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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서울여성영화제 가이드 [3] - 다큐멘터리 추천작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끔찍한 현실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

Searching for Debra Winger·로잔나 아퀘트·미국·2002년·97분·새로운 물결

여배우 로잔나 아퀘트가 만든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20대 전성기에 할리우드에서 모습을 감춰버린 여배우 데브라 윙거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아퀘트는 한적한 교외에서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고 있는 데브라 윙거를 만나, 한창때 은퇴를 결심한 배경에 귀기울인다. 동시에 이 다큐멘터리는 ‘여배우’라는 이름으로 스크린 속에서 살아가는 이미지들을 하나하나 육체로 끌어내리는 작업이다. 기네스 팰트로, 다이앤 레인, 샤론 스톤, 홀리 헌터, 멕 라이언, 샬롯 램플링, 제인 폰다, 우피 골드버그, 샐마 헤이엑 등 할리우드의 현역 고급 인사들은 동료 여배우의 카메라 앞에서 여배우로 살아간다는 것, 여배우로서 40대를 맞이한다는 것, 엄마가 된다는 것의 무게와 고민을 토로한다. 아퀘트는 이 육성들이 <데브라 윙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개별 인터뷰 클립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구성은 다소 평이하다.

베일 속의 작가 도미니크 오리

Writer of O·폴라 라파포트·프랑스, 미국·2004년·80분·뉴 커런츠

전후 해외에서 가장 많이 팔린 프랑스 소설로 기록된 에로티카 <O의 이야기>의 작가는 40년간 정체불명이었다. 사람들은 남성의 섹스 판타지에 철저히 자신을 내맡기는 O의 이야기를 여성이 썼을 리 없다고 주장했다. 1994년 <뉴요커>에서 베일을 벗은 작가는 갈리마르 출판사의 편집인이자 문필가였던 도미니크 오리였다. <O의 이야기>는 그녀가 레지스탕스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고 <누벨 레뷰 프랑세즈>와 갈리마르에서 함께 일한 장 폴랑, 단 한 남자에게 읽히기 위해 씌어진 열정적인 러브레터였다. 젊은 여성에게 둘러싸인 바람둥이 연인을 보며 “나는 이미 젊지도 예쁘지도 않다”고 생각한 그녀는 평생 처음 주저없이 쓰기 시작했고 그것이 <O의 이야기>였다. 과연 O는 노예였을까? 아니면 자아를 무로 되돌려 해방에 다다르기 위해 남자들을 이용한 것일까? 사랑한 남자를 먼저 떠나보낸 아흔살의 아름다운 여인의 미소 위로 내레이션이 들린다. “표범이 무늬를 바꿀 수 없듯 나도 내 모순을 바꿀 수 없다. 그러니 그냥 나를 사라지게 두라.” <O의 이야기>의 내용과 작가의 젊은 날을 재연한 장면이 인터뷰와 자료 화면 사이에 삽화처럼 들어 있다.

꿈꾸는 카메라: 사창가에서 태어나

Born into Brothels: Calcutta’s Red Light Kids·자나 브리스키, 로스 카우프만·미국·2003년·85분·새로운 물결

배경이 되는 곳은 인도의 캘커타, 그중에서도 사창가다. 감독 자나 브리스키와 로스 카우프만은 그곳의 어떤 사회적 폐단을 짚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또, 기록의 초점이 되는 인물들 역시 그곳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창녀들이 아니다. 오히려 거기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아이들이다. 험하고 더러운 착취의 현장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야만 하는 아이들.

사진작가이기도 한 자나 브리스키는 이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쥐어주고 자유롭게 무언가를 찍도록 독려한다. 아이들의 사진 찍기는 점차 호기심의 차원을 벗어나 어떤 삶의 의미들에 근접해간다. 그중에는 손쉽게 찍기 힘든 창의적 작품들도 나오게 된다. 아이들이 찍는 사진 속에는 사창가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기지만, 그것을 찍는 아이들의 행위는 삶을 개척하려는 자기계발의 일종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자나 브리스키는 아이들과 함께 몇년을 보내며 그들의 희망과 꿈이 담긴 카메라의 의식이 사창가를 벗어나 다른 어떤 곳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조력한다. 그런 점에서 <꿈꾸는 카메라: 사창가에서 태어나>는 사창가를 배경으로 한 대안교육장의 일지이기도 하다. 실제로 아이들 중 몇몇은 더 나은 자신의 삶을 꿈꿀 수 있는 권리와 희망을 갖게 된다.

끔찍하게 정상적인

Awful Normal·셀레스타 데이비스·미국·2004년·76분·여성영상공동체

10살도 안 된 두 자매가 한가족처럼 가깝게 지내던 아저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한다. 지극히 평범한 그들의 부모는 소녀들에게 말했다.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정상적으로 대하렴.”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그 사건 이후,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도록 달라졌음을. 그로부터 25년 뒤. 부모에게조차 보호받지 못했던 두 자매, 딸들이 얼마나 끔찍한 지옥을 품고 살았는지 알지 못했던 무지한 엄마는 치유를 위한 여정을 떠난다.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고 살아왔던 당시의 범인을 만나러 가는 그 길. 두려움에 눈물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애써 나쁜 기억을 떨치려 용기를 내보지만, 결국 그들은 부둥켜안고 엉엉 울어버린다. 오랜 세월로 머리가 벗겨진 평범한 배불뚝이 노인네의 모습으로 이들을 맞이한 범인 역시 눈시울을 붉히지만, 쉽게 그의 말을 믿지도, 용서하지도 못하고 힘들어하는 자매의 모습은 그저 인간적이다. 사회학을 전공했던 작가 겸 감독 셀레스타 데이비스는 자신의 첫 연출작인 자전적 다큐멘터리를 이렇게 끝맺는다. “고통받고 침묵하는 숱한 이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인물들의 심리와 대화의 맥락을 정확히 파악한 카메라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명예살인

Against My Will·아이페르 에르귄·네덜란드·2002년·52분·새로운 물결

파키스탄 여성들이 처한 부당한 현실을 담은 네덜란드 감독의 다큐멘터리. ‘명예살인’은 결혼한 여성이 가문의 명예를 훼손시켰을 경우 그 집안에서 당사자 여성에게 행할 수 있는 처벌 관습이다. 바람을 피운 중죄로부터 이유 불문의 가출, 불임, 이혼 등이 명예살인을 행할 이유가 되지만, 그 정도로 가문에 ‘먹칠’을 한 여성들은 대부분 집안 어른들에 의해 일찍 강제결혼당하고 남편의 폭력을 견뎌야 했던 이들이다. <명예살인>은 그들의 신변을 보호하고 법적 자문을 제공하고자 1990년 설립된 다스타크 구조센터 안의 한 여성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큐브라는 가족들의 회유로 집에 돌아간 뒤 3주 만에 살해됐다. 바람을 피웠다고 왜곡 보도하는 신문, 죽어 마땅한 죄목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큐브라의 남자 사촌들, 멀리 떨어져 살았으므로 딸의 결혼생활을 자세히 몰랐다는 아버지. 명예살인은, 피를 나눈 부모형제조차 힘쓰지 않고 힘쓸 수 없다며 외면해버리는 잔인한 현실이다. 영화는 큐브라의 죽음을 계기로 열린 파키스탄 인권위원회 주최 기자회견 장면을 통해 고발의 목소리를 높인다. “이는 명백히 고의적이고 계획된 살인이다. 큐브라의 잘못이라면, 잔인한 결혼생활을 벗어나 스스로 자기 삶의 주체자가 되고 싶었다는 것뿐이다.”

밤의 요정들의 이야기

Tales of the Night Fairies·쇼히니 고쉬·인도·2002년·72분·여성영상공동체

성노예가 아닌 성노동자들과의 인터뷰가 주를 이루는 이 영화에는 모자이크 음성변조도, 실루엣만을 드러내는 어둑한 조명도 없다. 그들은 탁 트인 야외에서 밝은 햇살을 조명삼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995년 성노동자들의 노동조합 DMSC가 생긴 이후 이들은 길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잡혀간 동료를 석방하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게 됐고,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고객을 거부할 수 있게 됐고, 창녀라는 이유로 강간을 당해도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었던 어두운 과거를 반복하지 않아도 됐다. 대를 이어 성노동을 직업으로 삼고 그 돈으로 가족들을 부양하는 그들은, 다양한 얼굴로 다가오는 캘커타의 뒷골목을 씩씩하게 누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이용해서 고객들에게 행복을 제공하고 있다”며 스스로 당당한 이들을 향해 “성노동은 불법”이라거나, “여성의 육체를 착취하는 일”이라는 명제를 들이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비단 성매매특별법 시행으로 인한 민감한 의견 대립 때문이 아니라도, 쉽게 미뤄둘 수 없는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밤의 요정들의 이야기>는 이들이 자신들의 처지와 권익을 알리기 위해 올린 연극 제목 중 하나다.

베일 속의 성매매

Prostitution Behind the Veil·나히드 페르손·덴마크·2004년·59분·여성영상공동체

1982년 스웨덴으로 망명한 이란 여성감독이 고국에 돌아와 만든 다큐멘터리. 혁명 뒤 정권을 장악한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이 코란의 일부를 법에 반영하면서 사회는 빈민층과 여성에게 더욱 엄격하고 가혹해졌다. 그 현실의 한가운데로 내몰린 미나와 파리바는, 범죄행위로 투옥된 남편들을 대신해 아이들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젊은 엄마들이다.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시게’라는 이슬람의 혼인법을 이용한 매춘. 양자 합의하에 10분에서 99년까지 결혼 기간을 선택할 수 있고, 이란 여성이라면 9살부터 시게에 따른 혼인이 가능하다. 감독의 카메라는, 보모를 구할 능력이 없어 아이를 안고 길거리에 나선 미나와 파리바가 매춘 상대자의 차에 올라탈 때 그녀들과 동석까지도 감행한다. 극영화로 착각될 만큼 정서적 몰입을 빚어내는 편집이 인상적.

결혼선고

Sentenced to Marriage·아낫 주리아·이스라엘·65분·2004년·뉴 커런츠

여자는 돈, 섹스, 계율에 의해 팔리고 오로지 남편의 죽음과 이혼으로만 자신을 되살 수 있다는 고대 법전의 규정은 현대 이스라엘에서도 잔존한다. 이스라엘은 1953년 이혼의 문제를 라비의 법정이 관할하도록 했고 이는 많은 여성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다. 타마라의 남편은 결혼축의금으로 먹고살다 처가의 돈을 뜯어내더니 아내에게 돈으로 이혼을 살 것을 강요한다. 라디오 PD인 미켈레의 남편도 네 아이의 부양을 떠맡기고 결혼의 구속을 풀지 않는다. 3년 전 라헬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 아이를 낳은 남편은 도리어 그녀가 다른 남자와 만났다며 행동의 자유를 박탈하는 명령까지 신청한다. 변호사들은 시스템과 투쟁하고 싶지만 오랫동안 동결된 삶에 갇혀 있는 당사자들은 우선 탈출을 원한다. 다큐멘터리의 카메라는 법정까지 들어가지 못하지만, 사악한 재판을 향한 분노는 그들의 목소리만으로도 불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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