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얘기다만, 우리가 극장에서 보는 영화의 98% 이상은 상업영화다. 돈 들인 만큼 거둬들이는 것을 그 태생적인 목표로 하고 있는 영화들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영화를 만들고 홍보하는 주최쪽에서 관객과의 기초적인 상도의를 지키고 있는지 여부를 밝히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이 점에서 필자는, <잠복근무>에 대해 상당히 문제있는 영화라는 소견을 내놓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이 영화는 두 가지 중대한 기초 상거래 질서 교란 행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이 영화는, 헤드 카피를 “출동이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로 뽑을 만큼 김선아가 교복 입은 학생으로 등장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컨셉은 미니스커트 교복을 나름대로 잘 소화해내고 있는 김선아를 대문짝만하게 박아놓은 포스터만 봐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하나 문제는, 김선아가 고등학생 노릇을 하는 부분의 영화의 전반부뿐이라는 점이다. 즉 관객은 본의 아니게 고등학생이 돼서 그 생활에 적응하려고 나름대로 몸부림을 치는 김선아를 둘러싼 각종 웃기는 일들을 기대하겠다만, 그런 건 앞부분에만 해당될 뿐이란 얘기다.
뭐 좋다. 김선아가 세일러복을 입건, 교복을 입건, 경찰복을 입건, 어쨌든 영화만 괜찮으면 땡인 거지. 하지만 이 영화 후반부에선 다시 한번 관객에게 결정적인 실망을 안기는 기초 상거래 질서 위반이 적발되고 있다. 그건 물론, <잠복근무>가 김선아의 원맨, 아니 원우먼쇼에만 의존하는 무(無)줄거리 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는 점 따위는 아닐 것이다. 예전에도 얘기했듯 이런 카인드 오브 영화에 치밀한 플롯 같은거 기대하면 그 놈이 나쁜놈이지. 이 영화의 두 번째 상거래 질서 교란 행위는, 김선아의 상대역인 공유에 관한 것이다.
공유가 연기하고 있는 캐릭터는 김선아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학생 ‘강노영’이라는 캐릭터인데, 얘는 중요한 순간마다 나타나서 김선아의 임무를 대신한다든가 김선아의 작전 현장에 정체를 감추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등의 미스터리한 행위를 일삼는다. 그리하여 결국 이 ‘강노영’ 캐릭터를 둘러싼 미스터리는, 김선아의 원우먼쇼가 그 한계를 드러내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이 영화를 끌고 나가는 중요한 힘이 된다. 과연 저 者는 뭐 하는 者인 것인가?
그러나!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강노영’의 비밀에 대한 건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다. 얘가 김선아의 흑기사인 건 알겠는데, 대체 어떤 사연으로 흑기사질을 하기에 이르렀는가에 대한 설명 같은 건 전혀 나오지 않는단 얘기다. 대책없이 저질러놓고 수습 안 되니까 뮝기적 넘어가는 이런 식의 무책임함은, 에로 전혀 없는 영화에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라는 제목 갖다붙이는 행위만큼이나 용납되기 어려운 것이다.
아무리 ‘여배우 기근의 시기에 나온 원톱 여배우 영화’건, 김선아의 말대로 ‘그냥 재미있게 웃고 즐기는 영화’건 뭐건 간에 일단 기본적인 상도의부터 지키자.
이제, 우리 사회의 투명성 제고 움직임에 영화계도 동참할 때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