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책을 읽어본 사람 또한 없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보고, 48페이지짜리 그림책에서 보고, 그것도 아니면 그저 앞치마를 두른 어린 소녀의 이미지만을 소비해왔을 뿐이다. 큰 맘 먹고 책을 집어들었다가는 곧장 좌절이다. 100년도 전,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씌어진 책을 현대 한국인이 이해하려드는 것은 지나친 야욕이다.
더 큰 문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지극히 개인적 동기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점이다. 앨리스의 모델은 옥스퍼드대학 학장의 딸 앨리스 리델이다. 수학 교수로 일하던 캐럴은 리델 자매와 함께 간 보트 놀이에서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지어냈다. 앨리스의 그 유명한 말장난들은 그들 자신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농담과 은유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앨리스와 이상한 나라는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매혹적이었고, 이 길지 않은 어린이 책에 대해 많은 학문적 연구들이 이루어져왔다. 어린이 책 작가로의 유명세를 수치스러워 한 평범한 수학자 루이스 캐럴이 안다면 기뻐할 것이다. 이 책은, 캐럴 연구자이며 대중을 위한 수학자로 알려져 있는 마틴 가드너가 주석을 달아놓은 앨리스 책이다. 42란 숫자가 캐럴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든가, 앨리스 리델의 동생 에디스의 별명이 틸리라든가, 그 밖에 평범한 독자로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을 본문보다 더 긴 주석을 달아 설명해주고 있다. 이제 전에 알지 못하던 많은 것들을 안다. 앨리스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더 잘 안다고 더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소설의 경우, 주석이 주렁주렁 달려 있으면 왠지 보기가 싫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후주가 아닌 각주이기 때문에 더욱 방해가 된다. 사실 앨리스는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만큼 더 신비롭고 매혹적이기도 했다.
이 책은 앨리스를 더욱 재미있게 한다기보다는 새로운 즐거움을 준다고 봐야 옳다. 넓은 이마의 소녀와 미친 모자장수와 여장남자 같은 공작부인을 분석하기 위한 참고서가 아니다. 앨리스에 매혹된 사람들을 대표해 한 수학자가 늘어놓는 길지만 지루하지 않은 장광설을 요란하게 찬탄하고, 그저 즐기자. 장정 역시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만큼 근사하다. 오리지널 판형을 확대하다보니 존 테니얼의 그림이 조금 허전해지긴 했지만 원래의 아름다움을 손상시킬 정도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