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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과 순수 사이,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다케우치 유코
김수경 2005-03-31

토끼 같은 맑은 눈과 새하얗고 가지런한 치아가 인상적인 사이타마 출신의 1980년생 여배우. 하지만 카메라의 앵글이 조금만 바뀌어도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하는 천변만화의 얼굴을 지녔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다케우치 유코는 미소녀와 귀부인이 공존하는 얼굴을 가졌다. 그것은 올해 클로즈업으로 단순하게 촬영된 그녀의 첫 화장품 광고만 봐도 짐작할 수 있는 일. 한국에서 처음 그녀의 얼굴을 알린 모 크림치즈 광고와 현재의 모습을 대조하다가 깜짝 놀라는 국내 팬이 많은 것도 당연하다. 지난해 2월 국내에 방영된 <런치의 여왕>의 무기타 나쓰미 역은 <환생>의 애절함과는 대조를 이루는 귀엽고 털털한 그녀의 이면을 팬들에게 안겨주었다. 실제 성격도 “장난기가 심하고 술을 마시면 우는 버릇”이 있다는 서글서글한 타입.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수건을 말아 입에 물고 소리를 내지른다”거나 “다시 태어나면 피땀과 눈물이 뒤섞인 결투가 하고 싶기 때문에 남자가 되고 싶다”는 방송에서의 농담 섞인 답변은 여린 외모에 가려진 근성을 엿보게 한다. “실제로 갑자기 어떤 일이 하고 싶어지면 그 자리에서 바로 실천한 적이 많다”고.

산토리 광고로 단숨에 CF스타가 된 그녀는 <이노센트 월드>에서 같은 매니지먼트사 소속의 슈퍼루키였던 안도 마사노부의 동생 아미 역을 맡으며 스크린의 신고식을 치렀다. 다케우치 유코의 필모그래피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온 작품은 국내에도 개봉된 구사나기 쓰요시(초난강)와 함께 출연했던 <환생>.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빗방울이 날리는 6주 동안 사랑하는 남편 타쿠미(나카무라 시도)와 아들 유지의 곁으로 돌아오는 미오의 눈동자는 <환생>에서 애인을 살리기 위해 괴로워하던 아오이와 같은 곳을 바라본다. 세상에 머물러 사랑할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애달픈 시간적 배경은 <환생>과 겹치고, 기억상실의 모티브는 2003년 개봉작 <별에 소원을>과 맞물린다. 이러한 생사를 오가는 사랑 이야기에 대한 그녀의 참여는 2004년 시노하라 데쓰오의 <천국의 책방, 연화>에서 지상의 카나코와 천상의 쇼코로 나뉜 1인2역을 선보이며 절정을 이룬다. 세 작품은 공히 순애보라는 밑바탕에 사별·죽음이라는 문양을 그려넣는 유사한 방식의 전개를 통해 <지금, 만나러 갑니다>로 400만의 일본 관객 동원이라는 대중적 폭발을 끌어낸 다케우치 유코만의 서정적 캐릭터를 농익게 만들어주었다.

영화에서 타쿠미를 다독거리고 설득하는 장면에서 다케우치의 감정몰입은 인상적이다. 해맑은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며 젊은 사람의 감정선과는 다른 느낌으로 잔잔하게 퍼져나간다. 마치 남편을 설득하는 아내와 아이를 어르는 어머니가 혼재된 모습과 감정이 관객에게 전달된다. 가부키 배우 출신이며 일본 대표 터프가이 중 한명인 시도가 양처럼 순한 사람으로 보이는 건 본인의 노력과 유코의 이러한 표현력이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일 터. 그녀는 이 작품을 하면서 “가족의 형태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구성에 의해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처음으로 맡은 어머니 역은 20대 중반의 그녀에게 참신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구상을 했지만 기억상실증에 걸린 원래 설정”에 몸을 내맡기는 자연스러운 연기는 흡족한 결과로 돌아왔다.

최근에는 케이블에서 방영 중인 기무라 다쿠야의 첫 한국 상륙작 <프라이드>에서 세계무대를 꿈꾸는 아이스하키 선수인 하루를 다독이며 그림자가 되어주는 아키 역으로 국내 팬들에게 신뢰를 더해가고 있는 다케우치 유코. 다케우치의 차기작은 그녀와 마찬가지로 지난해 일본영화 준아이(순애) 태풍의 중심이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유키사다 이사오가 메가폰을 잡은 <봄의 눈>(春の雪)이다. 상대역은 <69 식스티나인>의 꽃미남 쓰마부키 사토시. 미시마 유키오의 원작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시대극이라는 무대에서 이사오와 유코의 감수성이 어떻게 조우할지 궁금하다. “정해진 범위에서 자유를 즐긴다”는 평소 철학처럼 자신의 장점은 철저히 지키면서 조심스럽게 영역을 넓혀가는 이 여배우의 발걸음은 정상을 눈앞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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