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벌써 1800명이나! <씨네21> 홈페이지에 창간 10주년 축하 리플을 다는 자리를 마련했더니 사흘 만에 1800명 넘는 사람들이 축하인사를 남겼다. 경품을 내걸긴 했지만 사심이 있어 쓴 글 같진 않다. 한마디 한마디 진심이 묻어나는 말이 대부분이다. <씨네21>을 만나 행복했다는 표현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다. 쓸쓸히 보낼 줄 알았는데 여러 지인들이 예상치 못한 생일파티를 마련해준 것 같은 기분이다. 이런 날은 잘난 척 좀 해도 욕먹지 않을 것 같다.
문득 내가 처음 편집장을 맡았을 때 3대 편집장이었던 허문영 선배가 보낸 이메일에 적혀 있던 글이 떠오른다. “나오고 나서 보니까 <씨네21>이 여전히 중요한 매체라는 걸 알겠다. 옛날보다 더 중요하진 않더라도 여전히 중요하고, <씨네21>에 마음 기대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겠더라.” 가끔은 정말 그런가 의심스럽지만 10주년을 맞는 지금 같은 때는 이 말이 실감난다. 감히 말하자면 <씨네21>은 한국의 문화지형에서 아주 특별한 위치를 점하는 잡지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씨네21>은 90년대 중반 일어난 문화적 빅뱅의 기념비 같은 존재다. 케이블TV 방송국들이 올해 개국 10주년을 맞은 것은 그냥 우연이 아니다. 지난 10년간 미디어 환경은 스스로 운명을 예측할 수 없는 변화에 휩싸였다. 전보다 몇배, 몇십배 많은 정보를 실어나를 통신망이 구축됐지만 거기 담길 콘텐츠는 턱없이 모자랐다. 바로 그때 <씨네21>은 대중문화의 잠재력을 일깨웠고 영화의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들었으며 양질의 콘텐츠란 어떤 것인지 모범을 제시했다. 세상의 중심이 정치에서 문화로 옮겨가는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언론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 <씨네21>은 90년대 중반 시작된 한국영화 붐의 증인이자 동반자다. 이번호 특집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겠지만 <씨네21>은 영화인과 더불어 한국영화가 가야 할 길을 함께 모색했다. <씨네21>의 격려와 비판이 한국영화의 성장에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씨네21>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나빴을 거란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세 번째 <씨네21>은 한국사회의 어떤 결핍에 저항하는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비록 영화라는 특정 분야를 중심으로 삼은 잡지지만 <씨네21>은 오랫동안 한국사회가 잊고 있었거나 억눌러왔던 것을 한꺼번에 분출시켰다. 그것은 때론 영혼의 허기를 채워주는 생활의 발견이었고 때론 세상의 편견에 시비를 거는 싸움이었다. 나는 <씨네21>의 독자와 필진이 만든 이 상상의 공동체가 한국사회에서 가장 건강한 부분 가운데 하나라고 믿는다.
혹시 세 가지 이유 모두 시효가 다하지 않았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물론 대답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TV와 인터넷이 알맹이 없는 뉴스만 양산하는 지금, 한국영화가 일확천금의 유혹에 흔들리는 지금, 한국사회의 정신적 빈곤이 깊어가는 지금, <씨네21>은 여전히 중요하다. <씨네21>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질타도 이런 맥락에 놓인 것이리라 짐작한다. 창간 10주년을 맞는 자리에서 감히 약속드린다.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겠노라고.
PS. 창간특대호에 담을 내용이 너무 많아 이번주 컬처잼 지면은 모두 없앴다(단, TV영화 시간표만은 198쪽 게시판 코너로 옮겼다).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린다. <씨네21>을 위해 한편의 영화를 찍어준 안성기, 문근영 두 배우에게 지면을 빌려 다시 감사드린다. 여러분∼, 사진 너무 이쁘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