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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타이틀] 유희의 장, 피카딜리와 물랑루즈에서 생긴 일
조성효 2005-04-08

<피카딜리> <물랑루즈>

피카딜리의 주인 발렌틴 빌모트는 떨어지는 매상을 올리기 위한 방법을 찾던 중 얼마 전 한 중국 여인 때문에 피카딜리 전체가 엉망이 될 뻔한 사건을 떠올린다. 쇼쇼의 관능적인 춤을 보느라 부엌 여인들이 접시를 제대로 씻지 않아 피카딜리가 일순간 혼란에 빠졌기 때문이다. 빌모트는 연인이자 피카딜리의 터줏대감인 마벨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쇼쇼를 무대에 올리고, 그녀의 이국적 춤은 열광적인 반응과 함께 피카딜리를 살리게 된다. 하지만 쇼쇼가 원한 것은 인기뿐만이 아니었다. 빌모트마저 차지하려 한 그녀의 탐욕은 주변 인물들의 질투를 불러일으키고 그녀는 결국 한발의 총성과 함께 쓰러지고 만다.

<브로드웨이 멜로디>로 본격적인 유성영화 시대가 도래하는 1929년, <물랑루즈>(1928)로 흥행에 성공한 E. A. 듀퐁은 피카딜리를 배경으로 무성영화 시절의 마지막 걸작 중 한편을 만들었다. 현란한 촬영과 인상적인 조명 등 동시대 독일 표현주의 방식을 고스란히 담은 영화는 왜 듀퐁을 종종 무르나우나 프리츠 랑과 비교하는지 가늠하게끔 한다. 팜므파탈의 쇼쇼 역에는 <상하이 특급>에서 디트리히와 맞대결을 펼치는 등 할리우드가 인정한 첫 번째 중국계 배우 안나 메이 웡이 맡았는데, 마벨 역의 질다 그레이를 제치고 <피카딜리>를 자신의 영화로 각인시켰다. 영국판에 이어 마일스톤에서 발매한 미국판에는 개봉 직후 유성으로 제작된 5분 분량의 인트로가 수록되었고 안나 메이 웡에 대한 영화제 패널들의 대담을 영상으로 담는 등 고전에 예우를 다하고 있다.

엇나간 사랑과 그로 인한 죽음은 술과 춤 그리고 여자가 있었던 피카딜리와 물랭루주 주변에서 좀더 빈번하게 출현했는가보다. 바즈 루어만의 <물랑루즈>(2001)와 존 휴스턴의 <물랑루즈>(1952) 두 작품은 모두 아카데미에서 미술상과 의상상을 가져갔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매상을 올리기 위해 물랑루즈의 주인 지들러가 선택한 것은 댄서가 아니라 로트레크의 포스터였다. 존 휴스턴은 바즈 루어만이 안주로만 사용한 난쟁이 화가 로트레크을 메인 디시로 내놓았고 그의 화려한 그림들과 삐뚤어진 사랑을 중첩시켜 보여준다. 시네마스코프 시대가 도래하기 전 제작된 <물랑루즈>(1952)는 로트렉의 캔버스와 함께 4:3의 화면에서 좀더 잘 어울린다. 워너와는 달리 고전에 대한 만족스런 예우를 보여주지 않는 MGM에서 발매한 DVD는 부록으로 예고편을 담고 있다. 저작권이 불분명한 국내판 <물랑루즈>(1952)는 화질이 조악하므로 정신건강상 사지 않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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