려는 시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스의 복수>가 지난 에피소드들에서 지적당해왔던 단점을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다. 대사들은 딱딱하고 매력이 없어서 이완 맥그리거와 이안 맥디아미드를 제외하고는 배우들이 재능이 완벽하게 발휘될 겨를이 없다. (마치 지금의 미국에 대해 발언하는 듯한) “민주주의는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는군요. 천둥 같은 박수소리와 함께”라는 파드메의 대사와 “내 편이 아니라면, 나의 적일 뿐”이라는 아나킨의 대사처럼, 순진한 이분법은 캐릭터가 심연으로 다가가는 것을 자꾸만 방해한다. 그런데 조지 루카스는 이에 개의치 않는다. 대신 그는 <시스의 복수>를 거칠지만 단 하나의 호흡으로 끌고간다. 여기에는 입체적인 캐릭터 대신에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들이 있고, 촘촘하게 짜여진 상승의 드라마 대신에 뒤돌아보지 않고 추락하는 하강의 드라마가 있다. 잔가지로 가득한 <보이지 않는 위험>과 <클론의 습격>을 하나로 묶고, <시스의 복수>를 두개의 에피소드로 나누는 편이 좋았을 법도 하지만, 그랬더라면 이토록 빠르게 추락하는 비극 속으로 관객을 몰아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시스의 복수>는 잘려나간 뫼비우스의 띠를 이어주며 끝을 맺는다.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다리를 잃은 채 울부짖으며 지옥에서 빠져나와 다스 베이더의 갑옷을 쓰고, 파드메는 쌍둥이(루크와 레이아)를 낳으며 죽어간다. 두 장면이 점층적으로 교차편집되는 순간, 이 세 번째 에피소드는 탄생과 죽음, 그리고 또 다른 탄생이 맞물리는 신화의 마지막 장을 닫는 동시에, 시간을 거슬러 타투인의 거친 사막으로 되돌아온다. 그 옛날, 멀고도 먼 한 은하계에서(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 장성한 아들은 잃어버린 아버지와 재회할 것이다. 하지만 신화는 반복되지 않는다. <시스의 복수>를 보고나면, 그 옛날의 <스타워즈>는 더이상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루크 스카이워커의 영웅담은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갱생담이 되었다. 조지 루카스는 한 세계를 닫는 대신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버렸다.
<스타워즈> 외전들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 쭉~
<스타워즈>는 끝났다. 하지만 수천만명의 팬들이 탄식만 늘어놓고 앉아 있을 시간은 없다.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 이후에도 <스타워즈>는 끊임없이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예정이기 때문이다. 일단은 공식적인 이야기들. <시스의 복수>는 10월이나 11월 즈음에 DVD로 발매된다. 이 확장판은 삭제된 장면들을 대거 수록하고 있을 예정이어서 수집가들의 애를 벌써부터 태우고 있다. 팬들의 기대를 가장 부풀리는 것은 두개의 오리지널 외전(Spin-off) 계획이다. 하나는 카툰 네트워크에서 방영 중인 애니메이션 시리즈 <클론전쟁>의 3D애니메이션 시리즈화. 조지 루카스는 이 시리즈의 2006년 말 완성을 목표로 이미 구체적인 프로덕션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하나는 2007년 방영을 목표로 한 실사 TV시리즈. <스타워즈> 정보와 자료의 보고인 ‘포스넷’(www.theforce.net)은 “<스타워즈>가 가장 흥미진진해질 때는, 조지 루카스가 타인이 <스타워즈> 세계를 가지고 놀도록 허락할 때”라며 기대를 걸고 있는 중이고, 여기에는 시리즈의 팬인 케빈 스미스(<점원들>)를 비롯한 많은 메이저급 감독들이 가담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조지 루카스는 여섯편의 영화를 모두 3D 버전으로 만들어 아이맥스에서 디지털로 상영하고 싶다는 희망을 자주 피력해왔다. 문제는 그만한 규모로 디지털 영사를 해낼 극장이 미국에도 그리 흔치는 않다는 사실이지만, 팬들은 조지 루카스라면 어떻게든 해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공식적인 루카스 필름의 외전들만이 팬들의 구미를 당기는 것은 아니다. <스타워즈>는 팬들에 의한 수많은 아마추어 외전들을 양산해왔는데, 최근에는 버지니아, 메릴랜드와 워싱턴 DC의 팬들이 2만달러의 저예산으로 제작한 <스타워즈, 폭로>(Star Wars Revelations)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www.panicstruckpro.com/revelations에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는 이 작품은, 저예산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완성도가 놀라울 정도. 조지 루카스 역시 만족을 표했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