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커피 문화 답사기
커피 열매의 끓인 물을 처음 맛본 한국인은 고종 황제로 알려져 있다. 1985년 을미사변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해 있던 고종 황제는 러시아 공사 웨베르의 권유로 커피를 마셨다. 한국의 커피 문화는 우리나라보다 180년 앞서 커피를 받아들인 일본인들에 의해 일제시대 명동을 중심으로 번성하기 시작했고, 한국전쟁 이후 미군들이 마시는 인스턴트 커피를 받아들였다. 국내에 인스턴트 커피를 대중화시킨 주역은 1970년대 국가의 지원으로 커피산업을 시작한 동서식품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은 접대용 음료로 놓인 인스턴트 커피에 흠칫 놀랐다고 한다. 그때부터 한국에 ‘원두커피 시대’가 열렸다.
올해 3월 초, 서울 시내 최대의 대학가 신촌에서 젊은이들의 랜드마크로 오랫동안 명성을 누린 독수리다방이 지난해 6월 문을 닫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매스컴을 탔다. 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에도 등장하는 연세대 굴레방다리 앞 2층짜리 다방이 33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것과 관련해 인근에서 11년간 음식점을 경영해온 한 이웃은 “1990년대 말부터 찾는 발길이 줄기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미국 최대의 커피 프랜차이즈 전문점인 스타벅스가 이화여대 앞에 1호점을 낸 것이 1999년이다. 건물주가 “다방은 들여놓지 않는다”며 입점을 곤란해했다는 스타벅스 이대점은 만 5년이 되지 않아 117개의 형제를 갖게 됐다. 올해 2월 건설교통부는 전국 표준지 공시지가 1위 자리가 서울시 중구 충무로1가 24의 21번지 명동 스타벅스 부지라고 발표했다.
평당 1억3884만원. 16년간 부동의 1위를 고수했던 명동 우리은행 지점 자리가 2위로 밀렸다는 데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대학생들과 젊은 직장인들로 붐비는 거리 위에서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다니는 손을 발견하긴 어렵지 않다. 외국 브랜드들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국내 업체들이 개발한 브랜드들도 생겨났다. 브랜드의 대형화와 체인화는 불가피한 추세이기도 하거니와 이들은 맥도널드나 버거킹처럼 동일한 간판과 메뉴와 맛으로 주요 상권과 오피스가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밥값에 맞먹는 돈도 거침없이 지불하게 만드는 퀄리티 중심의 마케팅 전략으로 한국의 20, 30대 커피 문화를 바꾸었고, 이제는 누구라도 어느 한곳은 가봤을 법한 외국의 커피 프랜차이즈 전문점 네곳의 이야기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