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성능의 향상으로 자신의 단편을 atomfilms.com 등의 사이트에 올리며 영화사의 러브콜을 기다리는 감독지망생들이 늘고 있다.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았던 케리 콘랜도 이중 한명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애플 컴퓨터로 4년간 만든 6분짜리 데모영상을 인터넷이 아닌 감독 겸 제작자인 존 에브넷에게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소규모 독립영화를 만들려던 콘랜의 소박한 계획은 스크립트도 보지 않고 주드 로와 기네스 팰트로가 출연을 결정하면서 차질이 생기게 된다. 결국 파라마운트가 개입하고 제작진이 100명으로 늘어나며 영화는 애초 의도와는 전혀 다른 규모의 영화가 되었다.

대부분의 촬영이 블루·그린스크린에서 이루어진 2004년 개봉작 3편 중 <우먼트랩>과 <캐산>은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선보인 바 있다(<우먼트랩> DVD는 <씨네21> 479호 참조). 두 영화는 모두 만화와 애니메이션 원작의 미래사회를 그렸는데 3D CG와 실사간의 찰떡궁합을 보여주진 못했다. 원작이 없었던 <월드 오브 투모로우>가 택한 것은 다른 방향이다. 미래의 또렷한 영상보다는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 눈이 피곤할 정도의 뿌연 화면과 함께 흑백영화를 연상케 하는 복고풍의 색채를 칠해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픽사의 렌더링 툴로 제작된 3D CG와 결합된 실사는 결과적으로 전임자들보다 나은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HD카메라로 촬영된 영화는 이질감이 거슬렸던 <콜래트럴>보다 안정된, 필름에 근접하는 영상을 보여준다. 필름과는 달리 DTS 사운드가 담기진 않았으나 거대로봇의 맨해튼 뉴욕 행진이나 수중전에서 들려주는 돌비디지털 5.1채널 사운드는 꽉 찬 밀도감의 저음을 들려준다. 북미판 DVD에 수록된 2개의 코멘터리가 빠진 것이 아쉽긴 한데 그외 부록들은 고스란히 담겼다. 특히 6분간의 데모영상은 왜 할리우드 스타들이 무모함에 가까운 결정을 내렸는지 그 이유를 가늠케 해준다. 개그 릴에서는 밀폐공간에서 주드 로가 기네스 팰트로에게 생리현상을 내뿜는 장면이 담겼으니 잠시 웃다 가시길. <월드 오브 투모로우>는 여러모로 가이낙스의 최초 장편인 <왕립우주군>과 닮았다. 각각 4분과 6분짜리 데모영상을 토대로 장편 기획이 되었고 평행우주론적인 과거세계를 소재로 사용하였다. 두 영화 모두 흥행에선 큰 재미를 보지 못하였으나 <왕립우주군>은 오늘날의 가이낙스를 있게 한 시발점이 되었다. 그렇다면 죽은 로렌스 올리비에를 살려내고 과거를 재창조해버린 <월드 오브 투모로우>는 미래영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건 이 영화의 바통을 이어받은 또 다른 블루·그린스크린 영화 <신 시티>의 올해 결과를 보고 대답할 일이다.