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조명 관련 장비
조선시대의 달빛, 헬륨풍선으로 만들었다
a. HMI 렌즈: HMI 램프 중에는 다양한 렌즈를 교체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각각의 렌즈는 모두 다른 문양을 가지고 있어서 광선의 성격을 조절한다. 어떤 렌즈를 끼우느냐에 따라, 일직선으로 집중되는 스폿에서 넓게 퍼져나가는 플러드까지 빛의 성격이 다양하게 변한다.
b. 밸러스트: HMI는 많은 전력을 일정하게 공급되도록 조정해주는 밸러스트를 통해 전원에 연결해야 한다. 과거에 비해 안정성이 많이 좋아졌다.
모든 조명기는 태양광과 비슷한 색깔의 빛을 낼 수 있는 HMI①와 백열등에 가까운 텅스텐② 계열로 나뉜다. 벌건 대낮에 조명기를 세운다는 것을 사치로 여겼던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낮에 로케이션 현장에서 HMI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HMI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85년쯤.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무거운 조명기였기에 고작 4명 정도인 조명부가 들고 다니느라 고생이 많았다. 많은 양의 전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것이 현장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된 12, 13년 전부터 로케이션 촬영시 발전차를 대동하는 것도 보편화됐다. 이전에는 민가에서 전기를 끌어오거나 전봇대에서 도선하는 것은 예사였고, 도선하다가 들켜서 혼쭐이 난 적도 있다는 것이 오랜 경력을 가진 조명감독의 고백이다. 최근엔 시간 흐름에 따라 미묘하게 변하는 태양광을 흉내낼 수 있게, 빛의 굴절을 다양하게 조절하도록 여러 종류의 렌즈를 부착하는 HMI도 사용된다. 대부분의 조명기 앞에는 빛의 밝기와 퍼짐의 정도, 미묘한 색감의 변화를 줄 수 있도록 C스탠드를 이용하여 다양한 액세서리(고보, 스크림, 실크 등)를 설치한다.
형광등처럼 생긴 조명기. 일반적으로 쓰이는 2피트와 4피트짜리를 키노플로, 줄여서 키노③라고 부른다. 7, 8년 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형광등처럼 소프트하고 분산되는 광선이 특징이어서, 인물을 비추면 그림자가 부드럽게 드리운다. 그러나 <텔미썸딩> <쎄븐>처럼 콘트라스트가 강한 스릴러영화에서도 효과적인 주조명으로 사용된 바 있는, 보기보다는 터프한(?) 조명기. 원하는 방향으로 빛을 끊기가 까다로운 탓에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제법 내공이 필요하다. 키노와 똑같이 생겨서 사이즈만 작은 조명기로 미니플로, 마이크로플로④ 등이 있다. 배우의 얼굴 클로즈업에서 눈빛을 살리는 데 많이 쓰인다. 주연배우가 아니라면 웬만해선 받을 수 없는 조명으로, 배우의 눈빛뿐 아니라 기분을 살리는 데도 꽤나 쓸모가 있다.
100W에서 650W까지 텅스텐 계열의 작은 조명기들이 한 세트를 이루는 대도라이트⑤. 작은 사이즈의 라이트 중 가장 널리 쓰이는 상표 이름이 일반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작지만 튼튼하고 광질이 샤프하며, 밝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 후면에 배치된 배경의 일부분에 포인트를 주는 식으로 밋밋해 보이기 쉬운 화면의 톤을 다양하게 만든다. 이 장비를 쓰기 시작하면서 조명부가 세밀한 조명에 욕심을 내게 됐다. 조명세팅 시간을 길어지게 한 주범 중 하나. 귀여운 외모에 용도가 다양해 조명부 스탭들이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충무로의 한 조명감독은, 이를 이용해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번개효과를 낼 수 있는 스트라이크 조명기는 7, 8년 전쯤 한국영화 현장에 도입됐다. 번개의 스피드와 강도, 빈도까지 리모컨으로 조절할 수 있다. 이전에는 방송 무대에서 사용하는 특수한 조명기나 용접기로 번개를 표현해야 했다.
낮장면이라면 HMI 조명기가 없더라도 적당한 태양광 아래서 반사판만 들고 촬영할 수 있지만, 자연광이 부재한 밤이라면 참으로 난감하다. 그나마 배경이 도시라면 어설프게 가로등 불빛을 흉내내어 텅스텐 조명기를 설치할 수 있겠지만, 시대적 배경이 19세기 이전이거나 공간적 배경이 첩첩산중이라면 웬만한 스탠드 조명기로는 자연스런 조명이 불가능하다. 은은한 달빛을 구현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공기보다 가벼운 헬륨가스를 채운 풍선 안에 대형 조명기를 탑재한 벌룬라이트다. 그러나 산이 많은 국내 지형의 특징상 어렵게 고정시킨 조명기가 움직여 풍선을 이루는 외부를 태워먹는 등 어려움도 많았다. 이런 상황을 보완하기 위해 커다란 풍선 모양의 틀을 짜서 크레인에 매달거나 높은 스탠드에 세울 수 있는 조명기(젬볼⑦)들이 제작됐다.
넉넉한 광원이 높은 곳에 있을수록 촬영은 용이해진다. 1995년 <영원한 제국> 현장에 15m까지 조명기를 올릴 수 있는 조명크레인⑧이 처음 등장했는데, 5t 트럭을 개조한 것이었다. 처마의 달그림자처럼, 고작해야 2, 3m밖에 올릴 수 없는 스탠드 조명기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표현이 가능해진 탓에 박종원 감독이 상당히 감동했다는 후문이다. 밤장면이 유난히 조야했던 한국영화가 자연스런 밤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든 주인공 중 하나. 이후 영화현장에서 크레인이 빈번하게 사용되면서, 건설현장에서 크레인 기사를 하다가 영화로 업종을 전환하는 경우도 생겼다. 밤장면에서 눈에 띄지 않도록 몸체는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고, 일반적으로 두대 정도의 조명기를 달아 리모컨으로 상하좌우를 조절할 수 있다. 지난해에는 조명의 포커스 조절까지 리모컨으로 가능하도록 업그레이드된 크레인도 선보였다. 크레인이 높아질수록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위험도는 커진다. 크레인이 쓰러지는 바람에 스탭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필요한 만큼의 광량을 가진 조명기가 없다면 직접 만들 수도 있다. <달콤한 인생>의 아이스링크 장면⑨은 1kW짜리 텅스텐 조명기 50개를 커다란 틀에 매달아서 찍었다. 박스 안에 조명기를 달고, 광질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실크를 댄 뒤, 도르래를 이용해서 천장에 매달았다. 애초 그런 규모의 조명은 불가능할 거라 믿었던 촬영감독을 감동시킨 케이스다. 어떤 위치에 카메라를 세우더라도 앵글에 걸릴 염려가 없는 최적의 조명을 세팅하기 위해 소요된 시간은 반나절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