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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걸 아는 소녀, <활>의 배우 한여름
사진 이혜정이종도 2005-05-19

김기덕 감독의 <>에서 한겨울에 한여름 옷을 입고 17살 먹은 소녀 노릇을 하다온 배우 한여름. 소녀는 한 노인의 배에 갇혀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사랑을 강요당한 것일까 아니면 상징적인 제의과정을 거쳐 여인으로 성장하는 것일까. <>이 던지는, 피할 수 없는 화살 같은 질문. 그럼 이건 어떨까. 참한 소녀와 되바라진 소녀가 동거하는, 알 수 없는 여자 한여름에게 그 질문을 되돌려주는 것. “너무 어려보인다고요? 누군가 그러던데요. 내 눈동자는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다고.”

되바라진 소녀.

일산 집에서 올해 서울에 두번 올라왔나. 집에만 있어도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혼자 있기를 좋아해요. 에쿠니 가오리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도 읽고, 파주나 일산 극장에서 <아무도 모른다>나 <피와 뼈> 같은 좋은 영화도 보고. 대학은 반 학기 다니다 말았어요. 학교랑 저랑은 스타일이 안 맞아요. 술은 고3 때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에 한번 크게 마셔본 적이 있지만 그뒤론 없어요. 술은 왜 마시죠? <사마리아>에서 노출 연기도 있고 해서 굉장히 오픈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전혀 안 그래요. 그런 걸 영화적으로만 좋아하는 거지요.

김기덕과 함께 춤을.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인생에 관해 얘기하는 영화예요. <>을 하게 된 것도 엔딩장면이 너무 감동이 컸기 때문이죠. 시놉시스 얘기만 듣고도 눈물이 나왔어요.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다루죠. 이미지를 보는 감독님의 눈도 뛰어나요. <악어>와 <나쁜 남자> 같은 영화에서 폭력과 섹스만을 보시는 분도 있는데 김기덕 영화는 감성적인 부분이 있어요. 감독님 작품 중에선 <빈 집>을 가장 좋아하는데, “우리가 사는 세상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다”는 얘기가 정말 가슴에 와닿아요. 배우의 연기도 잘 산다고 생각해요. 양동근, 장동건, 조재현씨는 정말 작품 속에서 실감나게 느껴지지 않나요.

사랑은 말이 아니라 눈.

이 영화에도 대사가 없는데요, 가장 중요한 대사는 눈물이나 웃음이 아닐까요. 정말 사랑하면 사랑한다는 말조차도 가볍죠. 영화에서 소녀는 할아버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데요. 소녀는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보답하기엔 미성숙한 존재죠. 늘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소중함을 모르게 되는 거죠. 그런데 소녀가 배가 아니라 서울에 있다고 해서 더 행복할까요. 할아버지와 보낸 10년이 불행할 수도 있지만,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면 할아버지는 사랑을 초월한 불멸의 존재로 다가오지 않을까요. 만약 나라면 할아버지를 택했을 거예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겨우 스물셋이지만 가슴 아픈 사랑을 두번 해봤어요. 주변에서 뭐라 하든 자제할 수 없는 이성적인 제어가 불가능한… 가슴 저린… 그런 사랑. 그 사람 눈동자만 봐도 눈물이 나지 않나요.

테크닉이 아니라 간절하게.

얇은 옷을 입고 1월에 촬영해서 추웠죠. 하지만 누가 걱정한다고 대신 해줄 수도 없고 소용이 없는 거죠. 힘든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다 같이 추웠으니까요. <사마리아> 때 속옷 차림으로 여관 2층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찍는데 구경꾼이 많더라고요. 겁이 많아 뛰어내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작품을 하겠다는 의지와 간절함만 있다면 못해낼 게 없지 않을까요. <>에서 뺨을 맞는 장면이 있는데 감독님과 전성환 선생님한테 실제로 열대씩 모두 스무대를 맞았어요. 활을 쏘느라 손가락이 까지는 건 문제도 안 돼요. 겨울 바다에 뛰어들기도 하고요. 테크닉보다는 감정이 얼마나 절실한가가 더 중요하잖아요.

내가 가면 그게 길이다.

정해진 길은 없어요. 길도 처음엔 길이 아니었을 수 있잖아요. 다 그 길로 간다고 해서 그 길로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가는 게 길이 될 수도 있죠.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고파요. 내 안에서 나오는, 내 마음이 끌리는 소리를 따라가고 싶어요. 글도 쓰고 싶고, 영화도 만들고 싶어요. 단관 개봉이어도 좋아요. 캠코더로 찍어도 되는 영화죠. 정해진 틀을 따르느냐 따르지 않냐가 아니라 얼마나 간절하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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