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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파 남자조연 5인 [5] - 오달수
사진 오계옥이종도 2005-04-06

이상한 나라에서 온 사나이, 오달수

비발디의 <사계>의 격렬한 폭풍 같은 악장과 맞물려 최민식이 오달수의 이를 장도리로 뽑는 액션은 배우 오달수를 세상에 알리는 서곡과 같았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10년 저편 세월부터 유달리 크고 길며(그래서 카메라로 잡아내는 데 조금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듯한) 표현력이 뛰어난, 그리고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얼굴을 연극 무대에서부터 떠올린다. 연극쪽의 출세작인 <남자충동>의 건달로, <인류최초의 키스>의 죄수로, <흉가에 볕들어라>의 실성한 사람으로 그는 진작부터 관객에게 말을 걸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달콤한 인생>에서 무기 밀매상으로 나온 그의 모습은 앞서 나열한 이 모든 명장면을 무색하게 하며 당분간 배우 오달수를 떠오르게 하는 키워드 노릇을 하게 될 것 같다. 바람 부는 휑한 공터에서 그가 얼굴을 들이밀 때부터 전조가 이상하다. 이병헌과 무기 거래를 하기 위해 차창을 여는 순간부터 다리를 오므리고 기괴하게 앉아 있는 그의 마지막 장면까지의 압도적인 감흥을 오달수 말고 달리 누가 안겨줄 수 있을까. 게다가 그의 주된 대사는 러시아어다. ‘돌보욥’이라는 ‘러시아에서 제일 심한 욕’이라는 그 야릇한 욕설이 섞여 이 장면은 더욱 인상 깊은 것이 된다.

그는 얼마 전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를 찍었다고 했다. 대머리 빵집 주인으로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벌써 궁금해지지 않은가. 박찬욱과 김지운은 이 묘한 사내에게서 무언가를 훔쳐내 관객에게 선사한다. 사실 이 재미있는 사내에게서 정체불명의 페이소스 섞인 웃음을 훔쳐내고 싶은 이들이 감독들뿐이겠는가. 사진 촬영을 위해 별뜻없이 이루어지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주변 사람들의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 웃음의 발굴작업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마파도>와 <주먹이 운다>에서 그는 예전의 익숙한 건달 노릇을 보여줬지만 그건 잔상에 오래 남질 않는다. 한 연극 극단의 대표이자, 올해 상반기 화제작마다 빼놓지 않고 얼굴을 내미는 대표 조연배우의 속내를 들어보았다. <주먹이 운다> 회식 자리에서 설경구와 서로 ‘필이 꽂혀’ 새벽 5시까지 마셨다는 그에게, 좀 걷자고 했다. 대나무 숲 사이를 거닐며 담배도 피우고 농담도 하면서, 강바람에 지친 머리도 헹궈내자고. 말투는 그의 억양을 되도록 살리려 애썼다.

<달콤한 인생>

<올드보이>

나, 이렇게 알려졌다

박찬욱의 <올드보이>를 뺄 수 없지. <여섯개의 시선> 때 처음 만났거든. 그때까지 잘 몰랐어, 박찬욱 감독이 누군지. 그 작품 찍고 돌아왔는데 스탭 한명이, 박 감독이 잘 웃지 않는 사람인데 내 장면 보더니 웃더라고 이야기하더라구. 그리고 <올드보이>는 나를 생각하고 썼다고 하더라구. 그게 반향 일으켰고. 그분이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난 그런 믿음이 있어. <올드보이> 없으면 나도 없는 거지. 그리고 <달콤한 인생>의 무기 밀매장면은 이병헌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거잖아. 김지운 감독이 마지막 총격전과 더불어 가장 아끼는 신이래. 그래서 기분 좋아. 그 러시아어는 정확한 러시아어지. 러시아에서 연극 공부한 이상구라는 양반과 일주일에 두번씩 만나서 발음이랑 뜻이랑 공부했지. <주먹이 운다>는 어떤 선배가 그러더라. 아직 힘을 빼지 못했다고. 내가 봐도 좀 딱딱하구나 싶어.

나, 이렇게 살아왔다

부산이 고향이야. 연극은 학교 다니면서도 별 관심없었어. 재수 시절 인쇄소 아르바이트를 했어. 이윤택의 가마골 소극장에 팸플릿 배달 갔다가 연극을 봤는데 정말 신기하더라. 라이브에 놀란 거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청소도 하고 포스터도 붙이고. 변소청소 하나는 확실히 했다. 자연스레 생활이 되면서 몸에 익으니 다른 일을 못하겠더라고. 동의대 공업디자인과엘 들어갔는데도 갈 길은 연극이니 의미가 없어 중퇴했지. 아버진 날 쳐다도 안 봤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는데 연극인을 미친놈이라고 생각했지. 일부러 극장을 피해 출퇴근을 할 정도였어. 나중에 기사 스크랩한 걸 보여주시는데 그때 처음 날 배우로 인정한 거지. 부산에서 활동하다가 조광화의 <남자충동> 건달 역을 맡으며 알려졌지. 쇼킹한 연극이었어.

나, 이렇게 울고 웃었다

와이프가 직장 다니고 나는 땡전 한푼 못 벌 땐데, 와이프가 일반인처럼 집안일만 하고 싶다고 하더라. 내게 큰 상처였지. 고생 많이 했어. 뒷바라지 다 하고. 사실 그런 거 인식 잘 못하지. 워낙 배우들이 유랑기가 있어서. 몰라, 지금 생각해도 옛날 일은 바보스러워. 그래도 20대를 고스란히 연극에 바쳤다는 게 자부심이지. 남이 나를 보고 즐거워할 때,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게 뿌듯하지.

나, 이런 모습도 있다

배우는 항상 유리가면을 쓰고 있는데 그게 깨지는 순간 내가 왜 이러고 있을까 싶은 거지. 남 앞에서 울고 웃는 게 항상 좋은 건 아냐. 유리가면 깨지는 순간 죽고 싶고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지. 신기루만화경이라는 극단 대표이기도 한데 여기는 철저한 동인제야. 내가 대표라고 달리 관여하는 건 없어. 밥 사주고 술 사주고 경조사비 내는 정도지. 서로 좋아서 모인 사람들이니까 자율이 우선이야. 창작극 위주로 하고 번역극은 해본 일이 없어. <흉가에 볕들어라>를 쓴 이해제가 상임연출 및 극작가지. 내 의형제인데 10년지기야. 극단도 같이 만들었고 연습실도 같이 뚝딱거리며 바닥도 깔았지. 영화 때문에 연극 출연이 어려울 때? 그때는 술을 많이 사주지. 해제도 내가 잘되길 바라지, 왜 작업 같이 안 하느냐 삐치진 않아. 연극 하면 어렵지. (3년 전 작품을 올렸을 때인데) 히딩크가 제일 미웠어. 거리에 아무도 없는 거야.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됐지? 뭔 도시가 이래? 했다니까. 모두들 마로니에 공원에 모여 축구를 보더라. 몇 천만원 까먹었지.

아버지가 설날에 들려준 “말을 더듬어라”는 덕담이 있는데 한번 더 생각하란 거지. 그게 좌우명이었는데 요즘 내가 하나 새로 써붙였어. 만끽하며 살지 말자는 거야. 만끽해버리면 <주먹이 운다>에 나오는 그 건달처럼 될 것 같아. 절제하자는 거지. 술을 잘 절제 못하는데 이제 배우는 단계라서 그래. 초보지 초보…. 이성복의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라는 게 있잖아요. 앞으로 쉬지 않고 계속 굴러야죠.

Filmography

<해적, 디스코왕 되다>(2002)

<여섯개의 시선>(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2003)

<올드보이>(2003)

<마지막 늑대>(2004)

<효자동 이발사>(2004)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

<마파도>(2005)

<달콤한 인생>(2005)

<주먹이 운다>(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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