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 클루삭과 필립 레문다가 세계 최고의 거짓말쟁이들이 아니라면, 아마도 체코 최고의 거짓말쟁이들일 것이다. 프라하 영화학교에서 만난 두 사람은 거대한 하이퍼마켓(쇼핑몰) ‘체코드림’을 짓기로 했다. 최저의 가격으로 제품을 판다는 광고를 TV와 라디오를 통해 내보내고, 교외에는 엄청난 규모의 쇼핑몰을 세웠다. 개장 당일날 모인 프라하 시민들은 어림잡아 2천여명.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껍데기 밖에 없는 가짜 쇼핑몰이다. 디지털 스펙트럼에 초청된 <체코드림>은 그 대담한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담아낸 다큐멘타리이다. 두 사람은 직접 하이퍼마켓의 매니저로 분장하고, 수천명이 모인 장소에서 테잎 커팅식까지 태연스럽게 해낸다. “사람들이 우리를 공격할까봐 불안했다”고 털어놓으면서도 “하지만 영화감독으로서,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계획대로 모인 것이 너무 기뻤다”고 태연자약하게 말하는 두 젊은 감독의 배짱이 놀랍다.
“사회주의 시절의 체코인들은 배급을 받으려고 줄을 섰고, 지금의 체코인들은 쇼핑몰에서 줄을 선다. 웃기지 않은가?” 비슷한 고민을 안고있던 비트 클루삭과 필립 레문다는 맥도널드에 앉아서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다큐멘타리를 구상했다고 한다. 실현가능성을 누구라도 의심했을 <체코드림>은 반년동안 300여명의 스탭, 수많은 회사들의 예산지원으로 완성되었고, 체코 사회에 거대한 파고를 던져주었다. 미디어는 찬반으로 나뉘어 난리가 났고, 체코 학교들은 미디어 수업을 위한 교재로 <체코드림>을 채택했다. 하지만 여전히 두 사람은 미디어의 독성에 대해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우리가 만들었던 껍데기 쇼핑몰은 멀리서 보더라도 가짜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은 4시간이나 개장을 기다렸다. 게다가 쇼핑몰이 가짜라는 것이 탄로난 이후에도 사람들은 혹시 지하로 들어가는 통로같은 것이 있는지 찾아다녔다. 사람들은 더이상 자신의 눈조차 믿지 않는다!”
“미디어는 현실을 가리는 커튼과도 같다”며 날이 선 표정으로 이야기하던 두 사람은, 인터뷰 도중에도 연신 체코어로 뭔가에 대해서 설전을 벌였다. 또 다시 공동작업을 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그들은 “우리는 각자의 야망을 지닌 두명의 감독들이다. 같이 일하는 것이 항상 쉬운것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체코에서 날아온 비트 클루삭과 필립 레문다는 생생하게 날이 서 있는 젊은 논쟁가들이고, 그들의 디지털 카메라는 도발을 품고있는 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