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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맛과 디테일 살아 있는 코미디 <마파도>

웃자, 웃자, 그래, 그렇게

<마파도>는 웃자고 만든 영화다. 웃자고 만들었으니 잘 웃기는 건 미덕이다. <마파도>는 잘 웃겨준다. 디테일의 힘이다. 얼개는 허술하지만, 디테일은 촘촘하다. 특히 말맛의 미덕은 달인의 경지다. 더구나 포스터와 다른 내용은 기쁨을 두배로 만든다. 저승사자 같은 할머니들이 낫, 곡괭이를 들고 노려보고, 두명의 남자가 ‘어매 기죽어’ 하는 표정으로 쪼그라져 있는 포스터를 보고 누가 ‘착한 코미디’ 영화를 연상하겠는가? 그저 좀 웃기기도 하는 호러영화인 줄 알았다(나중에 물어보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오해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니 ‘이문식표’ 본격 코미디물이었다. 시사회에서 뜻밖의 웃음을 선사받은 친구 일동은 틀림없이 대박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마파도>는 기승전결이 ‘매우’ 확실하다. 도망치는 ‘기’, 웃기는 ‘승’, 쫓고 쫓기는 ‘전’, 화해하는 ‘결’이다. 기승전결은 개연성 없는 우연과 우연으로 연결된다. 우연히 발견한 테이프가 추적의 단서가 되고, 쫓는 자가 떠나려는 날 쫓기는 자가 도착하고, 갑작스런 변심이 화해를 부른다. 형식도 기승전결마다 다르다. ‘기’에서 호러풍으로 살짝 가는가 하면 ‘승’에서 코미디로 확 가버리고, ‘전’에서 추적극으로 치닫는가 하면 ‘결’에서 화해의 드라마로 봉합해버린다. 다행히 디테일의 묘미가 구성의 허술함을 구원한다. <마파도>는 상투적인 것들의 재치있는 조합이 어떤 미덕을 만드는지 보여준다. 비록 장인정신은 없지만 기술자의 잔재주는 넘쳐난다. 영화를 두번 봤는데, 첫 번째는 웃느라 정신없었지만 두 번째는 허술함이 눈에 거슬렸다. <마파도>는 두번 보지 않는 한 추천할 만한 영화다.

흥행을 위한 종합선물세트

‘복권을 갖고 튀어라’로 시작한 <마파도>는 모범건달 재철(이정진)과 비리형사 충수(이문식)를 서둘러 마파도로 보내버린다. 섬에 도착하면서 <마파도>는 추적 드라마를 까맣게 잊고, 농촌 코미디로 돌변한다. 첫발을 내딛는 순간 사람이 사는지 의심스러운 순진무구한 공간, 마파도는 ‘할매 5자매’가 도회지 ‘아그들’을 맞이하면서 “오지게 빡센 섬”으로 변한다. <마파도> 주민의 인적 구성은 농어촌의 전형성을 담고 있다. 남자들은 일찌감치 급사했고, 젊은 것들은 서둘러 도회지로 빠져나갔다. 비록 ‘할매 5자매’만 살지만, ‘전원일기’에서 있어야 할 것은 다 있고, 없을 건 없다. 농어촌 지도자 회장댁(여운계)이 마을 대소사를 주관하시고, 욕쟁이 할머니 진안댁(김수미)이 신기(紳氣)로 마을을 지키시고, 조강지처 여수댁(김을동)이 첩으로 들어온 제주댁(길혜연)을 수십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구박하시고, 섬 밖으로 도망갔다가 여의치 않아 ‘귀농’하신 마산댁(김형자)이 색기를 흘리고 다니신다. 인자하신 회장님부터 돌아온 ‘탕녀’까지, 완벽한 구성의 ‘할매 5자매’다. 이제 <마파도>는 당신의 감수성이 농어촌과 멀어진 만큼 웃기는 영화가 된다. 할매들의 원시성과 도회지 총각의 좌충우돌이 웃음을 만드는 기본 구도이기 때문이다. <마파도>는 흥행을 위한 종합선물세트다. 농어촌 향수와 서글픈 가족, 어설픈 조폭과 뻔뻔한 경찰, 한국영화의 흥행코드는 웬만큼 모았다. 자, 이제 관객이 선물세트를 즐기시면 된다.

외로운 ‘할매 5자매’가 오랜만에 보는 튼실한 ‘아그 둘’을 예뻐하지 않을 리 만무하다. 웬 떡이냐 싶은 아그들의 엉덩이도 두들겨주고 싶지만 일손도 놀리고 싶지 않다. 할매들은 말로는 “귀엽다”면서 행동으로는 “빡시게” 굴려먹는다. 예쁜 건 예쁜 거고, 내 몸이 고달프기도 싫다. 그것은 인지상정이다. 일손 하나가 아쉬운데 제 자식이라도 놀리기는 힘든 법 아닌가? 그것이 <마파도>의 리얼리티고, 공감을 끌어내는 힘이다. 할매들은 아침 댓바람부터 아예 평상에 진을 치고 총각들을 기다린다. 부려먹고, 놀려먹으려고. 남해의 외딴섬 마파도, 그 너른 자연의 품에 안기면서 비리경찰도, 모범건달도 “아그들”로 돌아간다. 싫지만 피할 도리가 없고, 피하지 못하니까 동화된다. 그들은 이름만 “아그들”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하는 짓도 아그들 같아진다. 물장구 치면서 놀고, 낚시질한답시고 티격태격한다. 영화는 깡패에게 ‘가오’를 벗기고 몸뻬를 입히면서 농촌 총각이 되어간다고 말한다. 경찰 조폭 합동수사팀은 자의 반 타의 반 점점 본분에서 벗어난다. 본말이 전도돼 추적 단서를 찾아내는 것은 뒷전이고 할매들을 피해다니기 급급하다. 영화는 본론에서 벗어나 점점 ‘사이드 웨이’로 빠진다.

무대가 바뀌면서 비리경찰과 모범건달의 권력도 역전된다. 도시가 잔머리의 사회라면, 농어촌은 몸뚱어리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찰과 건달의 신분은 도망자를 찾기 위해 삭제된 상태다. 비리경찰은 뺀질이가 되고, 모범건달은 건실한 일꾼이 된다. 비리경찰은 요리조리 일을 피할 궁리만 하다가 “벌에 쏘여, 대갈통 깨져, 똥창에 불나”는 신세가 되고 만다. 뺀질이에게는 갈구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게으른 경찰은 저승사자 같은 진안댁에게 오지게 갈굼을 당한다. 진안댁 김수미와 뺀질이 이문식의 대립은 갈구는 선임병과 갈굼당하는 후임병 구도의 코믹한 변주처럼 보인다. 두 배우의 능수능란한 코믹연기는 기승전결의 핵심, ‘승’을 이끌어가는 힘이 된다. 갈굼당하는 경찰과 예쁨받는 깡패의 대립은 할매들에게 그들의 신분을 밝힐 때까지 유지된다.

오지게 빡시게 웃기는 영화

닳고닳은 구도지만, 늙은 아마조나스의 섬에서 할매들은 자연이다. 일기예보를 듣지 않아도 비가 언제 올지 안다. 할매들의 자연성은 성희롱을 희화화하고, 농기구를 무기화한다. 할매들이 총각들의 실한 엉덩이를 두드리고, 육봉까지 슬쩍 훔쳐보는 것이 깜찍한 개그가 되고, 할매들의 손에 쥔 낫이 순간 흉기처럼 보이는 것도, 원시성 덕택이다. 자연 같은 할매들의 품은 대마초마저도 자연의 일부로 느끼게 한다.

대마파티 장면은 나른하고 흥겹다. 영화는 “삼베 만들고 기름 자고 담배 말아 피우고, 버릴 것이 없다”고 대마 흡연을 고무하고 대마초를 찬양한다. <마파도>는 할매들의 ‘명언’으로 남는다. 툭툭 던지는 몇개의 대사가 뒤통수를 치고 웃음을 터뜨린다. 김수미가 연기하는 ‘진안댁’의 대사가 특히 그렇다. 할매 5자매가 고스톱을 치다가 돈을 잃은 진안댁이 여수댁에게 10원을 덜 주자 느닷없이 마산댁에게 소리를 지르며 끼어든다. “꼭 10원씩 안 주더라!” 아주 평범한 단어로 구성된 진안댁의 절규에는 익숙한 순간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깊이가 있다. 왜 그런 때 있지 않은가? 가까운 사이일수록 작은 불만이 자꾸 쌓여서 뜬금없이 폭발하는 때 말이다. 살다보면 내 옆의 친구에게 한 짓인데 괜히 옛날에 내가 당한 같은 경우가 생각나서 맥락없이 ‘욱’하게 되는 ‘시추에이션’. 점잖은 회장댁도 비리경찰의 접근에 당황한 진안댁이 멍구를 찾자 “개 없어 이 동네”라는 촌철살인의 유머를 날린다. <마파도>에는 이런 디테일의 승리가 곳곳에 숨어 있다. 영화는 엔딩 자막이 오르기 전, 허허실실 코미디를 선사한다. 우연과 우연의 연쇄고리가 어떤 포복절도할 ‘시추에이션’을 만들어내는지를 한방에 보여준다. <마파도>는 웃자고 만든 영화다. “오지게 빡시게” 웃기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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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