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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보고] 미국 개봉한 <올드보이>, 혹평과 호평의 격전 벌어져
옥혜령(LA 통신원) 2005-04-06

타란티노의 아류인가 현세의 셰익스피어인가

<올드보이>

미국에서 개봉한다는 이유만으로 지난 한해 인구에 회자되었던 <올드보이>를 다시 불러낸다는 것이 새삼스럽기는 하다. 다만, 외지인들의 반응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그 속에 숨은 비평의 논리가 흥미로워서라면 한번만 더 곱씹어보자. 지난 3월25일, LA와 뉴욕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예상했던 대로 칸영화제에서의 비평 논쟁을 재연하고 있다.

각 언론 매체들은 이른바 예술영화와 컬트영화, 작품성과 대중성, 내용과 스타일의 양분법에 입각한 자신들의 오랜 소신을 바탕으로 <올드보이>의 위치를 규정하느라 바쁘다. 예를 들면, “산낙지를 먹고, 망치로 사람 머리를 부수는 사내와 ‘아트’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라는 <뉴욕타임스>의 비평문 서두는 일찌감치 폭력 묘사, 선정적인 내용, 현란한 스타일로 가득한, 이라는 문구가 이어질 것임을 예상케 한다. 데이비드 린치식의 스타일지향주의적 B급영화가 일부 시네필의 지지를 받는 것조차 현 영화계의 망조라는 평은, <올드보이>가 타란티노의 후광을 등에 업은 모조품이라는 <LA위클리>의 리뷰에서 절정을 이룬다.

실상 <올드보이>의 미국 진출은 현실적으로 ‘타란티노’ 세계로의 진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란티노로 대변되는 스타일, 타란티노로 대변되는 아시안 컬트 영화팬층 혹은 그 비판가들로 구성된 취향의 전쟁장. 평소 아시아영화를 지지해온 비판적 언론, <LA위클리>가 ‘타란티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올드보이>가 보인 타란티노에 대한 충성(?)을 운운하는 것은 취향에 가려 작품을 보지 못한 케이스이나, 역으로 <올드보이>가 요란스레 미국시장에 발을 디뎠음을 증명한다. <올드보이>의 반대편에 ‘좋은 한국영화’로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언급하는 것은 너무나 도식적이라 김이 빠지지만.

이에 비해 폭력과 섹스의 묘사가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치밀하게 짜여진 영화논리의 결과물이므로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는 <시카고 선 타임스>의 로저 에버트의 평이나 “비극의 고전적인 서사구조가 당대 대중영화의 셰익스피어”라고 할 만하다고 한 <빌리지 보이스>의 평은 <올드보이>에게서 타란티노의 명찰을 떼어내고 형식적으로 비평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눈에 띈다. 요컨대 <올드보이>를 통해 한국 뉴웨이브 시네마의 특징을 ‘길들여지지 않은 감상주의, 스타일주의’로 요약하려는 노력도 결국, 작가주의 영화와 할리우드식 상업주의 영화의 이분법에 끼워맞출 수 없는 한국 대중영화에 대한 이들의 고심을 반영하는 듯하다. 충격이 반복되다보면 갖가지 명찰을 떼고 이름을 불러줄 날이 올지도.

미국 평론가들의 다양한 시각

“조합의 대가 박찬욱은 근사해 보이는 펄프픽션을 만든다. 그의 독창적이지 못한 비주얼 스타일은 히치콕, 큐브릭, 브뉘엘 같은 거장과 데이비드 핀처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올드보이>는 보기에는 흥미로운 영화로, 잘 고안된 폭력 이외의 것은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각본은 그중 가장 떨어지는데, 고등학교 시절의 회상이나 십대 매춘부의 등장으로 보건대 박찬욱은 타깃 관객의 청소년적 심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올드보이>는 장르영화로서는 괜찮고, 박찬욱은 그 방면의 대가다. 그래서 뭐가 특별하다는 건가? 지금 할리우드에서 쏟아져 나오는 ‘상품’처럼 <올드보이>도 A급영화인 척하는 B급영화다… (중략)… <올드보이>가 일부 시네필들에게 환영받는 것은 파산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징후다.” - 마놀라 다지스 <뉴욕타임스>

“이 정도 수위의 성과 폭력이 있는 영화는 보수적인 미국 땅에선 더이상 만들어지기 힘들다. 좋은 영화냐 나쁜 영화냐를 가르는 건 표현이 아니라 하고자 하는 이야기다. <올드보이>는 묘사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서 발가벗겨지는 인간의 심리와 감정의 깊이 때문에 매우 파워풀한 영화로 받아들여진다.… (중략)… <올드보이>는 감정의 극한까지 밀고 가지만, 거기엔 이유가 있다. 우리는 흥미를 위해 존재하는 스릴러들에 너무 익숙해 있기 때문에 이처럼 액션이 (심지어 폭력이) 이야기를 하고 이유를 품은 영화를 만나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다.” - 로저 에버트 <시카고 선 타임스>

“박찬욱의 영화는 무척 잔혹해서, 펄프 팬과 일반 관객을 가르는 기준이 될 테지만, 감정적으로 서사극의 스케일을 지닌 이야기이기 때문에 현대영화의 지형도에서 셰익스피어와도 같은 영역을 차지한다(사실 고전 그리스 드라마, 존 웹스터, 토드 브라우닝의 무성영화 등이 더해진 결과로 보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중략… 과잉과 과오가 무엇이든 간에(개인적으로는 컴퓨터 기교를 과용했다고 생각한다) <올드보이>는 끝까지 가는 대담함과 고전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돋보인다.” - 마이클 앳킨슨 <빌리지 보이스>

“비잔티움 양식과도 같은 내러티브에 짓무른 원한이 일그러지는 <올드보이>는 나쁜 일들이 연달아 터지면서 아드레날린을 내뿜는 듯 진행된다. 사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이고,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폭력적이면서도 코믹하게 부조리한 박찬욱의 네 번째 영화는 악몽과도 같은 이미지의 분출을 보여준다… 중략… <올드보이>처럼 기이하고 환상적인 영화를 보고 나서, 진실한 무언가를 경험한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이다.” - 카리나 초카노 <LA타임스>

“화려하고 충격적인 사이코드라마인 <올드보이>의 생기와 흥미는 거부하기 힘들고, 꽤 인상적이다. 내가 이 영화를 끌어안지 못한 것은 박찬욱이 그의 재능을 뒤틀린 하드보일드 스토리에 쏟아넣었기 때문이다. 반응은 아마도 제각각일 것이다… 중략… 혀가 잘리고 근친상간이 행해지는 이런 으스스한 판타지에 감동한 이는 스스로 박찬욱 팬임을 자처한 쿠엔틴 타란티노다. <올드보이>는 칸에서 호오가 크게 엇갈렸다.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나.” - 리사 슈워츠봄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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