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것> - 동진의 복수가 시작되는 2부 도입부
김병일 촬영감독: 극단적인 와이드숏에서 주인공의 내면으로 전진
물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순천의 제1급수 저수지. 강둑에서 동진(송강호)은 세상에 하나뿐인 딸의 죽음을 통고받는다. 그의 눈가에 분노와 회한, 그리고 눈물이 얼룩진다. <복수는 나의 것>은 애초 1, 2부로 구분되는 화면 컨셉으로 출발했던 영화다. 류(신하균)의 유괴, 류 누나의 죽음, 딸의 죽음을 다루는 1부와 동진의 복수로 대응되는 2부 중 한 부분은 흑백으로 촬영한다는 것이 박찬욱 감독과 김병일 촬영감독의 원래 구상. 그것도 단순한 흑백이 아닌 당시 세계의 CF와 영화 전반에서 전염처럼 번지던 더러운 그린을 가미한다는 포석이 있었다. 미국 현상소의 테스트까지 마친 상황에서 제작비 때문에 그 꿈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촬영 컨셉에서 그 자취는 찾을 수 있다.
순천 저수지 시퀀스, 국과수 시퀀스는 동진의 복수가 시작되는 2부의 팡파르다. 산과 산 사이에 끼어 있는 저수지의 입지 탓에 해가 늦게 뜨고 빨리 지는 부족한 일조량이 낮촬영을 가로막아선다. 토목공사를 했지만 사람들이 수색작업을 벌이기에는 너무 얕은 수심도 스탭들의 애를 태웠다. 12mm 광각렌즈로 주민들, 경찰들, 배에 탄 사람들을 한폭에 담고 ASA(필름감도 : 숫자가 낮을수록 많은 광량을 필요로 한다. 숫자가 높은 것은 적은 빛으로 찍을 수 있는 대신 확대하면 입자가 거칠어진다.) 50의 데이라이트필름(태양광의 실외촬영에 사용, 다른 색온도를 가진 텅스텐필름은 텅스텐조명아래 사용된다)으로 첫 부분을 찍어나간다. 극단적인 와이드숏으로 사건 전경을 제시한 뒤 잡아먹을 듯이 동진에게 파고드는 촬영 동선은 이 영화의 야수적인 성격을 드러낸다고 김병일 촬영감독은 설명한다. “복수는 나의 것”이라고 외치는 신 앞에서 인간은 그저 참변을 지켜볼 따름. 외경과 차 안을 조합하고 동진의 얼굴을 유리창으로 가려 관객이 동진을 상상하며 보게 만든 봉고차 장면이 지나가면, 허탈감에 사로잡힌 동진이 터덜터덜 걸어간다. 핸드헬드로 여덟 테이크를 진행한 이 장면이 어려웠던 것은 뒷걸음질해야 하는 동선도 비포장 경사길도 아니었다. 배우의 감정에 리액션하듯 카메라를 반응해달라는 감독의 심리적 주문이 김병일 촬영감독에게는 가장 어려웠다. 심지어 인물이 카메라 밖으로 빠져도 좋으니 감정에 충실하라고 박 감독이 요구했다는 후문.
죽음의 발걸음을 잡아낸 헨드헬드 뒤에는 대조적으로 속도감 있게 스테디캠을 쓴 국과수에 당도하는 동진과 형사의 모습으로 연결된다. 복수를 위한 의식처럼 자식이 해부되는 광경을 직면하는 동진. 더러운 그린을 구현하기 위해 유리창마다 그린 젤을 바르고 수술등에 텅스텐 조명, 카메라에는 초콜릿 필터 장착, ASA 250 데이필름 로딩, 색감이 잘 묻어나는 회색 점퍼와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동진이 들어서면 준비완료. 명배우 송강호가 분노와 상실감을 뒤섞은 그만의 기묘한 표정으로 감정을 머금어낸 뒤, 동진은 피에 대한 응답을 피로 갚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1.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들어서는 동진과 형사. 저수지 시퀀스의 감정적 리듬과 앵글은 연결되지만 촬영기법을 스테디캠으로 다르게 가져가서 속도감이 느껴진다.
2.3.4.5. 연구소 건물로 들어서면 화면에 그린이 묻어나기 시작한다. 수술대 전경 장면에서는 창을 통해 드는 빛과 화면톤이 완연한 녹음처럼 느껴지고, 수술등이 하이라이트 조명이 된다. 짧은 순간이지만 다양한 음영과 얼굴 근육의 효과적인 움직임과 동작으로 복합적인 감정을 끌어낸 클로즈업.
<친구> - 동수가 칼에 찔리는 장면
황기석 촬영감독: 검은 스크린으로 직사광선 막고 사이드 조명 설치
“마이 뭇따 아이가. 고마해라.” 동수(장동건)가 30여번이나 사시미를 먹어가면서 내뱉었던 한마디는 역사상 가장 많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되뇌어진 대사였을 것이다. 황기석 촬영감독이 800만 관객의 뇌리에 남은 그 장면을 다시 꺼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자신이 만든 장면에 가지는 애착이야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는 그도 “<친구>의 그 장면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주기 때문에 아끼게 된다. 조금 특별한 경우다”라고 말한다. 물론 어떤 장면보다도 난이도가 높았던 촬영장의 고군분투가 기억에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황기석 감독은 <친구>의 콘티를 완벽하게 마련하고 촬영에 들어갔다. 98일 동안 78회차를 찍을 수 있었던 속도 역시 한국영화 최초로 현장편집을 시도하는 등의 철저한 준비에서 나온 것이다(그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각 숏을 찍어서 현장에서 가늠해보기도 한다. 그것이 프린트의 느낌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마해라 신’은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칠성파와 신20세기파의 실제 칼부림이 벌어졌던 삼거리에서의 촬영을 계획했으나 “여전히 형님들의 세력이 강한 동네”라는 이유로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발견한 국제호텔 앞 거리는 자동차와 사람으로 아비규환. 버스노선을 3일 동안 돌려준 부산시의 지원이 없었다면 촬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걸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었다. 빌딩에 파묻힌 거리는 해뜬 직후와 해지기 직전을 제외하고는 태양광이 잘 닿지 않는 사각지대였다. 짧은 시간 동안 빌딩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지나치게 강한 것도 문제였다. “빛이 가는 부분보다는 음영이 생기는 부분이 중요하다”는 원칙을 지닌 황기석 감독은 검은 스크린으로 직사광선을 막았고, 배우들 옆으로 사이드 조명을 설치했다. 한대밖에 빌리지 못한 살수차로부터는 초침소리가 째깍째깍 들려오는 듯했다.
동수가 나이트클럽에서 나와서 숨을 거두기까지의 숨막히는 시퀀스는 그렇게 4일간의 촬영으로 빛을 본 것이다. <친구>는 은입자를 필름에 남겨두어 거친 콘트라스트를 창출하는 실버리텐션 기법으로 현상되었지만, 유독 이 장면의 정서는 시각적으로 더 강렬해 보인다. 빗방울은 거칠게 튀어 시야를 어지럽히고, 동수의 단발마를 지그시 잡아내는 카메라는 고통스럽다. 원래 이 장면은 공항에서 기다리는 상택과 중호, 묘지에서 술잔을 따르는 준석과 교차편집되도록 찍힌 것이었다. 네 친구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마지막 가능성이 산산조각나는 순간을 담으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러닝타임이 30분가량 줄어들면서 어쩔 수 없이 교차편집 장면들을 덜어내야만 했다. 황기석 감독은 아쉬움을 토로하지만, 그래도 기념비적인 장면의 가치는 훼손되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다. “모든 영화의 모든 장면이 할말은 있다”는 그가 또다시 사시미 칼의 번득임을 되새기는 이유도, 이 장면이 관객의 망막 위에 얼마나 깊은 칼자국을 남겼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1, 2. 동수와 자객이 달려오는 자동차에 부딪히고 승합차가 전복하는 장면. 스턴트는 한번에 오케이가 났다(아니, 낼 수밖에 없었다). 번잡한 거리에서 4일 동안 진행된 대규모 촬영이었으나 부산시와 제작부의 통제로 큰 문제가 없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3. 전봇대로 달려간 동수가 또 다른 자객의 칼을 맞는 장면. 실제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에 전봇대를 하나 제작해서 설치할 예정이었으나, 로케이션 장소가 국제호텔 앞 거리로 바뀌면서 저절로 해결이 되었다. 마침 쓸 만한 전봇대가 필요한 위치에 서 있었던 것이다.
4. 마이 찍었다 아이가. 고마해라. 황기석 감독은 6번째 컷에서 오케이를 불렀지만, 욕심 많은 장동건은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20번 정도 더 컷을 외친 뒤에야 촬영을 종료할 수 있었다. “나야 뭐 괴로울 게 있나. 좀더 가보겠다는 배우가 괴로운 거지.” 결과적으로는 6번째 컷이 영화에 쓰였다.
5. 황기석 감독은 어두운 톤을 원하는 장면에서는 후반작업에 기대지 않고 검은 스크린을 쳐서 현장을 어둡게 만들어 놓고 찍었다. 동일한 실버리텐션 기법이라도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서 질감의 차이는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