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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브롤의 후기 걸작, <의식>

<EBS> 4월2일(토) 밤 11시45분

‘누벨바그’ 일원으로 클로드 샤브롤 감독의 영화는 몇 가지 일관된 특징을 보인다. 그중 하나가 클로드 샤브롤 감독의 작품들이 범죄영화로서 고정된 패턴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의식>은 1990년대에 감독이 만든 작품 중에서 중요하게 거론되곤 한다.

이자벨 위페르와 상드린 보네르가 출연하고 있는 이 영화는 계급적 허위의식과 여성들의 연대라는 주제를 노출하는 문제작이다. 내성적 성격의 소피는 상류층인 릴리브르 가족을 위해 일하는 가정부다. 이 집의 부부와 버릇없는 두 아이를 위해 그녀는 매일 ‘의식’과 같이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하며 집안을 돌본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이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애써 숨기고 있다. 이 사실을 감추기 위해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소피는 우체국 직원 잔느와 친구가 되는데, 그녀에게 릴리브르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잔느가 자신의 우편물을 훔쳐본다고 의심해오던 릴리브르는, 소피에게 그녀가 한 소녀에 대한 살인혐의를 받은 적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클로드 샤브롤 감독을 매혹시킨 것은 단순한 추리가 아니라 죄의식과 정신이상, 그리고 폭력적 열정이다.” 어느 비평가의 적절한 지적에서 알 수 있듯 샤브롤 감독의 영화는 미국의 필름 누아르를 연상케 하는 비관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암울한 묵시록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지 고찰하는 것이다. 한편, 샤브롤 감독이 추종했던 히치콕 감독이 관객과 일종의 지적 퍼즐을 벌이는 범죄영화를 만들었다면, 샤브롤 감독의 영화는 좀더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파국을 향한 장중함을 동반하는 예가 적지 않다. 장 뤽 고다르나 프랑수아 트뤼포, 그리고 에릭 로메르 등의 누벨바그 세대와 비슷한 궤도 위에 있으면서 샤브롤 감독이 미국영화의 영향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영화 <의식> 속 인물들은 철저하게 불신의 벽에 갇혀 있으며 계급적 가치에 의해 어느 정도 선을 그은 채 삶을 살고 있다. 영화 후반부로 향하면서 항상 부르주아 가족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다고 여기는 소피와 잔느의 분노가 폭발하고, 이것이 폭력적 행동으로 향하는 과정이 섬뜩하게 그려진다. 클로드 샤브롤 감독은 1960년대 <부정한 여인>이나 <붕괴> 등의 영화에서 그랬듯 어느 가정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심리극의 과정을 <의식>에서 좀더 세련된 형태로 발전시켰다. <의식>의 배우인 이자벨 위페르와 상드린 보네르는 베니스영화제에서 공동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두 사람의 빼어난 연기호흡이 영화에서 가장 큰 볼거리가 되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EBS에서 방영하는 ‘클로드 샤브롤 후기작 특별전’ 중 첫 번째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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