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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러운 미적 터치와 기괴한 우울증의 기운, <타임 마스터>

어느 행성에 홀로 남은 소년의 시간 여행. 신기한 이미지로 표현된 겹친 시간에 관한 명상.

애니메이션 <타임 마스터>(1982)는 르네 랄루의 두 번째 장편이다. 르네 랄루의 첫 번째 작품 <판타스틱 플래닛>(1973)은 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으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아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타임 마스터>는 <제5원소> <블레이드 러너> 등 쟁쟁한 SF영화들의 의상디자이너로 활약했던 뫼비우스가 그 훨씬 전에 오리지널 스케치와 각색 등으로 참여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슈테판 울의 소설 <뻬르디드의 고아>가 원작이다.

우주 말벌의 습격을 받고 아버지와 함께 피신하던 소년 삐엘의 비행기가 갑자기 불시착한다. 생명이 다한 것을 느낀 아버지는 아들 삐엘에게 무선 ‘마이크’를 넘겨주며 그것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알려주고는 비행기에 홀로 남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소년 삐엘은 이때부터 마이크를 살아 있는 친구로 여기며 낯선 식물과 동물로 가득 찬 행성에서의 모험을 시작한다. 한편, 삐엘이 친구로 생각하는 마이크의 목소리들은 그를 구조하기 위해 오는 우주선장 자파 일행의 목소리다. 자파는 행성의 환경과 지리에 밝은 늙은 항해사 실바드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그 역시 어린 시절 우주 말벌에 피해를 입었던 인물이지만, 지금은 이 별에 마음을 묻고 살아가고 있다.

지난해 한국에서 개봉했던 <판타스틱 플래닛>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타임 마스터>는 고풍스러운 미적 터치와 기괴한 우울증의 기운을 함께 갖고 있다. 우주 어느 행성에서 벌어지는 신기한 모험은 상상력이 동원된 환상적인 설정들로 이어지지만, 지구와 지구인의 현재를 반영하는 듯한 갖가지 상황과 캐릭터들 역시 등장한다. 그래서 소년 삐엘이 떠도는 뻬르디드 행성은 버려진 폐허이거나, 인식의 터를 바꾸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신세계인 것처럼 그려지면서, 지구의 오랜 과거 또는 지구의 먼 미래 같다. 독심술을 지닌 꼬마 생명체들, 개성 대신 날개를 얻은 괴물 등 창조되는 독특한 캐릭터들도 모두 우주를 돌아 지구를 반영한다. <판타스틱 플래닛>보다는 덜 독창적이지만 지금의 애니메이션 추세가 담아내지 못하는 미적 성찰은 흥미롭게 채색되어 있다. 역시 단순한 스토리 라인이 흠이지만, 동시에 그 단순성으로 인해 거대한 우주의 시간에 근접하는 후반부의 장면이 비로소 장중한 의미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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