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Enjoy TV > TV 가이드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 외, 옴니버스영화 <죽음의 영혼>
2001-07-12

가난한 영혼의 진혼곡

Histoires Extraordinaires 1968년,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 외 출연 알랭 들롱 <EBS> 7월14일(토) 밤 10시10분

에드거 앨런 포는 자신을 “가난한 영혼”의 소유자라고 불렀다. 믿을 수 있을까? SF에서 공포와 심리소설에 이르기까지 현대 대중문학에 그가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작가의 정신세계를 극히 황폐한 것으로 표현했던 포의 언급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포의 일생이 가난과 어둠, 그리고 피해의식의 연속이었음을 상기한다면 우리는 좀더 그의 작품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한 예로, 포의 아내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고양이를 늘 무릎에 올려놓고 생활했다고 한다. 포에게 문학이란 ‘고통’과 같은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죽음의 영혼>은 옴니버스영화다. 로제 바딤과 루이 말, 그리고 페데리코 펠리니 등의 감독은 포의 단편들을 각기 한편의 영화로 옮기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감독들이 자신의 취향대로 포의 원작을 선택하면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원작자의 작품을 해석한 점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로제 바딤 감독작이다. 방탕한 생활을 일삼던 프레데릭 백작부인이 한 남자를 만난 뒤 사랑에 빠진다. 사랑을 거절당한 백작부인은 마구간에 불을 지르고, 불길 속에서 남자는 목숨을 잃는다. 로제 바딤 감독은 포의 원작에서 관능과 향락주의의 기운을 캐낸다.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1956)로 에로티시즘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데 일가견이 있음을 보여준 로제 바딤 감독은 여전히 가슴이나 허리 등 여성 신체 일부분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페티시즘의 향연을 벌인다. 이 에피소드엔 당시 감독의 부인이었던 제인 폰다가 출연하고 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루이 말 감독이 만들었다. 한 오스트리아 장교가 사디즘에 몰두하는데 어떤 일을 벌일 때마다 방해꾼이 등장한다. 누굴까. 바로 자기 자신이다. 알랭 들롱이 일인이역을 연기하는 이 에피소드는 ‘도플갱어’ 모티브를 응용한다. 루이 말 감독은 상처입은 유년이라는 주제를 바탕에 깔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같은 주제는 1970년대 루이 말 감독이 <마음의 속삭임>(1971) 등의 영화에서 반복해 풀어낸 것이기도 하다. 이후 감독의 작품세계를 조금 앞서 엿볼 수 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페데리코 펠리니의 작업이다. 펠리니 영화의 주요 테마 중 하나가 ‘피폐해진 영혼’임을 기억한다면 포 원작을 영화로 옮긴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의외로 결과가 별로 신통치 않았다. 펠리니는 <죽음의 영혼>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한 바 있으며 어떤 평자는 “펠리니가 스스로 따귀를 후려친 작품”이라고 힐난한 바 있다. 그의 영화가 지나치게 상투적인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테렌스 스탬프가 연기하는 배우는 자동차 한대를 주겠다는 제작자 말을 믿고 이탈리아로 건너온다. 더이상 연기에 관심이 없어진 배우는 하루하루가 괴롭다. 펠리니 감독은 팝아트를 닮은 화려한 미장센을 선보인다. 편집도 깔끔하고 리듬감 있다. 그럼에도 에피소드는 내내 피로하고 무기력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영화 속 배우는 당시 슬럼프의 기운을 내비쳤던 펠리니 감독의 분신과도 같다. 감독은 영화인의 ‘창조적 무능력함’이라는 당시 그의 관심사를 노출하면서 자기반영적인 영화를 만들었던 셈이다. 펠리니 감독이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유년기의 아스라한 꿈을 영화로 복구한 <아마코드>(1974)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sozinh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