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세계영화사>에 뒤이어 국내에 소개되는 <세계영화연구>는 아직 책을 펼쳐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킬 법도 하다. 따라서, 우선은 이것이 이른바 ‘월드 시네마’를 다루기는 하지만 그것의 현황과 역사에 대한 것만은 아님을 밝혀야 할 것 같다. 그보다는, 원제가 <옥스퍼드 영화연구 입문>인 <세계영화연구>는 영화연구에로 들어갈 수 있는 다양한 통로들과 시각들을 제공해주는 책이다. 그래서 여기에는 영화 텍스트 분석, 영화이론, 할리우드영화, 영화사 등의 다양한 영역들에 걸친 80여개의 항목들이 리처드 다이어, 더들리 앤드루, 톰 거닝 같은 권위있는 필진들의 관여에 힘입어 체계를 갖춘 모양새로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다.
아무리 부피가 두텁더라도 그렇게 많은 내용들을 한권에 몰아넣은 책이 논제에 대해 상당한 깊이까지 다다르기가 어렵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당연히 <세계영화연구>는 본격적인 이론 및 연구서라기보다는 연구로 향하는 길을 보여주는 가이드라고 말할 수 있는 책이고, 그런 만큼 논의의 단순화와 미진함을 단점으로, 그리고 그에 반해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 있는 주제들에 대한 깔끔한 정리와 소개를 장점으로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 책의 더 나은 장점은 하나의 주제에 대해 여러 각도로 생각할 문제들을 제시하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 ‘유럽영화의 여러 문제’라는 글에서 지네트 뱅상도는 예술영화, 민족영화, 영화운동, 작가주의, 장르와 스타 등의 시야로부터 유럽영화를 어떻게 논의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적 사항들을 조목조목 짚어준다. 이런 글을 볼 때, (주로 연구의 입문자인) 독자들은 해당 문제에 대한 연구에의 허기를 느끼게 될 법한데, 독자들로 하여금 바로 그런 허기를 제대로 만들어내는 것이 <세계영화연구>가 노리는 최선의 의도가 아닌가 싶다(물론 글마다 편차는 있다).
상당히 말끔하게 번역된 책을 펼쳐들면, 영화 관련 도서를 어느 정도 읽은 사람을 다소 ‘당황’케 하는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엔 도무지 숏이니 컷이니, 또는 미장센이니 하는 영화의 기초 용어들이 쓰여 있질 않다. 그건 그 용어들이 촬영한 장면, 잘라낸 장면, 화면연출처럼 ‘번역’이 되어 있는 탓이다. 예전에 데이비드 보드웰과 크리스틴 톰슨의 <영화예술>이 번역될 당시 부분적으로 시도된 용어 번역이 <세계영화연구>에서는 더욱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번역 용어의 적절함을 일단 제쳐두고라도, 이 책에서 보인 용어 번역의 시도는 사고의 경제성, 국어순화 등의 여러 차원에서 좀더 생각하고 논의할 문제를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